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님(칸트,초기비트겐슈타인)의 발전된 형태로서 분석철학 쪽 입장에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ㅡ라캉, 데리다, 들뢰즈ㅡ등을 어떤 방식으로 사유하시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사실 제 친구중에도 분석철학 전공자가 있어서 만나면 서로 까면서 공부하거든요. 저는 분석철학이 언어적 자폐증에 가깝다는 주장이고 친구는 칸트 이후 대륙철학이 이미 다 끝난 얘기를 반복한다고 주장하거든요. 도움 한 번 주실 수 있으실까요.
댓글 51
아카넷(칸트) = 파이썬(괴델)
666(106.101)2024-04-10 20:26:00
괴델과 칸트는 뭔 상관인지요? 우리는 칸트를 생각할 때 우리의 말, 믿음, 종교에 '관해 생각하'는데 괴델의 수식화된 논리학, 게다가 그것의 더블인 괴델수의 '계산' 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뒤집어도 같고요.
레뽀(1.225)2024-04-10 21:08:00
너무 미학 관련 해서(괴델과 미학) 옛날책 떠올려다보니 이렇게 됬네요.
666(116.122)2024-04-10 21:10:00
답글
네 여기에 답변은 그렇고 윗글에 달아주세요
레뽀(1.225)2024-04-10 21:11:00
제가 과문해서 그렇겠지만, 라캉과 들뢰즈는 초기 비트겐슈타인tractatus이나 분석철학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구요. 데리다는 조금 다른데, 그 또한 구조주의 언어학(예컨대 소쉬르)에 대한 비중이 크죠. 라깡 또한 그러한 구조주의에 전적으로 의지하구요.
고독사(125.248)2024-04-11 20:22:00
답글
마찬가지로 비트겐슈타인 및 그 아손의 초기 언어철학과 영미 분석철학은 라캉과 들뢰즈 따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죠.
고독사(125.248)2024-04-11 20:25:00
답글
영미 분석철학에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를 다룬 비판서도 희귀하고 그에 관한 국내의 전공자는 더욱 더 희귀해서 외국어 수업이 일천한 저로서는 함부로 말씀 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서강_올빼미의 몇몇 선생님이 그에 관한 주제를 놓고 담화를 나누고 서로 원서 정보를 교환하던 장면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서강_올빼미 검색창을 한번 이용해
고독사(125.248)2024-04-11 20:32:00
답글
보십시오. 거기서도 프랑스철학 전공자와 영미 분석철학 전공자들 간의 미묘한 우월논쟁이 생겨나더군요. 그러한 인정투쟁은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곧 담론 형성) 역할을 담당하는ㅡ어쩌면 거의 전부이기도 한ㅡ 것이라서 당연한 현상입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0:35:00
답글
네 알겠습니다
레뽀(1.225)2024-04-11 20:40:00
저는 님이 지적하신 "분석철학의 자폐증적 성향"이라는 판단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님의 친구분이 말씀한 "(탈 구조주의 프랑스 철학까지) 모든 대륙철학의 문제는 이미 칸트에게서 끝났다." 는 주장에 더욱 더 동의합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0:47:00
답글
그러나 프랑스철학의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 사소한 일상관계로서 타인에 대한 이해, 수려한 문체style는 철학을 떠나서 많은 이를 감동시키고 홀리기에 충분하죠. 프랑스철학은 철학 자체의 문제를 야기시키기보단 미학적으로 뛰어납니다. 언어의 예술이죠.
고독사(125.248)2024-04-11 20:55:00
답글
제 경험상, 프랑스철학은 영미 분석철학 전공자보다 미학 전공자나 어문학 전공자, 문창과 출신이 더 빨리,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더군요. 한국의 이름난 시인들은 웬만한 학부 수준 이상의 프랑스철학 전공자입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0:59:00
답글
한국 태생의 가장 유명한 영미 분석철학자(미국인, 브라운대 석좌교수)인 김재권(1934~2019, 심리주의:심신수반론) 교수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하는 기자의 물음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제 평생에 기억나는 책입니다. 우선 문장이 아름다워요. 낱말 하나하나는 도두보이는 구석이 없지만 이게 한 문장, 한 장,
고독사(125.248)2024-04-11 21:13:00
답글
한 권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어떤 것이 있어요. 나는 어쩌다가 영미철학을 공부하였지만, 내 바람은 영미철학의 딱딱한 구석을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못했죠." 김재권 교수도 유학 이전, 유학 후 초기엔 프랑스 철학 전공자였습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1:21:00
답글
*"(김재권 교수의 말)"에서, 내 바람은 영미철학의 딱딱한 구석을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유연하게(또 아름답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문장을 분해하는 분석철학이 어찌 아름다운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겠냐만은.
고독사(125.248)2024-04-11 21:34:00
음, 주제 넘게 한마디 나설게요. 님의 도움을 외면할 수가 없네요. 나의 지금 이 짓이 님께는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2:44:00
분석철학(언어철학)이 프랑스 철학을 건드리지 않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걔들이 하는 말(형이상학적 언표) 모두가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 있어서입니다. 그에 관한 증명(의 절차)은 이미 알고 있는 바, 트락타투스wittgenstein이구요.
고독사(125.248)2024-04-11 22:50:00
답글
독사햄 ㅎㅇ
좆트겐슈타인(118.235)2024-04-11 22:57:00
답글
이게(형이상학) 실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불세출의 단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논리실증주의자에 의해서 반드시 비난받을 요소를(아예 속성을) 제 몸 스스로 지니고 있었던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술을 사오면서까지 머리속에 생각한 낱말을 댓글창에 먼저 올려야 해요. 금방 까먹거든요!
고독사(125.248)2024-04-11 23:35:00
답글
지금 술을 사? 낼 휴무냐??? 야 기분조타!
좆트겐슈타인(118.235)2024-04-11 23:43:00
답글
좆트/ 노래 한 곡 더 구걸합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1:29:00
나는 표상이란 말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험한 낱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표상은 대륙철학의 핵심 개념어이지요. 이 표상이 실은 이데아plato의 칸트적 주석이에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란 건 고작 플라톤의 이데아를 '지금-여기(현실)'로 소환한 것일 뿐이란 것. 그러니 전회가 맞죠. 플라톤의 이데아가 망가뜨린 현실세계를 다시금 복원하는 전회.
고독사(125.248)2024-04-11 23:09:00
답글
사람들은 이데아를 관념(번역어)과 동의어로 생각하는데(심지어 국어사전적 의미도 그러할 경우가 많음), 아니에요. 이데아는 오직 형상일 뿐입니다. 그것도 주관이 개입하지 않은 절대적 형상입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3:38:00
답글
여기 있는 레뽀의 형식은 인간이고 남자이고 착하고 독똑하고 아름답고ᆢ 뭐 이런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 없어요. 레뽀는 단지 레뽀일 뿐이며, 그것은 아름답거나/착하거나/똑똑하거나/아름다운 단일한 형상의 일의적 성격일 뿐이에요.
고독사(125.248)2024-04-11 23:43:00
답글
라고 고독사 형님께서 말하신다^^
좆트겐슈타인(118.235)2024-04-11 23:50:00
답글
플라토의 이러한 이데아는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생겨난 개념이에요. 많은 이들이 그 태생을 파이돈에 두고 또 파르메니데스와 억지 연관짓는데, 둘 다 아직 개연성의 강/약 측면일 뿐,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철학자 기다 겐(현상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본디 칸트 전공자임: 그의 스승이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칸트 철학자임)은 플라토
고독사(125.248)2024-04-11 23:52:00
답글
좆트/예, 이건 순전히 나의 말입니다. 누구의 입장도 아니고, 누구의 명예도 더럽히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고독사(125.248)2024-04-11 23:53:00
답글
전승text의 공백기를 따져서 플라토가 한때 어떤 지방의 신비주의 집단과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합니다.(반철학은 무엇입니까, 기다 겐.)
고독사(125.248)2024-04-11 23:57:00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네요.
레뽀(1.225)2024-04-12 00:06:00
답글
예, 여기서부터는 철학사가 아니라 아예 소설입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10:00
답글
또 다른 전승에는 전쟁(펠로폰네소스) 후에 플라토가 무슨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에 지금의 시칠리아와 몰타까지 유람하면서 이집트인과도 어울렸다 해요. 오늘날 이집트의 어원이 집시와도 같으니, 그게 떠돌이 집단일 수도 있겠구요.
고독사(125.248)2024-04-12 00:19:00
답글
사실 그런 게 여기서 문제가 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고독사님께서는 그런 것이 제 물음에 중요한 것이라 보십니까.
레뽀(1.225)2024-04-12 00:24:00
답글
죄송합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25:00
답글
하하핫(햄! 그냥 모른다고 하세요..!)
좆트겐슈타인(118.235)2024-04-12 00:31:00
답글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34:00
일단 표상문제는 별 필요 없어 보이고, 문제는 프랑스어와 철학적 엄밀함,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문제가 있는데요. 뭐 프랑스어 특유의 다의성이나 괴상한 시제 때문에 다른 언어로 옮기기 힘들다는 건 압니다. 근데 고독사님이 말씀하시는 비트겐슈타인의 정체는 모르겠습니다. 논리 철학 논고의 비트겐슈타인만 인정하시는 겁니까.
레뽀(1.225)2024-04-12 00:18:00
답글
저도 후기 철학을 더 좋아하고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정말로 침묵해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세상의 종말 상태(사태)이지요. 하지만ㅡ제 짧은 생각으로는ㅡ철학이란 이름으로 현실세계 너머의 어떤 존재를 함부로 입에 담는다는 건 반칙인 듯합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25:00
답글
철학적 탐구에서 말하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레뽀(1.225)2024-04-12 00:26:00
답글
예, 미안해요. 정말로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34:00
그냥 군더더기 없이 가능한 답변은 어렵나요
레뽀(1.225)2024-04-12 00:25:00
답글
아무튼 칸트가 이데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이 표상인데, 이건 이데아를 감각, 주관적 형식에 복종시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에 관한 서양인 특유의 전통이 남아서 결국 선험이 탄생하지요; 선험은 분석철학의 적입니다. 나대서 미안해요.
고독사(125.248)2024-04-12 00:33:00
답글
나대서 미안합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35:00
답글
처음엔 설명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고독사(125.248)2024-04-12 00:36:00
답글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궁금했고 고독사 님의 답이 너무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해줄 순 없으신가하는 요구를 한 겁니다. 뭐 천천히 조금씩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카넷(칸트) = 파이썬(괴델)
괴델과 칸트는 뭔 상관인지요? 우리는 칸트를 생각할 때 우리의 말, 믿음, 종교에 '관해 생각하'는데 괴델의 수식화된 논리학, 게다가 그것의 더블인 괴델수의 '계산' 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뒤집어도 같고요.
너무 미학 관련 해서(괴델과 미학) 옛날책 떠올려다보니 이렇게 됬네요.
네 여기에 답변은 그렇고 윗글에 달아주세요
제가 과문해서 그렇겠지만, 라캉과 들뢰즈는 초기 비트겐슈타인tractatus이나 분석철학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구요. 데리다는 조금 다른데, 그 또한 구조주의 언어학(예컨대 소쉬르)에 대한 비중이 크죠. 라깡 또한 그러한 구조주의에 전적으로 의지하구요.
마찬가지로 비트겐슈타인 및 그 아손의 초기 언어철학과 영미 분석철학은 라캉과 들뢰즈 따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죠.
영미 분석철학에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를 다룬 비판서도 희귀하고 그에 관한 국내의 전공자는 더욱 더 희귀해서 외국어 수업이 일천한 저로서는 함부로 말씀 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서강_올빼미의 몇몇 선생님이 그에 관한 주제를 놓고 담화를 나누고 서로 원서 정보를 교환하던 장면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서강_올빼미 검색창을 한번 이용해
보십시오. 거기서도 프랑스철학 전공자와 영미 분석철학 전공자들 간의 미묘한 우월논쟁이 생겨나더군요. 그러한 인정투쟁은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곧 담론 형성) 역할을 담당하는ㅡ어쩌면 거의 전부이기도 한ㅡ 것이라서 당연한 현상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님이 지적하신 "분석철학의 자폐증적 성향"이라는 판단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님의 친구분이 말씀한 "(탈 구조주의 프랑스 철학까지) 모든 대륙철학의 문제는 이미 칸트에게서 끝났다." 는 주장에 더욱 더 동의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철학의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 사소한 일상관계로서 타인에 대한 이해, 수려한 문체style는 철학을 떠나서 많은 이를 감동시키고 홀리기에 충분하죠. 프랑스철학은 철학 자체의 문제를 야기시키기보단 미학적으로 뛰어납니다. 언어의 예술이죠.
제 경험상, 프랑스철학은 영미 분석철학 전공자보다 미학 전공자나 어문학 전공자, 문창과 출신이 더 빨리,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더군요. 한국의 이름난 시인들은 웬만한 학부 수준 이상의 프랑스철학 전공자입니다.
한국 태생의 가장 유명한 영미 분석철학자(미국인, 브라운대 석좌교수)인 김재권(1934~2019, 심리주의:심신수반론) 교수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하는 기자의 물음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제 평생에 기억나는 책입니다. 우선 문장이 아름다워요. 낱말 하나하나는 도두보이는 구석이 없지만 이게 한 문장, 한 장,
한 권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어떤 것이 있어요. 나는 어쩌다가 영미철학을 공부하였지만, 내 바람은 영미철학의 딱딱한 구석을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못했죠." 김재권 교수도 유학 이전, 유학 후 초기엔 프랑스 철학 전공자였습니다.
*"(김재권 교수의 말)"에서, 내 바람은 영미철학의 딱딱한 구석을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유연하게(또 아름답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문장을 분해하는 분석철학이 어찌 아름다운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겠냐만은.
음, 주제 넘게 한마디 나설게요. 님의 도움을 외면할 수가 없네요. 나의 지금 이 짓이 님께는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분석철학(언어철학)이 프랑스 철학을 건드리지 않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걔들이 하는 말(형이상학적 언표) 모두가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 있어서입니다. 그에 관한 증명(의 절차)은 이미 알고 있는 바, 트락타투스wittgenstein이구요.
독사햄 ㅎㅇ
이게(형이상학) 실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불세출의 단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논리실증주의자에 의해서 반드시 비난받을 요소를(아예 속성을) 제 몸 스스로 지니고 있었던 겁니다.
아아 좆트님/ 방가방가!
내얘기를 존나게 하고있었구만 기래!
ㅋㅋㅋ 자기는 항상, 영원토록ㅡ우리들의ㅡ영웅이니까!
나의 영웅 좆트님도 오셨겠다, 결국은 한잔해야겠군요. 술 좀 사올게요.
크, 기부니다!! https://youtu.be/qpybl9qqWBg?si=HzLzhrF8UzBf4vQT 한곡 조진다이깅
고맙습니다. 그런데 술을 사오면서까지 머리속에 생각한 낱말을 댓글창에 먼저 올려야 해요. 금방 까먹거든요!
지금 술을 사? 낼 휴무냐??? 야 기분조타!
좆트/ 노래 한 곡 더 구걸합니다.
나는 표상이란 말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위험한 낱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표상은 대륙철학의 핵심 개념어이지요. 이 표상이 실은 이데아plato의 칸트적 주석이에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란 건 고작 플라톤의 이데아를 '지금-여기(현실)'로 소환한 것일 뿐이란 것. 그러니 전회가 맞죠. 플라톤의 이데아가 망가뜨린 현실세계를 다시금 복원하는 전회.
사람들은 이데아를 관념(번역어)과 동의어로 생각하는데(심지어 국어사전적 의미도 그러할 경우가 많음), 아니에요. 이데아는 오직 형상일 뿐입니다. 그것도 주관이 개입하지 않은 절대적 형상입니다.
여기 있는 레뽀의 형식은 인간이고 남자이고 착하고 독똑하고 아름답고ᆢ 뭐 이런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 없어요. 레뽀는 단지 레뽀일 뿐이며, 그것은 아름답거나/착하거나/똑똑하거나/아름다운 단일한 형상의 일의적 성격일 뿐이에요.
라고 고독사 형님께서 말하신다^^
플라토의 이러한 이데아는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생겨난 개념이에요. 많은 이들이 그 태생을 파이돈에 두고 또 파르메니데스와 억지 연관짓는데, 둘 다 아직 개연성의 강/약 측면일 뿐,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철학자 기다 겐(현상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본디 칸트 전공자임: 그의 스승이 일본의 가장 권위있는 칸트 철학자임)은 플라토
좆트/예, 이건 순전히 나의 말입니다. 누구의 입장도 아니고, 누구의 명예도 더럽히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전승text의 공백기를 따져서 플라토가 한때 어떤 지방의 신비주의 집단과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합니다.(반철학은 무엇입니까, 기다 겐.)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네요.
예, 여기서부터는 철학사가 아니라 아예 소설입니다.
또 다른 전승에는 전쟁(펠로폰네소스) 후에 플라토가 무슨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에 지금의 시칠리아와 몰타까지 유람하면서 이집트인과도 어울렸다 해요. 오늘날 이집트의 어원이 집시와도 같으니, 그게 떠돌이 집단일 수도 있겠구요.
사실 그런 게 여기서 문제가 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고독사님께서는 그런 것이 제 물음에 중요한 것이라 보십니까.
죄송합니다.
하하핫(햄! 그냥 모른다고 하세요..!)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일단 표상문제는 별 필요 없어 보이고, 문제는 프랑스어와 철학적 엄밀함,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문제가 있는데요. 뭐 프랑스어 특유의 다의성이나 괴상한 시제 때문에 다른 언어로 옮기기 힘들다는 건 압니다. 근데 고독사님이 말씀하시는 비트겐슈타인의 정체는 모르겠습니다. 논리 철학 논고의 비트겐슈타인만 인정하시는 겁니까.
저도 후기 철학을 더 좋아하고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정말로 침묵해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세상의 종말 상태(사태)이지요. 하지만ㅡ제 짧은 생각으로는ㅡ철학이란 이름으로 현실세계 너머의 어떤 존재를 함부로 입에 담는다는 건 반칙인 듯합니다.
철학적 탐구에서 말하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예, 미안해요. 정말로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냥 군더더기 없이 가능한 답변은 어렵나요
아무튼 칸트가 이데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이 표상인데, 이건 이데아를 감각, 주관적 형식에 복종시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에 관한 서양인 특유의 전통이 남아서 결국 선험이 탄생하지요; 선험은 분석철학의 적입니다. 나대서 미안해요.
나대서 미안합니다!
처음엔 설명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궁금했고 고독사 님의 답이 너무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해줄 순 없으신가하는 요구를 한 겁니다. 뭐 천천히 조금씩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