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행복과 고통에 대한 철학에 대해 공부한다는 지인이
인간이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의지 때문이고,
그 의지의 중심에는 욕망이 있다고하네요.
쇼펜하우어의 철학대로 고통을 없애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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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욕심을 채웠을때 느끼는 감정
고통= 욕심을 채우지 못했을때 느끼는 감정
행복이든 고통이든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이야
삶은 행복은 10%, 고통이 90%야
욕망을 향해 살면
내 삶의 10%는 행복, 90%는 고통으로 살게돼
욕망을 버리면?
10%의 행복은 못느끼겠지만, 대신 90%의 고통도 안느껴도돼
행복하려고하지말고 (= 욕심을 채우려고 ,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말고)
고통을 안느끼기 위해 노력해 (= 욕망을 없애도록 노력해)
고통= 욕심을 채우지 못했을때, 즉 욕망하지만 이루지 못했을때 느끼는 감정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둘중하나야
욕망을 채우던지(=행복해지던지) , 아니면 욕망 자체를 없애던지
근데 욕망을 채우는것은 행복이야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채워서 행복해지려 하기보다는
욕망을 없애서, 고통을 없애기를 권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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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철학이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거라던데..
제 지인이 올바르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이해한게 맞을까요?
제가 이해한바론 맞습니다. 인생이 고통인 이유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윗글에 말한대로 인생은 고통이다가 결론이었고, 그렇다면 왜 자살하면 안되는가에 대한 답으로 윤회를 얘기합니다. 세계는 의지의 구체화이고, 죽더라도 어짜피 의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다시 같은 의지로 더 고통스럽게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이죠. 불교철학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칸트의 물자체론으로부터 파생된 철학인데 칸트가 물자체를 이데아와 같은 것으로 본다면 칸트는 그 물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물체의 관찰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물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남은 관찰할 순 없지만 나는 관찰할 수 있고 이것이 물자체다. 그리고 세계는 이 물자체(의지)의 파생이다 라
본것이죠. 그래서 의지를 세계의 중심에 놓은 것이구요. 그리고 그 의지의 속성자체가 괴로움이기 때문에 인생을 괴로움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의지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이상 의지의 모사가 죽어도 존재는 계속되고요 그래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의지를 감소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욕망을 없애는 게 가능은 한가요? 행복과 고통의 비율은 항상 고정되고 바꿀 수 없나요? 비율의 측정은 어떻게 하나요? (양적으로? 아니면 질적으로?) 행복과 고통을 욕망과 연관지어 재정의 할 거라면, 욕망이 10% 충족된 상태 자체에 '만족'할 수는 없나요?
(부연컨대,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욕망은 자기언급오류에 빠집니다. 욕망과는 별개로 욕망의 충족 현황에 대한 판단을 새로 정의해야 하고 이를 만족감이라고 한다면, 욕망이 충족된 정도보다 충족되지 않은 정도가 크다는 것으로부터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바로 따라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쇼펜하우어 철학을 잘 몰라서 본문이 그의 철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판단은 잘 못하겠습니다만 제 얕은 생각으로는 그 정도 이름있는 철학자가 이런 논리적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저런 선언만으로 그의 철학을 구성했을 거 같지 않네요
욕망을 없애려는 욕망또한 욕망이기때문에 영원히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죽음의 가능성정도가 이모든 것의 바깥이자 우연의 유일한 심급으로서 주어질 수 있을 뿐입니다.
!
반가운 답글 ㅠㅠ
진짜로 님의 이름(좆슈타인)을 인지하고서 쓴 답글이 아닙니다. 님이 댓글 자체가 하도 그럴 듯해서 손이 먼저 반응했어요. 제가 더 반갑습니다. 저녁 드셨나고 인사하려다가 시간이 벌써ᆢ. 암튼 반갑습니다 님!
*님"의"
욕망을 없애자라는 욕망을 가지기 보다는 내려놓음의 상태로 가야하는거임
쇼붕이가 인생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던 그게 내 인생에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다. 그건 쇼붕이의 인생일 뿐. 욕망의 근원은 무의식에 근거하고 이것은 나의 뒤틀린 '계'가 있으면 심화된다. 마치 경쟁과 조건화에 길들어진 가정에서, 혹은 생존 일변도의 경쟁적 환경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뒤틀린 욕망을 가진 것처럼. 욕망을 없애기보다는 그 욕망이 근원이 되는 뒤틀린 체계를 바꿈으로서 타자의 욕망에서 나의 것- 상대적으로 좀 더 자기가 통제가능한 건강한 것으로 되돌릴 수 있셈.
욕망은 절대 나쁜것이 아님. 단지 그것이 얼마나 타자화된 욕망인가 혹은 내 자아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인지부조화가 덜한 분열적이지 않은 욕망인가 이 양자를 구별해 내고 전자를 쳐내는거 이것이 중요함
인간은 분열된 주체로 항상 돈을 벌어야해! 라는 주입된 자아 아니 이정도면 만족하자! 라는 8살짜리 자아가 내부에서 줜나 싸우고 있음. 욕망에 대한 양가적 감정 이 존재론적 균열이야말로 진짜 모든 불안의 원인임. 현대인들은 내부를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어서 본인이 분열된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전혀 다른 형태의 욕망을 하나로 퉁치고 그게 그게 고통이라고 착각하는거셈. 대락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우리는 욕망이 있었지만 그 형태는 지금하고 달랐다는걸 알수있을거셈
헤헤 너 되게 열등감있구나. 제목과 본문이나 제대로 보고 댓글써라. 댓글들이 하나같이 다 딴소리에 뒷북이냐... 일단 제목ㅡ본문 좀 보고 거기에 맞게, 말은 되도록 글쓰기 바란다.
projection identification
니가 하는걸 이거라고 부름 자신과 타인의 동일시로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는 유일한 법임
'쇼펜하우어 철학을 '지인'이 제대로 이해한 걸까요' 라는 글에 쇼펜하우어가 뭐라 했든 너는ㅡ어쩌고 저쩌고... 그런 게 먹히겠냐...
너랑 유치하게 말싸움ㅡ지식자랑 하고 싶지 않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라. 멍충멍충아.
쇼펜하우어 체계는 내 체계가 아님. 저 사람의 체계도 아니며 저 친구의 체계도 아님. 걍 하나의 망상임
그런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건 유아적 망상에 불과함. 망상을 깨주는건데 문제라도?
제목, 본문 좀 다시 봐ㅋㅋㅋ 니가 하는 건 진짜 뜬금포 헛소리다.
모든 체계는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것으로 시작함. 내부를 들여다보는게 선행하지 않고 아무리 타인을 채계를 자신의 체계로 들여와서 자신의 것인양 적용해봤자 말짱 도로묵이라는것만 말함.
자 글의 제목이 '지인이 ...이라 이해한게 맞을까요?' 내용이 '이러 저러 해서 이렇다는데 이게 맞나요?' 다. 헛소리 그만 하고 자라. 화이팅이다.
욕망이란 개념 자체를 모르는데 욕망이 이러저러한게 맞나요? ㅋㅋㅋㅋㅋ
욕망은 시스템으로 나오는거임. 무슨 타블라 로싸마냥 아무것도 아닌 공백의 제로점에서 나오는게 아니라ㅋㅋㅋ. 그 욕망의 근원을 찾아갈려면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시스템을 알아야함. 그 욕망이 내욕망인지 타자의 욕망인지 구별하는게 먼저임.
욕망이 시스템적으로 나온다는 건 도대체 누구 이론이냐. 스피노자ㅡ라캉까지 욕망을 그딴 식으로 정의한 사람은 당연히 없고 도대체 어디서 줏어들었냐?
난 프로이트든 라깡이든 그딴건 관심없고 다른 사람 체계를 가져와서 비판없이 자신의 체계에 적용하는 모든 인간을 혐오함
이거 생각보다 웃긴 놈이네ㅋㅋ 야 제발 좀 아는 한에서 얘기해라. 모르는 걸 짐작해서 얘기하면 그게 통화겠냐...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의 시스템을 끌어들여봤자임. 자신의 가정 불우한 환경으로부터 시작해 모든 자신의 억압된 기억을 반추해서 거슬러 올라가기 전까지 그 어떤 철학도, 심리학적 지식도 쓸모없셈. 그걸 직면하고 자신의 기억에 학문이라는 칼을 들이대야 발전할수 있셈. 학문 자체는 걍 딸딸이
나는 내 얘기만함. 남의 철학자 얘기하는건 닌데 또 니랑 나랑 동일시해서 니 잘못 덮어씌우는거 projective identifcation 두번쨰
에이 그러면 댓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직접 글을 써야지. 너가 쓴 글 보고 싶다.
본인은 시인이자 작곡가인데숭 철학은 취미고 잘 알지도 못함.
뽀님: R님은 이미 철학자입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그는 정확하게 철학도입니다.
음 하튼 모르는 건 몰라도 된다.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건 쪽팔일 일이 앞으로 많을 거란 얘기라 개인적으로 비추다. 화이팅이다.
니가 쓰는 projection -primitive defence 는 영유아나 쓰는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 나는 지능이 낮아서 그럴 수도 있어.
닌 평상시 쪽팔린 경험이 많고, 이 경험을 본능적으로 거부해서 나한테 투사하는거 이또한 분열된 자아의 결과물임. 프로젝션을 할려면 영유아로 회귀해야되서-> 지능을 낮다고 말하는것일 뿐 걍 시그널링임.
내가 위에서 말했잖슴. 자신을 들여다 봐야한다고 그래야 지능낮다고 딸치면서 투사도 안함.
현대 쇼붕이들이 철학으로 자기위로 하는것도 정확히 니가쓰는 투사적 메커니즘에 근거하고 있음. 현대에 쇼붕이가 소비되는 방식이 정확히 그러함. 완벽히 solipistic 한 현대인들을 항우울제이자 정신적 도피처가 쇼붕이거든. 걍 있어보이는 책 옆에끼고 커피마시면 근원적 정신병이 해결될거라고 착각하는거지
스스로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고 쓰는 외적 체계(그것이 과학이든 종교든 철학이든) 는 뭐든지 망상적 도피처임. 외적대상에 자신의 안좋은 부분을 투사해서 니처럼 동일시하는 정도밖에는 안되는거
뒤늦게 쇼펜하우어가 mz세대한테 이렇게 빨리는것도 이유가 있다니깐 ㅋㅋㅋㅋㅋ
사랑하는 뽀 님, 또 존경하는 리퀘스트님. 싸우지 마세요. 철학은 싸워서 무얼 쟁취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학 자체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딱 두 가지 학문이 존재합니다. 온통 망상 체계일 뿐이지만, 국가권력이라는 이념(망상의 끝판왕)을 등에 업고서 세상 사람을 발밑에 두는 법학(인문학). 다른 하나는 온갖 경험의 깊이로서 이윽고 사람을 업신여기게
만드는 기예학(공학). 철학은 비록 학이 될 수 없을지라도 둘 사이에서 최대한 보편자적 성격을 유지하면 됩니다. 예, 기득권(문/이과 끝판왕인) 학문의 시대적 보편성(존재론적 평등성)을 저울질하는 공부는 철학 뿐입니다; 물리학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의학=기예학.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were never really here(2017, 린 램지, 음악: 조니 그린우드), full soundtrack 1. Tree synthesizers . . https://youtube.com/watch?v=2-hn0wqh5c8&si=EwzgYlLLgHunHr7Q
수학을 모른다고 포기하지 말고 이 아까운 시간에 철학과 함께 방정식부터 틈틈이 공부해서 물리(학)적 감각을 습관화합시다.
뽀님은 절대로 지능이 낮지 않습니다. 수학을 몰라도 얼마든지 철학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다시 말할게요. 지능이 낮은 사람은 낮은 대로의 살아갈 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은 잘난 사람들의 몫으로 내버려 두세요. 조용히,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갑시다.
방장(글쓴)님의 지인이 말씀하신 쇼펜하우어는 정확한 쇼펜하우어text입니다. 단지 그가 읽고 싶은 것만 읽은 거지요. 나머지ㅡ쇼펜하우어의 깊이ㅡ는 여러 방원 님의 댓글을 참고하십시오.
앞서 어떤 방원(댓글)님의 말씀처럼 욕망의 사전적 정의가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욕망 말고도 우리를 괴롭히는 삶의 장치는 많아요. 그런 우연성(좆슈타인 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타고난 우연(부조리)을 극복하려는 몸부림마저 결국 욕망"이거든요. 시지프의 욕망이지요. 허무조차 욕망이 되는 삶을 우리는 반복하고 있지요. 이런 세계에서 생의 의지니 또 권력의지니
하는 말은 그 옛날 무꾸리shaman의 주술과 같을 뿐이에요.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팔아먹고 사는 애들은 주로 강단철학자인데, 걔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조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없죠. 그러기는커녕 그 얄팍한 세계관을 엉뚱한 곳에 투영시켜요. 거짓 철학사를 쓰는 건 애교로 넘길 만하지만, 그것으로 현실정치에까지 침범하면 곤란하죠. 내가 아는 한국의 진짜 철학자
는 물리학자나 종교학자에게서 자주 발견됩니다. 그마저도 드물지만. 딱 깨놓고 말할게요. 한국 강단철학 교수의 팔할은 사이비입니다. 장담할게요. 이건 의과대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입결 높은 오늘날의 의대 학생을 부추기면서 파업을 선동질하는 의사협회 애들5060 거의 모두가 자식같은 애들을 팔아서 묻어 가려는 겁니다.
특수한 경우이지만 잠시 내 경우를 얘기하자면, 나는 태어나서 지금(만 50세)까지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구요.(농협 실비보험 끝판왕을 들어놨습니다.) 일 년에 병원 갈 일은 다 합쳐 봐야 사나흘이 전부입니다. 내가 몇 해 전에 우측 상완골이 박살났는데요, 국내 몇 손가락에 드는 경북대 의대교수가 자꾸 수술하자는 걸 일 년 가까이 버텼습니다. 지금
어떠냐구요? 멀쩡합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후유증이라니. 님들 보고 나처럼 대책없이 고통스럽게 살라는 말은 아니구요. 그 옛날 우리가 터무니없이 샤먼을 의지했듯, 지금 우리는 샤먼의 대체재로서 의사나 법관 따위를 너무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생리적 자기치유와 정신적 자유의지를 함부로 내팽겨치는 건 아닌지. 돌아가신 철학자 김영건 선생님께서 살아생전 지병을 안고서 자주 한의사들에게 의지했다 해요. 한의사에게 의지하나 서양의사에게 의지하나 오십보 백보인 것. 선생님은 당신의 죽음을 벌써 짐작하신 거지요.
*자기치유=>자"가"치유.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2003, 피터 위어, 러셀 크로우) ost: 바흐 첼로 소품 1번 G장조 전주곡Bach cello suite no. 1 in G major prelude https://youtube.com/watch?v=mGQLXRTl3Z0&si=yY8zYrgmyL7LwA61
♥+좆슈타인, R, 뽀님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Here, there and everywhere, beatles https://youtube.com/watch?v=FusIKjztap8&si=8ftDBp-_T-fkA3M6
"다만 우연한 것들이, 본디 아무것도 아니었던 있지도 않았던 '나'라고 하는 이 한 점에 밀려왔다가 또 물러가면 그 하나의 점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우연한 것들로 채워졌다가 빠져 나가는 그 빈 껍질,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덧없는 그 자리는 어디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잡히지 않는 그런 것들의 오고 감이 혹은 무엇 '(=같음)'으로 드러나고 다시 다름으
로 사라져 가는 길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관념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물리적 현실사태이다." ㅡ연세대 철학과 박동환 선생님의 존재론(1.4)
※'무엇 같음(=/+-× 어떤 경우에도 결국 이퀄이 되는 세계의 법칙)'으로 드러나고ᆢ
좆슈타인 님께. ♥+Souvenir, tape runs out https://youtube.com/watch?v=UZtIKVZrhOw&si=gXAKHCO4gS4OeDmq
칸트는 무엇보다도 세상named에서 가장 멋진 죽음을 실천했지요. 칸트는 정말로 죽음의 의미를 알았을 것 같아요. 허무주의자님들 힘내세요. ♥+바흐, 임윤찬 https://youtube.com/watch?v=zGMabgnfvSE&si=ppJ48jhIZWEv3v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