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은 내가 애착을 가지고 읽는 책 중에 하나다. 금강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금강경의 핵심은 空 사상이라고 한다.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에 대한 강조가 경전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아마도 我空의 내용일 것이다. 금강경에는 아공과 아울러서 法空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그러니까 금강경은 공 사상에 대한 경전임이 맞다. 금강경의 이름을 풀어 쓰면 金剛般若波羅蜜經이 된다. 그 앞에 能斷을 붙이기도 한다. 반야부 경전은 그 내용이 지혜의 증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금강경의 핵심을 忍辱으로 본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경지는 물론 최상의 바른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바로 인욕바라밀에 있었다는 것이다.
샤카 족의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출가를 하였을 때 그는 가장 존귀한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거지로 변했다. 그가 수행을 해 나가는 과정은 아마도 인욕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전통의 말씀 중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이 있다. 삶이 정체되어 있다고 여길 때 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낮은 데로 가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그 높은 자리로 오르고자 한다. 그러나 높은 곳으로 올라 가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높은 곳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데에는 사람을 원하는 곳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높이 올라가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다. 노자에서 이야기한 '上善若水'도 같은 말이 아닐까.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한 '몰락의 짜라투스트라'는 또 어떠한가.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구마라습 역의 한역 금강경의 제 27장 無斷無滅分이 오늘 이야기할 주제이다. 나는 여기서 무단무멸분의 해석을 해 보이고 구마라습의 번역이 잘못되어 있음을 밝히겠다. 무단무멸분의 본문은 이러하다.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야 너가 만약 여래가 상을 갖추고 있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須菩提 莫作是念
수보리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여래는 상을 갖추고 있지 않은 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須菩提 汝若作是念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說諸法斷滅 莫作是念
수보리 너가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가 모든 법이 끊어지거나 없어졌다고 설하였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何以故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法不說斷滅相
어찌 그러한고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자는 법에 있어 끊어지거나 없어지는 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간 글씨로 된 아니 불不 자가 잘못 삽입되어 읽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번역이 바로잡히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내려온 것이다. 최대림의 역해를 참고하여 보면 그 문장에서 나오는 相은 여래의 32상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32상은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보통 사람과 다른 32가지의 훌륭한 상을 말한 것이라고 한다. 이 상을 갖춘 이는 세속에 있으면 전륜왕이 되고 출가하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 부처가 갖춘 32상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1 발바닥이 판판하다 2 손바닥에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다 3 손가락이 가늘면서 길다 4 손발이 매우 부드럽다 5 손가락 발가락 사이마다 얇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다 6 발꿈치가 둥글다 7 발등이 둥글고 노톰하다 8 종아리가 사슴다리같이 미끈하다 9 팔이 길어서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 10 생식기가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어 있는 것이 말馬과 같다 11 키가 두 팔을 편 길이와 같다 12 털구멍마다 새카만 털이 나 있다 13 몸의 털이 위로 쏠려 있다 14 온 몸이 황금색이다 15 몸에서 솟아나는 광명이 한 길이나 된다 16 살결이 보드랍고 매끄럽다 17 발바닥 손바닥 어깨 정수리가 모두 둥글고 판판하며 두텁다 18 겨드랑이가 펀펀하다 19 몸매가 사자와 같이 균형이 잡혀 있다 20 몸이 곧고 단정하다 21 양 어깨가 둥글며 두툼하다 22 치아가 40개이다 23 치아가 희고 가리전하며 빽빽하다 24 송곳니가 희고 크다 25 양뺨이 사자처럼 생겼다 26 목구멍에서 달콤한 진액이 나온다 27 혀가 길고 넓다 28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린다 29 눈동자가 바르고 검푸르다 30 속눈썹이 소의 속눈썹처럼 시원스럽다 31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나 있다 32 정수리에 살상투가 있다
대학 바깥의 인문학 강좌에서 강유원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던 시절이 있었다. 강유원 선생님은 만년필을 매우 강조하셨다. 만년필이 있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독서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삼공노트를 이용하라고 하셨다. 나는 삼공노트까지는 마련할 수 있었는데 50만 원 가량 하는 몽블랑 만년필과 같은 것은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도저히 마련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사귀던 친구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만년필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내가 그녀에게 만년필을 선물해 달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의도하고 말한 것은 아닌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말을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아무튼 그러한 일이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풋풋한 추억 같이 남아 있다.
목동의 길벗 아카데미 라는 학원에 잠시 가 보았던 적이 있다. 치과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학원강사를 하면 어떤가 해서 가 본 것이다. 한 달도 채 일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다. 거기 원장 선생님이 나에게 학원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적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학원에 처음 가서 일 주일 간은 학원 경영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서 내었다. 원장은 아침마다 선생들을 모아 두고 조회를 하였는데 선생님들 앞에서 내가 적어 낸 내용들을 토대로 교육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적어 낸 내용 중에는 학원이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중위권이나 하위권 학생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학창시절 내가 다녔던 중고등학생 학원은 상위권 학생을 자기 학원에 묶어두기 위해서 안달이 났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전략은 이런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다니는 학원에 다니면 너도 공부를 잘 하게 될 거야'
싸구려 만년필을 사서 잉크를 충전해서 필기를 해 보았다. 만년필은 사용하는 사람이 길을 들여야 하는 도구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만년필을 길들이기는 커녕 만년필에 내가 길들지를 않았다. 나는 결국 B5 크기 옥스퍼드 노트에 모나미153 을 주로 쓴다.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로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 둔다. 강유원 선생님과 나는 다른 개성의 사람이다.
내가 아는 무용수 누나와 나누었던 말이 있다. 그 누나는 한국전통무용을 하신 분이었는데 무용 스승님이 제일 중요한 건 알려주질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그분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결국 그 아래에서 나왔다고 했다. 한참 듣던 내가 말했다. "무용을 잘 하긴 했나 보네. 그런데 스승님께 다 배워버리면 그 분하고 똑같은 사람 밖에 더 돼? 조중걸 선생님은 나중에 스승과 친구가 되었다더라."
누군가 공부에 왕도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걸 따라가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왕도를 걷다가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된다. 모두가 왕이 될 수는 없는 세상 아니겠는가. 왕 아닌 황제의 길을 찾는 사람도 누군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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