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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은 사람들 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고객들과의 소통이 주를 이룬다 

본업과 부업으로 하는 사업이 있고 
그 과정속에서 인생을 열심히 사는 도중 
여러가지 타입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선천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성격 덕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마다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는 
감정의 선반을 나도 물론 가지고 있다. 

꾹꾹 참아 여러 충동들과 마음들 분노들 화들을 
하나로 묶어 구겨서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병 속에 
깊게 쑤셔넣고 또 하나를 구겨넣고를 반복한다. 

나 스스로 그런 감정적 프로세스를 거쳤지만 
이런 자동 시스템을 선천적임 덕분에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 유리병의 용량이 다른 사람보다는 커서 
인지를 못하고 있던 것인가? 

구겨진 감정들이 뚜껑까지 쌓여버린 어떤 유리병이 
어느순간부터 스치듯 보였다. 

마지막 하나를 우겨넣고 두팔에 온힘을 줘서 
뚜껑을 미친듯이 세게 잠궜다. 

이 타이밍은 미친듯한 스트레스속에서 
크게 심호흡을 몇번 하게 되는 그런 날들중 하나일 것이다. 

그 병들이 몇개가 있었을까? 
내가 이 병을 마련하기 시작한 건 성인이 돼서 부터일까? 
아니면 나라는 자아를 내가 인식하고 부터일까? 
그 병들은 지금쯤 몇개나 될까? 

지금 그 선반을 들여다보려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또 다시 구겨넣을때 그 선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 병들중 하나를 폭발시켜버린 기억이 났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고등학교 중반때 하나가 터져버렸던 기억이. 
공부와 진로에 관련해 막다른 벽을 마주했을 때 
미칠듯한 분노로 선반을 더듬어 유리병 하나를 잡고 
그 벽을 내리쳤던 기억이 난다. 
믿을 수 없는 눈물이 나왔고 괴성이 나왔다. 
그 이후로는 그렇다할 폭발적인 현상은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 유리병이 얼마전에 깨졌다. 
이유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저 운전을 하고 있는데 골목에서 막무가내로 
머리부터 들이밀고 끼어드려는 차량을 발견하고 
혼자 미친듯이 욕하고 소리쳤다.

그렇다 내가 아무리 선천적이라한들 부족한 사람이고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무능력자였다. 
그저 유리병에 압축시켜놓고 뚜껑을 닫는 거 밖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저 선반이 좀 더 튼튼해서 시간은 끌어주는 그정도랄까.

나이를 먹어감에따라 유리병의 크기는 줄어드는데 
일과 사업이 커지니 용량부족 현상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얼마전까지 나는 정말 화를 많이 냈다. 
전혀 좋지 못한 현상이다. 

그래서 사색하게 됐다. 
침착하고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뜬금없는 가능성을 나 스스로에게 제시했다.

만약 방금 갑작스레 튀어나온 차량이 부모님이었다면? 
과연 내가 혼자 지껄였던 개쌍스럽던 욕과 분노가 합당한가? 

인간대 인간으로 보자면 나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내가 감정을 분출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는 다르다. 
여기서부터 내 화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상대방에 따라 내 분노나 감정이 조절되는 것은 
강약약강과 같이 인간됨됨이로 볼때 아주 비참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였다면 냈을 화를 
일관성있게 부모에게 낼 수 있느냐? 그것도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면적인 발전,또 사소한 상황들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찾아야만했다.
왜냐면 그즈음에 나는 정말 화와 분노가 잦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를 줄이자가 아니라 내 선반들의 유리병이 
더는 무기로 사용되지 않을만큼 자아성찰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부터 생각을 시작했다.
이 세상은 이미 살기가 너무 좋다. 
빈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보지도 못했을 
최첨단 기술들 자동차들, 휴대폰 인터넷 등등 
시대적으로 최고로 최첨단인 현재와 미래로의 진행을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살아가고있지만 
가장 멍청하고 불만많고 발전적이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것들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불평하며 
사용하고있다. 

어느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씨발 요즘 사람들은 Atm기 앞에서 
언어를 선택하라는 화면이 나온다고 투덜거린다.
버튼만 몇개 누르면 좆도 어떻게 만들었을지 모를 기계에서 
돈이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그딴 걸 불평하지?’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정말 여러방향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을 
이겨내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을 생각하며 
그 스트레스들을 조금은 분해시킬 필요가있다. 
유리병에 구겨넣기전 한번 어떤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말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나는 지금 몇십년전만해도 
꿈도 못꾸던 수십가지의 기능이 탑재된 풀옵션 차량을 타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4개의 바퀴에 의존해서
핸들을 돌려가며 어딘가로 가는데 
이렇게 살기좋은 환경속에서 어떤 사람이 갑작스럽게 
끼어든다고해서 선반에 올라가있는 유리병 하나를 
집어들고 폭발시켜버린다는 것은 그냥 나 스스로 
내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과 
아주 똑같은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로 사물을 보는 시선과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와 여유로움이 정말 차이나게 개선되었다. 

이 여유로움이 개선되니 시야가 넓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최첨단 시대속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속에서 찾은
여유속에서 자연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우직한 산들과 바다 그리고 잔잔한 파도.. 노을 등 
그 속에 차분함과 정숙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과묵함이 주는 
무게감까지....

그렇다 자연은 우리 시대의 사람이 닮아가야할 
모습을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큰 충격에 잠겨 무작정 즉석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다. 

오버해서 충격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 이후로 나는 분노나 화의 표출이 0에 수렴하게 됐다.

자그마한 분노는 여유로 분해하고 
갑작스럽고 큰 분노는 유리병에 구겨넣기 전 
그 일에 대해 자연이 가르쳐준 성질을 대입해 
다시 들여다보게된다. 

이런 감정 조절에 서투를 때는 
부정적 감정을 구길때 급하다보니 대충 구겨서 
부피가 큰 상태로 병에 들어가게했지만
지금은 아예 공중분해 시키지는 못할지언정 
차곡차곡 많이 접어 부피를 최소화시켜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났다.

차를 타고 돌아니며 자연 사진을 찍고 
바로 인화해서 집에 돌아온 후 누워서 사진들을 구경했다.

그 사진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스치는 생각은 나의 내면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고나서 들여다보게 된다면 
그 사진들은 바로 이런 사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말 이제 화가 잘 나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다. 

무려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딴지 거는 사람을 만나도 
그저 '아직 이런 시야와 여유가 없고 
잔잔한 자연을 만나보지 못했으며,
그렇게 행동하는 삶을 살게 된 계기에 대하여 
한번도 사색할 기회가 없었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안쓰러운 감정에 그치고만다. 

그들도 분명 더 유연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직 나만의 사색이고 철학이듯이 
마음의 선반이 위태롭거나 
최첨단 시대에 치여 사는 우리 세대들이 
각자 그들만의 사색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