...그런 의미에서 하나, 그 이상의 규정'된' 사건(들) A, B, C, AB, AC, ABC... 등등의 원인이나 이유라고 (재)규정'되'는 (인간 한계-스피노자적 상상계-내의)모든 것은 '(비합리적인-이성의 감성에 대한 '종합' 아닌 '대체보충'인-)목적론'적 생각과 사고를 전제한다(또는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적인 (비)기원이고 따라서 '이미 항상' 왜곡된 것, 사'전'적이고 (우연적)사건을 사'후'의 관점(에서만 필연적인 것)에서 거꾸로 되짚어 가며, 계열 속의 '무차별'적 표면(시니피앙)과 내용(시니피에)을 너무나도 '인간적(혹은 스피노자적 상상계의 신적)'인 인과율에 맞게 (재)조직화 한다. 이 때의 (재)조직화는 들뢰즈의 Cso('기관들-기관화' 없는 신체)라는 개념의 '반대' 항과 정확히 같은 의미의 '조직-기관'들, '유기체화-기관화'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임?
이게 도대체 뭔 소리임?
앗 예뽀님!
1. 그런 의미에서 하나ᆢ그 이상ᆢ그리고 대문자 A에서 C까지의 나열. 여기서의 알파벳 나열은 이미 '정의'된 사건(사물)의단순 나열인 듯하구요; 왜냐하면 항등식이 있어서 기호의 같음을 드러내지도 않고 미지수 x가 있어서 방정식도 성립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이때의 규정은 원인과 이유가 상실하였음으로 규정이 될 수 없고 그 자체의 기호적 성격밖에 없는
ᆢ내가 술이 깨고 나면 내게도 답글달 기회를 주십시오. 2. 스피노자적 상상계? 이것부터 말이 안 되는데요,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상상은 이미 속성에 포함돼 있습니다.
2.1. 마찬가지로 보충이란 말은 하나의 실체에 따른 '끊임없는 나머지' 아닌가요? 스피노자에게서 속성의 가능성은 무한하거든요.
2.2. 데리다를 나도 조금 읽은 편인데: 대리보충이란 개념은 자연의 나머지 개념보다는 인공의 끼워맞추기 아닌가요? 스피노자는 이런 인공(인위적)의 세계를 진공 만큼이나 혐오합니다.
3. 종합, 목적론은 칸트의 언어라서 내가 잘 압니다. 킵해두구요.
4. 데리다의 문제만 풀면 될 것 같네요. 데리다는 말장난의 끝판왕이라서 쉽지 않습니다.
5. 기표, 기의의 문제는 딱 소쉬르적 정의만 의지핫세요; 나머지 전부는 말장난이며, 그건 현대 언어철학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령 "딸기"라는 형상으로서 문자signifiant와 그 딸기의 내면이 감추고 있는 질료적 속성(빨갛다, 달고 시큼하다 등등)의 '뜻(그래서 어쩌면 표면의 형식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signifie'을 가리키는 표음문자(인
도 유러피안 어군의) 태생적 습성 쯤을 궁리한 정도로 여기면 될 듯합니다.
6. 결국 들뢰즈이군요. Cs0 곧 기관없는 신체는 '천 개의 고원'에서 그려진 진정한 형상으로 우화등선하기 이전의 알spawn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알(닭보다 달걀이 먼저인 경우)은 오히려 세계(태초)의 본질을 품고 있는 것이라서 어떤 형상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죠.
6.1. 이런 맥락으로서 다음 번에 적절한 댓글을 달게요. 오늘은 이만해야겠습니다. 잘게요.
이거 파인만이 설명하자너 https://www.youtube.com/watch?v=3smc7jbUPiE
우리가 무엇이 일어난다 왜? 일련의 인과적 체계는 하나의 '계' 에 의존하고 있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선행적으로 진실이라고 동의한 그런 망상임. 공리일수도 있고 하나의 정신적 체계일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된 에피스테메 같은거
https://www.youtube.com/watch?v=9P4L5vLh_4g 이 영화를 봐두 알수잇음
'고모가 빙판에서 비끄러졌다' 의 원인을 설명하는데 지구인에게는 '고모가 나이가 들어서' 라는 설명이면 족함. 이걸 모르는 화성인이 그 설명을 들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함. . 아니면 왜 설날에 버스터미널이 붐비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지구인은 설날이니까. 라는 설명이면 족하지만 이 체계를 모르는 외계인은 몇년간 고생꺠나 해야함 다 비슷한거
Request: 님께서 주신 파인만의 대화 영상과 영화 메멘토-모리의 주요 장면까지 보았는데요. 말씀하셨듯, 우리는 '이미' 이 인과적 체계(세계) 안에 묶인 존재이지요. 바로 칸트의 '선험(적)-세계'입니다. 에피스테메는 여기서 적절한 말이 아닌 것 같구요.(문맥상 무슨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건지 짐작은 합니다.) 고모가 빙판에 미끌어졌다는 사태는 '빙판'
의 낱말뜻만 헤아리면 되므로 공리와 함께 '정의definition(약속: 기호 상의 상호 합의)'적 측면이 우선 요구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정리theorem'로써 실제적 사실, 곧 물(사건)자체를 가리키는 것일 수 없죠.
빙판은 "얼음막이 형성된 표면(길)" 쯤일 텐데요, 잘 아시다시피 얼음은 물의 고체적 성격을 나타냅니다. 물이란 놈이 워낙 특이한 존재라서 화학적 팽창 정도에 따라서 고체>액체>기체 따위로 다변화하는 매우 불완전한 물질이지요. 섭씨 40도 오르내리는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물은 일생이 액체이거나 기체일 수밖에 없고, 섭씨 마이너스 40도권의 북극 원주민에게서
물은 언제나 딱딱한 얼음일 수밖에 없습니다.(얼음이 고체이냐 액체이냐 하는 최초의 논쟁 또한 물의 성격에 관한 논쟁이지요.) 하지만 고래로 우리는 딱딱하고 잘 만져질 수 있는 걸 고체(의 성격에 가깝다)라고 규정했고, 만져지기는 하지만 성글고 밋밋한 것을 액체라고, 보이지만 만져진다 하기에도 애매한 연기나 박무 따위를 기체라고 표현하지요.
파인만의 말씀처럼 우리의 지적 능력은 어떤 사태(현상)를 제대로 설명하기에 참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그 현상의 주체인 물-자체das Ding an sich를 알고서 말해야 한다니요. 이건ㅡ파인만의 주장처럼ㅡ물리학자나 철학자의 몫으로 남겨둡시다.(고대 그리스 자연철학 본연에서 오늘날의 진짜 서양철학자는 물리학자입니다.)
사실 '하나의 계'라는 것 자체가 우리 인식세계의 약속입니다. 빛이 태초로부터 앞(미래)으로만 직진한다는 물리적 인과성이 발견됨으로써 '하나의 우주(론)'은 더욱 더 명확한 사실 영역이 되거든요. 그 이전의 우주는, 심지어 존재론은 비존재론까지도 함께 논의되는 말 그대로 상상의 영역이었어요. 스피노자의 상상계가 뭔지 하고 검색하였더니 대번에 진태원 씨의
'스피노자와 상상계'가 튀어나오더군요. 내가 배움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실재론의 끝판왕인 스피노자는 상상계 따위를 말한 적이 없었다 싶었는 데 아니나 다를까 진태원이란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진태원 씨는 자칭 스피노자 주의자이기도 한데, 워낙에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서 뿌려놓은 것만 많지 제대로 제 할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간단하게 말할
게요. 논문에서 진태원 씨가 말하는(읽어 보지 않았지만) 상상계는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상징계<실재계)를 가리키는 듯한데, 이거 기왕의 철학사에서 말하는 관념(론적)이나 데카르트의 이성, 칸트의 선험과 꼭 같은 말입니다!
칸트 인식론 이전의 존재론은 비존재를 존재론의 영역에서 다루었어요. 예컨대 오늘말로 "빅 뱅(시공간=존재) 이전의 존재는 무엇인가?" 라는 동어반복을 거듭했지요.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대로 일단 괄호치기(:판단보류)하면 그만인데, 지적 정직성보다 지적 권력이 더 필요했던 시절의 야만인들은 그 보편(성)을 수용할 수 없었던 거지요.
플라톤(파르메니데스)에 따라서 존재론은 오직 있음(존재)에 관한 학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는 틀린 말입니다. 존재론은 그 이름과 달리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 그로부터의 드러남을 궁리한 것이었요. 하지만 거듭, 동어반복의 연속인 교부(철학자들)의 중세가 오랜동안 지속되었을 뿐이죠.
나 역시도 인간의 상상(정신=>관념=>이성)은 물질(>현상: 현상은 곧 물질의 드러남이다)의 한계를 넘어선 위대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기왕의 닫힌-계(물리계)와는 달리 한없이 열린 세계이지요. 하지만 이 상상이란 것은 너무나 주관적입니다. 독립된 개체가 가장 넓게 열려 있다니! 아이러니의 탄생입니다. 칸트는 그 주관적 무한성에서 다만 적정선을 유지하자는
거지요. 칸트의 위대함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인만과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철학자)의 세계와 나 같은 조찐따 소시민(시민의 근대적 개념 또한 칸트로부터 비롯되었다)의 존재론적 간극을 최소하려는 시도에 있습니다. 파인만이 말하길, "고모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는 그 사실만 인지하면 충분하다"고 했지요? 그러면 웬만한 사람(인류의 9할)은
그 사실에 관해 적절한 감정상태를 충분히 드러낼 것입니다.(꼭 말로 해야 감정표현은 아니지요.) 칸트는 말합니다. "안타까움의 감정은 누가 가르치지 않는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그런데 칸트는 이렇게 연역해서 선험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남아돈 칸트는 도리어 이 모든 조건(원인)들을 궁리합니다.
"빛은 입자입니까, 파동입니까?" 이전에 '빛이란 무엇입니까'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입자와 파동을 다시 물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칸트의 시간 개념은 뉴턴을 의지하고 있다 하는데, 그 언어(기호)적 명징성(기호논리학에서 참은 그 기호=낱말의 명징성에 의해 결정된다)은 칸트가 한 수 위입니다. 칸트는 시간이란 개념을 선험의 형식으로 정의합니
다. 정확히는 선험적 직관의 내적 형식. 칸트는 시간을 순수 직관 형식으로 파악합니다. 시간은 단지 우리 주관 안에 있는 것으로서 '순차적으로aufeinander' 또 '계속해서nacheinander' 따위의 내적 감각에 따라 정의될 뿐입니다.
술 좀 사올게요.
아아, 느낌이 싸해서 검색해 보니 상상계는 스피노자의 말인 듯도 하군요. 에티카에서 상상계라는 낱말이 나옵니까?
아무튼요, 상상계고 조지고 빛과 시간은 실재하는 것이구요. 그런데 광자의 입자(적)성(격), 곧 원인은 아무 것도 규정된 것이 없어요. 마찬가지로 시간성은 반드시ㅡ좌표계(물질 간의 위치 차이, 곧 이동)에ㅡ드러나지만 시간 자체가 눈에 보이지는 않죠. 시간은 감각 이전, 경험 이전의 형식으로서 우리 세계(일상) 이전에 주어지고 또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이니,
그저 선험적 사태랄 수 밖에요. 이거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시간의 고전역학(뉴턴) 아닌가요? 시간은 모두가 있다고 믿고, 실제로 증명되는 듯하지만, 사실 과거-현재-미래는 우리들 상상의 형식일 뿐이죠. 온전한 것(형상)이 바스라진다 했을 때의 엔트로피 법칙은 태초의 불완전한 것들, 비형상을 설명하지 못하거든요.
댓글 김사합니다
전만에요. 제가 좋아서 쓰는 댓글입니다. 되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