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외부요인(육체 외부의 모든것)과 내부요인(육체)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최초 환경도 선택하지 못하고 지능과 장애, 피지컬도 선택하지 못한다. 그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굴러가며 일련의 궤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한궤도의 일부로서의 인생이다.


당신이 하는 모든 생각은 이유라는 작용의 원인에 지배되는 반작용의 결과일 뿐이며, 그 반작용의 결과는 또다른 이유의 원인이 된다.


단적인 예를 들면 당신이 어떤 사고를 당해서 기억상실에 걸려 이전을 기억하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사고라는 이유에 지배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평소 당신의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이유가 너무 복합적이고 많아서 추정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무지에 의해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유라는 작용에 지배된 반작용의 결과로서의 무수한 자연 현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유라는 것은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함께한다.


인간은 굴러가는 돌맹이와 다르지 않다.
돌맹이의 궤도는 돌맹이의 모양과 성질, 비탈길의 모양과 성질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게 돌맹이는 굴러가며 자기 자신과 비탈길에 변화라는, 또다른 이유의 원인이 되는 흔적을 남긴다. 굴러가며 더 단단해지기도 부서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비탈길의 한 면을 움푹 파이게 하기도 하고 흙먼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의 문명? 스마트폰? 그것들은 돌맹이가 은하가 되고 유성이 되고 행성이 되고 바람이 되고 바다가 되고 나무가 되고 되고 인간이 되고 건물이 되고 자동차가 되고 컴퓨터가 되고 스마트폰이 되고 ai가되고 신생명이 되고 다시 돌맹이가 되는 그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과 가능성들 그리고 그것들 중에서 결정되는 매 순간들. 그것은 비탈길을 굴러가는 돌맹이에게 작용된 에너지가 그 돌맹이의 고유한 구조를 통과하며 그 돌맹이 만의 에너지의 흐름 형상을 만들어내고 결국에 반작용이라는 결과로서의 그 돌맹이만의 궤도를 그려내는 현상의 과정인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의 모습이 획일되지 않아보이는 것 처럼, 돌맹이를 지나는 에너지의 모습도 단 하나도 똑같지 않다. 그렇기에 돌맹이의 궤도는 단 하나도 똑같지 않다.
당신의 궤도를 결정하는 여러 상념들과 그것들 중에서 결정되는 그 생각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당신이 만드는 것일까? 아니 당신의 구조와 환경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팔이 한짝이 없으면 당신에게 떠오르는 생각들의 모습도 달라지고, 돌맹이의 어느 한쪽 밀도가 달라지면 그 돌맹이의 구조를 관통하는 에너지의 전달 모양도 달라지고 결국 그 궤도도 달라지는 것처럼. 여러 상념들 사이에서 자신이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에너지 전달 과정의 모습인 것이다.


네모난 종이 어느 모서리에 불이 붙으면, 종이에 습기가 있거나 통풍이 잘되는 방향의 여부 등등 조건에 따라 불씨의 경계선은 구불구불 다양한 모습이 된다. 그렇게 구불구불 이리저리 진행되다가 오른쪽 끄트머리가 가장 나중에 탈수도 왼쪽 끄트머리가 가장 나중에 탈 수도 있을 뿐이다. 종이가 스스로 어디가 마지막으로 태워질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 오른쪽 앞모서리가 가장 늦게 탄 덕분에 그 위를 지나가던 달팽이는 살았다. 그렇게 살아난 달팽이는 화단의 풀잎을 오르던 중 어떤 아이의 손가락에 잡히고 아이는 달팽이를 기르게 된다.

이리저리 고민을 해? 그것은 종이를 가로지르며 이리저리 구불구불 나아가는 불꽃이 만드는 경계선의 모양과, 그리고 그로인해 가장늦게 연소되는 종이의 마지막 부분이 결정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돌맹이의 궤도를 결정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당신 스스로 하는 생각이란 것은 없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해도
신이 없다고 해도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도
당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확률과 논리는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유한속에서만 의미 있을 뿐
무한 속에서는 모순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돌맹이는 자유롭고
당신도 자유롭다


돌맹이는 돌맹이고
당신은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