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기 선생님들처럼 전문 철학책 읽어본 적 없습니다. 그치만 사유하는 것 자체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생각한 이론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라고 믿습니다.
또 철학과 철학 간, 즉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생각 간의 우위란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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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아이는 7살 아이의 이론이 있고, 나는 나의 이론이 있습니다.
7살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사탕을 더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리고 그 이론이 그 아이 입장에서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최선이라면, 그거면 철학으로서 난 존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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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혼난다는 것, 양심에 대한 것 등을 깨닫고, 그 아이가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철학으로 또 변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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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경제적이든 지식과 깨달음으로든 도덕으로든 쾌락으로든 모든 걸 통틀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철학하고 실천하는 이유가, 나의 행복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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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행복 때문입니다. 지식과 깨달음이 날 더 기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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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하게 살 겁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을 베풀 것이고 용서할 겁니다. 왜냐면 난 이게 행복합니다. 분노를 다스리고 나면 마음이 고요하고 행복합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고 난 존중할 것입니다.
선생님들 글 보면서 공감도 하고 반론도 나오고 여러가지 느낍니다. 글의 깊이를 보면서 나이가 궁금했어요. 젊은 분은 없겠죠? 연륜 있을 거 같은데요. 사실 전 20대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생각한 이론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라고 믿습니다.
또 철학과 철학 간, 즉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생각 간의 우위란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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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아이는 7살 아이의 이론이 있고, 나는 나의 이론이 있습니다.
7살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사탕을 더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리고 그 이론이 그 아이 입장에서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최선이라면, 그거면 철학으로서 난 존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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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혼난다는 것, 양심에 대한 것 등을 깨닫고, 그 아이가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철학으로 또 변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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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경제적이든 지식과 깨달음으로든 도덕으로든 쾌락으로든 모든 걸 통틀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철학하고 실천하는 이유가, 나의 행복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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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행복 때문입니다. 지식과 깨달음이 날 더 기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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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하게 살 겁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을 베풀 것이고 용서할 겁니다. 왜냐면 난 이게 행복합니다. 분노를 다스리고 나면 마음이 고요하고 행복합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고 난 존중할 것입니다.
선생님들 글 보면서 공감도 하고 반론도 나오고 여러가지 느낍니다. 글의 깊이를 보면서 나이가 궁금했어요. 젊은 분은 없겠죠? 연륜 있을 거 같은데요. 사실 전 20대입니다.
저는 교회는 잘 안 가지만, 창조자 존재를 믿고, 기독교의 하나님이 그 창조자라고 믿습니다. 정치는 이번에 한동훈 밀어주려고 합니다. 전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그치만 불행하다고 생각 안합니다. 혼자가 좋습니다. 행복으로 가는 게 철학이고, 신념, 정치, 인간관계 등이 중요한 사유 주제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위에 처럼 생각합니다.
굿
굿^^ 님은 정말 멋있습니다.
철학philosophy과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 수시로 하는 낱말이 "철학"이지요. 그런데 그들의 "철학" 또한 어떤 궁극적 사태, 또는ㅡ결코 바뀔 수 없는ㅡ신념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하여ㅡ님의 주장ㅡ일곱 살의 철학과 성장함에 따라 변하는 철학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고종석 씨라고, 한국 문단에서 소설가의 소설가로 불리는 기자 출신의 작가가 있습니다. 그 양반께서 자주 하는 주장이 "내가 죽고 나면 다 끝인데 미래 사회를 위한 캠페인이 다 무슨 소용이람?" 철저한 개인주의이죠. 그가 의지하는 철학자가 니체(김진석)니 비트겐슈타인(이영철)이니 시오란Emil Cioran 따위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요. 즉, 철학은 끝없이
펼쳐지는 현상계 일일(곧 일상)을 잘 대처하면 그만이라는 주장입니다. 제법 멋있는 말이지만, 과연 그럴까요? 고종석 씨는 다른 한편으로 "한국 최고의 철학자인 내 친구들"이라며 수시로 김진석(인하대 교수)과 이영철(부산대)을 추어올립니다. 말은 멋있는 개인주의자이지만 그가 말하는(향하는) 철학의 본질은 엘리트주의예요. 진짜 허무주의도 아닙니다!
*소설가v들v의 소설가.
철학이란 건 딱 두 가지 조건밖에 없어요. 본질이거나 본질의 차후meta. 예컨대 실재론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예, 관념적으로 가능합니다. 관념적 실재로서 존재론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예, 인식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진짜 철학(자)은 도리어 그 반대의 경우를 물어야 하죠. ㅡ고종석 씨에 비추어ㅡ미래와 과거를 되묻는 겁니다. "내가 죽으면 정말로 다 끝인가?", 또 "나의 노력으로서 미래는 달라질 수 있는가/나의 노력 이전에 과거 내 부모의 어떤 영향(행운)이 지금 나의 풍족을 최소한 담보하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고종석 씨 과거(부모)와 미래(자식)에도 지금과 똑깥은 정도의 노력(이란 낱말)에 대한 의미론적 쓰임새가 필요할 겁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의미론은 일반 사람들이 오해하는 그런 식의 무조건적 의미 부여가 아니에요. 김춘수 시인의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으므로 너는 꽃이 되었다" 이후의 문제이지요.
고종석 씨는ㅡ한국어의ㅡ탁월한 언어학자이기도 한데, 너무 자신만만하죠. 언어학자인 고종석 씨야말로 비특겐슈타인을 완벽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언어철학은 언어학과 친족관계가 아닙니다. 그 발생원리를 따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게요. "침팬지와 대구의 서가는 그 조상이 같다."
언어학은 언어가 곧 존재의 만능인 경우이고, 언어철학(분석철학)은 언어의 부질없음을 질타하는 경우입니다. 뭔가(대상이) 내 앞에 주어지면 최소 두세 번은 곱씹어 생각해야 해요.
*부질없음을 질타하다? 고종석 씨가 의지하는 이영철 교수, 이영철 교수가 평생토록 붙잡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로써 간단하게 되돌려 줄게요. "말은 본디 의미(개념)를 담고 있지 않다. 말은 선언이고 표정이며 몸짓일 뿐이다. 말은 말한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초월할 수 없다."
제 주장은 저의 신념일 뿐이군요. 변하지 않는 본질이 아니라요. 언어란 건, 철학이 아니고, 즉 본질적인 의미를 담은게 아니군요.
아름다운 말이 철학이 아니라고 쓴 글을 봤습니다. 그게 이런 의미군요.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요.
본질 또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철학적 주장sartre도 있습니다. 그런 연약한 본질에 비하면 신념lenin은 얼마나 큰 것일까요? 본질 또한 변한다는 말은 '본질'이란 낱말이 담고 있는 사전적(개념이라고 해도 좋다) 의미가 아니에요. 본질의 실제적 쓰임새에 관한 문제이지요. 예, 언어 자체(낱말의 뜻)가 철학일 리는 없지요. 그래서도 안
됩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 초기 노트엔 바로 지금 님과 꼭 같은ㅡ개념(사전:기성철학적 낱말)과 실개념, 의미론, 관계론, 경험들의 총체ㅡ주제를 오랜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선험주의이겠지요. 예 말씀하신 바, 철학은 사전적 낱말 뜻의 사사로움을 다투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건 두세 번 곱씹어야 하는 말인데, 낱말(그것이 개념어라 할지라도)의 뜻을 다투고 가리는 게 철학이 아니라면 거기엔 화행론 따위를 넘어선 개인의 어떤 신념체계(의미론)도 반드시 작동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와 얘기 중입니다. 다시 접속할게요.
예, 정확합니다. 아름다운 말은 철학이 아닐 뿐더러 시도 아닙니다. ※의미>의미론 행동/관계>화용론(>화행론) :철학에서 ~론(접미사: 주장할-론)mantic이 붙을수록 그 의미의 폭은 축소됩니다. 또는 의미와 의미론은 천지차입니다.
또는, 신념(정치=)>이념>개념 또, 인간 관계>정치.
*신념(=정치)>이념>개념
님은 철학이 무언지를 알고서 철학의 지난함에 접근한 듯합니다. 님의 지금 이십대는 나의 지금 오십대와 마찬가지의 철학적 무게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님은 지금 내가 묻고 있는 질문들을 삼십 년 가까이 당겨서 묻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막걸리 한잔 마시고 있습니다. 술 좀 사올게요.
칸트의 주장은 쉽게 말해서 이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겁니다. 우선은 그러합니다. 이 우선조차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지만.
양문석 씨의 "내 딸이 받은 새마을금고의 대출 때문에 피해본 사람이 어딨어!" 라는 발언은 칸트가 가장 싫어하는 원시적 도덕법칙의 위배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의 원시성은 동양의 윤리관(도법명유)에서도 드러납니다.
노자와 장자, 상앙과 한비(한비는 더 훗날의 사람일 텐데 아무튼), 공손씨와 혜시, 공자와 맹자가 향하는 길 그 모두에 수오지심이 놓여 있습니다. 이건 사상의 우월 투쟁과 관계없는 인간의 근본도리입니다.
그저 보기에 별스러운 악행을 저지른 일이 없는 대통령 윤석열 씨를 왜 세상사람 7할이 싫어할까요?
이재명 씨의 막말 또는 편법과 조국 일가의 불법은 최근 양문석 씨의 기행보다 더 충격적인 사태로서 이미 우리에게 각인된 것인데 왜 많은 사람은 이재명_당(민주당)과 조국_당에 여전한 한 표를 던질까요?
윤석열 씨가 이토록 손가락질 받는 까닭이 과연 그의 처 김건희 씨 때문일까요?
부끄럽게도 지난 대선 때 나는 윤석열 씨에게 한 표를 던졌습니다. 그 결과 내가 뽑은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민주주의니까 나의 선택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경찰과 검사와 판사가 무서워서 더 이상 진행하기가 힘듭니다. 나경원 씨는 '사이버_모욕죄 도입을 발의(2008)했고, 윤석열 씨는 이에 따른 처벌수위만을 궁리했죠. 그리고 한동훈 씨는 그들의 충실한 후배였을 뿐입니다.
철학에서의 경우를 말하고 싶었는 데 어쩌다가!)말머리를 완전히 돌리겠습니다: 이번 총선도 이전의 총선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와 실투표의 결과가 크게 어긋날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민주당의 승리(과반이상)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과반 이상의 결과가 기왕의 국힘 떨거지들의 영원한 퇴장과 윤석열 같은 법조출신의 샛별이 더 이상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으면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조금씩 더러운 이름들(기득권)을 지워 나가는 게 또한 정치이고 진보입니다. 나는 망설이고 망설이며 망설이다가 투표 종료 9분을 남겨 두고 기어이 윤석열에게 한 표를 던졌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이 지경입니다.
어떠한 여론조사도 믿지 마세요. 그건 오늘날의 또 다른 예언(미신)입니다. 예언은 어떤이에게는 맞고 또 어떤이에게는 틀리려고 존재하는 영원한 난센스입니다. 님은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님이 마음가는 이에게 한 표를 던지면 됩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왜 윤석열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고, 한동훈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친구였는지를 낱낱이 밝혀 보겠습니다.
한동훈에게 한 표를 던진다는 말씀은 참 고맙지만, 범죄자 이재명, 조국보다 몹쓸 인간으로 낙인 찍힌 윤석열의 인간(존재자) 분석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그래도 이재명, 그래도 조국을 뽑는 건 윤석열을 도저히 도무지 애시당초 좋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나는 이번에 이재명 씨가 조선일보 만큼은 이땅에서 완전히 멸화, 아니 종말을 고했으먼 좋겠습니다. ㄱ리고 천하의 조선쌍놈 방씨 일가를 삼족, 아니 씨를 멸하십시오. 정치는 잔인해야 합니다!
철학 설명은 나중에 천천히 읽어볼게요. 근데 윤윤석열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한 거 아는데요. 범죄혐의자인 이재명보다 왜 더 미움받죠? 이재명 대표는 음주운전 전과 있어서 도저히 도덕적으로 못 믿겠어요. 다른 건 혐의라고 해도 이건 빼박인데요.
그리고 당신은 진짜 철학자인 것 같습니다.
118) 집안 잔칫날이라서 몹시 취해서 왔습니다. 본디 내가 말이 짧고, 뒤죽박죽이며, 상대의 의도를 한 발 앞서거나 한 발 늦어서 항상 횡설수설합니다. 짧게, 님의 말씀에만 대답할게요.
118.220/ 예전 국민대 철학과 최종욱 교수께서 자신이 쓴 책의 끝문장을 이렇게 매듭지었습니다. "ᆢ한국인은 타고난 사회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오랜 억압의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그들의 혁명(대한민국 건국)은 필연적 평등주의로 귀결되어야 한다."
최종욱 교수의 저 말씀이 효력을 발생하던 당시는 김대중 정권의 끝물이었고 노무현 정권의 초창기였습니다. 나는 그때 이십대 후반에서 서른 즈음을 지나고 있었지요. 아직은 철없는 마음에 이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 이모 저모 교수들은 가만히 있는데, 고작 국민대 교수가 본격 비판철학(예컨대 나치의 아도로노, 호르크하이머)를 전개하다니."
당시 내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 소리를 했냐면, 나는 김대중 씨를 사회주의자라 믿었고, 그의 실패는 노무현이라는 희대의 사회주의자를 통해서 반드시 정합에 이를 줄 믿었거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김대중, 노무현 씨의 본질은 사회주의자도 아니었고 이념에 별 관심없는, 오로지 자기확신과 정치공학에 의해서 움직인 흔해빠진 정치꾼일 뿐이었습니다. 칸트를 잠시 의지하면, 그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연극하였을 뿐, 타인(만인)에겐 고통만 안겨주는 경우이지요.
이제 24시간 후에 반드시 진짜 댓글을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