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부모가 없는 아이한테 난데 없이 고아라고 애기하며 비웃는다. 가정해보자.


이 아이가 고아인 것은 분명한 팩트지. 고아의 정의자체에서 벗어나지도 않지.



그러나 내가 이 아이에게 순수하게 사실전달을 목적으로 애기한 걸까?



당연히 아니겠지, 이미 나는 사회적으로 고아라는 것은 주로 부정적으로 간주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고아라는 말은 당사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콤플렉스라는 것을 인지하며



이 모든 복합적인 사실을 고려해서 멸시적이고 비하적인 의도로 상대방에 대한 "특정팩트"를 애기한거지



내가 여기서 핵심으로 삼고 싶은 것은 저 "특정"이라는 단어임



조금만 생각해봐도, 우리는 주어진 모든 팩트를 다 중시하지 않음.


예를 들어서 길가다 출근하는 김씨의 자동차의 바퀴가 몇 CM인지에 대해서 대부분 무심하겠지.


왜? 그건 별로 유용하지 못하며 쓸데없는 정보니깐.



즉 우리는 모든 팩트를 중시하지 않으며, 중요한 팩트를 선택적으로 고른다는 소리임.


팩트의 중요성은 대체적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목적의식과 처한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음.



나는 그렇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가장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라고 생각함.



그 사람이 가진 목적의식이 훨씬 중요함. 이 사람은 대체 어떤 목적을 가주고 하필 저러한 팩트를 선택했을까?


이게 더 중요한 문제임.



결국 단순히 팩트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람이 팩트를 통해서 내뱉고자 하는 최종적인 의도는 무엇인가?


이걸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임.




“내가 하는 어떠한 사실발언도 그러한 가치판단을 벗어날 수 없다. 사실진술도 결국은 ‘진술’이며 이 ‘진술’이란 것은, 그 진술들은 할 가치가 있다, 아마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할 가치가 있다, 나는 그 진술들을 할 권리가 있고 아마도 그 진실성을 보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나의 그 진술을 들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며 그 진술을 함으로써 어떤 유용한 것이 성취된다 라는 등등의 문제성 있는 많은 판단들을 전제한다.” - 테리 이글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