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강의] 6. 제 1 장 - 6



제 1 절 - 6



솔성率性



성性을 '타고난 것'이라고 정의할 때, 솔성은 '타고난 것을 따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중용의 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을 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조금이라도 반감을 가진다면 그건 그만큼 도에 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에 떨어진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기쁠 때 기쁘다고 하지 못하고, 슬플 때 슬프다고 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이 솔성의 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어린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기쁘면 기쁘다고 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하면서 자기의 감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아이들이 기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잘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잘 배우는 이유는 그렇게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배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주변의 일들에 무감각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게 무감각해지는 대가로 얻는 것이 '이익을 좇는 삶'인데, 실제로 어른들의 대부분은 '이익이 없는 일'에 거의 나서지 않고, 그런 말을 듣거나 말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호기심'과 '배움'이라면, 어른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이익을 좇는 것' 뿐인데,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솔성'을 한다면, 어른들은 '솔리率利'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솔리를 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도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누가 물어보면, 대부분 흠칫 놀랍니다. 그들은 이익을 좇아 누군가의 노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일단 노예가 되면 자신의 뇌를 주인에게 바치고, 생각이라는 것을 끊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사람들이 '도'와 같이 말랑말랑한 단어를 들으면 생각에 고장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진정한 도는 자기 마음 속의 인간된 감정인데, 즉, 어찌보면 늘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인데, 밖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외쳐야만 비로소 반응한다는 게 어쩌면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세상은 누군가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노예로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뇌를 가져다가 자신의 원하는 바를 주입해서 돌려주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의 '원하는 바'도 결국은 '솔리', 즉, 이익을 따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이롭고, 그 결과로 다른 사람들, 즉, 뇌를 빌려 준 사람들, 즉, 노예들에게는 불리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을 지속적으로 바쳐서 얻는 그 알량한 급여가 자신과 가족들의 행복에 기여하지 못하고, 그래서 다음 생도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에 출산을 거의 하지 않는 상태가 너무도 오래되었습니다.


일반 국민이나 지도자나 다들 자기 이익만 치열하게 좇고 있으니, 이런 상황을 '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옛말에 견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솔성의 도를 깨달아 다시 말랑말랑한 아이의 마음을 갖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며,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솔성의 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인간세상에 적용되는 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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