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관련 잡담을 했었을 장소가 어느샌가 자신의 침울함과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한 장소가 되었다.
어린이집을 다녔을 때는 남들과 똑같은 아이었고 많은 아이들이 탄 버스에서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을 부르고 유치원을 다닐 때에도 부모의 이혼으로 서산과 천안의 유치원을 오갔음에도 항상 말이 많고 밝은 아이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직후 전학을 가고 1년 후에는 입학한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한 곳에 정착해서 오랫동안 지낸 친구들이 없던 나는 그 속에서 다소의 열등감을 가지게 되고 5학년 때 전학을 온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밝았던 친구에게 항상 말을 걸어 친하게 되자 인생에서 없던 절친이 되었다. 그 친구가 6학년 때 다른 반이 되자 나는 학교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만 읽는 시늉을 하는 이상한 학생이 되고 그 시절부터 온 사춘기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 등 자잘한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집 밖에서는 지옥같은 나날을 겪었다.
폐쇄감과 열등감, 내가 아는 한국 사회와 닮아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력으로부터 얻는 사회적 지위 인식에 따른 열등감의 폐해로는
온라인 상에서 다른 사용자를 무작정 비방하고 조롱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취미로 모비즌이라는 녹화 앱으로 모바일 버전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 하는 영상을 녹화해 유튜브에 업로드 하는 일을 했었고 어느 시절부터는 플레이 하는 내 얼굴이 배신되는 영상을 업로드 했었다. 이 시기부터 어떤 한 유튜브 사용자로부터 얼굴이 못생겼다는 등의 비방 댓글이 달렸고 화가 난 나는 연속적으로 답글을 달면서 덩달아 욕설을 퍼부었던 적이 있다.
또 하나로는 먼저 자기가 속한 나라에 대한 자아의 투영이 대표적이겠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 5학년 시절로 기억하지만 일본계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高木正雄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일본 예능 방송 중 일부를 가져와 자막을 단 독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의 인식 경향과는 상반된 내용을 다룬 영상에 충분한 지식도 영상 내용에 대한 고찰도 없이 무작정 댓글 란에 반일 감정에 휩싸인 어리석은 댓글을 단 적이 있고 위안부 여성들을 일본 국가 권력이 강제로 연행해갔다는 증거가 없다는 일본인 추정 답글에 무작정 네이버에 위안부 관련 내용이 담긴 링크를 문맥에 관련 없이 첨부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시절에는 독립기념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갔는데 견학 직전 시청각실에서 스태프가 내 학급의 학생들에게 일본의 지배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마이크를 줘 말할 기회를 주자 나는 한국이 약해 지배당한 것이니 한국의 잘못도 있다는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어떤 온라인 매체를 통해 이런 인식 경향을 가지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나는 사회에서 하위에 속하는 사람이며 부자가 되거나 인기인이 될만한 잠재력도 자질도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쯤부터는 한국에서 가르치는 역사의 관점과 여러 왜곡되고 과장된 정보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이 나라를 망치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정의감을 앞세워 하나하나 공격적인 어투로 비방했고 내 학급의 부담임이었던 역사 선생과도 교무실에서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의견을 짓밟고 에워싸 나를 공격하자 점차 소위 일뽕이라고 불리는 부류와 비슷한 극단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다. 열등 의식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왜 나에게 그렇게 대했는지 그리고 왜 사회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인 관념과 행동을 보이는지를 역사 관련 지식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던 것 그리고 내가 속한 나라에 대한 자아의 투영 그리고 이것의 폐해, 그리고 이 폐해에 대한 매우 극단적인 인식을 모두 경험하게 된 것이 중요했고 내가 틀렸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네티즌들의 지식과 논리적 접근 방식은 매우 이상하고 허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경계심을 가진 나를 반성하게 했다.
그들과 논쟁을 피하고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치켜 세워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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