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강의] 5. 제 1 장 - 5
제 1 절 - 5
도道
동양에서는 '도'를 중시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도'라고 하면, 대단히 신비로운 깨달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은 도란 한자 道가 뜻하는 대로 그냥 '길' 혹은 '방법'일 따름입니다. 길과 방법이 같은 뜻을 가지는 건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라도 도를 영역하면 Way 혹은 The Way가 됩니다. 모두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란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도는 '문화'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란 인간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 방법'들을 찾아 지키고 물려준 행동양식의 총체입니다. 인간은 신체기관 중에서 뇌를 선택한 종이고, 그 결과로 개체의 공격/방어 능력은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개체의 방어능력이 약한 종들이 그러하듯 인간도 모여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때문에 인간들의 뇌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간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살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따라 진화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중용'도 그런 주제에 대한 하나의 답, 그리고 매우 중요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동굴에서 수럽/채집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농토를 만들어 함께 농사를 짓고, 시장을 만들어 모이고, 급기야 대규모의 도시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모여사는 방법들을 궁리했고, 그 노력은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살면서 예측불허한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제도는 그러한 일들을 맞닥뜨리고, 처리하면서 제도 자체를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화, 곧 도는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바뀌는 세상에 응답하는 인간들의 가소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이 넓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더라도, '번성한 문화'라고 한다면 그 안에서는 우리는 '포용성', '다양성'과 같은 이타주의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 문화가 '폐쇄적'이거나 '단일'하다면 그토록 많은 인구들이 모여 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좁은 공간도 나눠쓸 수 있는 '이타심'도 타고 나지만, 우선적으로는 넓은 공간을 혼자 쓰고 싶은 '이기심'을 생존기반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문화를 이룬다는 건 결국 그런 이기심을 적절하게 통제하거나 억눌러서, 다 같이 생존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노력이 장단기적으로 늘 성공적인 건 아니었기 때문에 거대한 도시나 국가가 흥망을 거듭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공자가 살고 있던 춘추시대가 그런 일들이 빠르게 일어나는 곳이었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공자는 영속할 수 있는 큰 문화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 즉 유교문화는 진시황 이후 중국이라는 통일국가를 통치하는 '정답'으로 간주되었으니,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숙고해 보아야 하는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공자의 유학에서 '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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