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대해 일절 모르는 일반인임.
칸트의 도덕관에 대해 읽다가 궁금해서 적어봅니다.
좋은 결과가 나왔어도 행동 동기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은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판단의 행위 자체가 의미하는게 무엇인가요??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는게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궁금합니다.
애초에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는건 아닌지,,,
칸트의 도덕관에 대해 읽다가 궁금해서 적어봅니다.
좋은 결과가 나왔어도 행동 동기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은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판단의 행위 자체가 의미하는게 무엇인가요??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는게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궁금합니다.
애초에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는건 아닌지,,,
도덕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내가 봉사활동 점수를 얻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것은 순수한 마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그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뜻임니다
넵 거기까지는 알겠지만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면 뭐가 나쁜것인지 도덕적 가치가 있는 행위를 하면 왜 좋은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오랜만에 뵙는듯. 반갑네요.
도덕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선(善)과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구요 도덕적 가치가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좋기 때문에 하는게 아니고요
저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행동이 선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결과가 아니라 동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선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의 원천이 남들에게 잘보이려 했거나, 자기 만족을 위해 한것이라면 선한 행동이었다면(가언, 만약 ~이라면) 선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한행동은 정언명령(인간이기 때문에 ~을 해야한다)에 따라한 행동이 선행이라는 것이죠.
칸트가 선한 행동에 강력한 조건을 건 것은 그 당시 영미 경험주의 철학, 특히 흄의 동정성론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흄은 동정심이 선행의 원천이라고 했지만 칸트는 선행이 그러한 인간의 변하기 쉬운 마음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죠.
아하 그러면 선행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부정하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는것에 의의가 있는것이군요??
좀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는데 물론 칸트가 말하는 선한행동은 선의지라고 하는 자유의지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언명령의 선에대한 기준을 가지고 태어난다기보다는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칸트가 말하는 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고로 실천이성비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죠. 당연히 비판도 많고요. 하지만 정확히 맞는 말은 아닐지라도 굉장히 중요한 관점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네 저도 전문가는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이해하셔도 되지 싶습니다.
문유석 씨라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작가가 있어요. Ott 드라마 '비질란테'의 극작가(각본가)이지요. 부장판사 출신이면 한국사회의 당연한 전관예우로 인해서 1등급 로펌을 들어가거나 자신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세운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수 있는데, 이 독특한 양반은 아예 변호사회 등록을 않고 전업작가를 선언한 모양입니다.
그게 일생의 자랑인 듯 나서지요. 즉, 본인(문유석)은 국가ㅡ법ㅡ권력과 전혀 상관없이 행동했고 나아가서 결코 권위적인 인물이 아니란 선언이지요.
그 양반(문유석) 항상 주장하는 게, "나는ㅡ태생적ㅡ개인주의자다"예요. 그래서 수십억 연봉이 "당연한" 로펌 전문 변호사나 혹은 전관 변호사 일을 "(스스로) 관둔" 것이지요. 중요한 건 나(자신)의 가치(세계관)이니까.
바로 이 지점입니다. 문유석 씨는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윤리를 동격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문유석 씨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붙은 뒤에 한 일이라곤(그의 말씀대로 내세울 일이라고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까지 국가를 등 뒤에 업고 평생 타인과 사회에 대한 '옳고 그름의(정/반)'의 판단자 역할밖에 한 것이 없는데, 그는 난데없이
착한 판사, 정직한 판사로 돌연변이 중입니다.
다0ㅗㄹ님 말씀도 맞구요, 175님 말씀도 맞아요. 칸트는 양비론과 양시론을 동시에 껴안고 출발합니다. 경험의 총체이지요.
다시, 부장판사 문유석 씨의 주장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가?
많은 법조계 출신이 서로 다투면서까지 일생의 단 한 권으로 "'칸트' 일기"를 추천하던데, 걔들은 "사실" 칸트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순수이성비판을 모르는 새끼가 독일어를 흉내내면서 "실천이성"과 "판단력" 따위를 입에 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