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이란 말은 상대의 불편을 유발할 수 있고 아무튼 위험한 말이므로 가급적 삼가자. 그렇다면 정당하다는 말은 과연 공적인 가치를 가지고 객관성을 담보하는가. 그에 관해서 나는 솔직히 자신 없다. 그러니 여기서의 정당함이란 나의 도덕적 완전무결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도덕, 내가 가진 최소한의 인격을 전제하는 것이리라.
이제 내가 가진 최소한의 인격을 가지고 최대한 자율성 있게 고백해 보자.(기왕의 기계론과 달리 칸트에 따르면 자율은 항상 도덕적 인격체의 몫이다.)
우리는 이성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서 이성이 마치 당연한 듯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성품인 듯 이해한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러니 그러한 선입견은 하나 마나 한 생각이요 주장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바로 이 쓸모없는 인간(인류)의 오래된 선입견을 문제삼는다.
칸트가 '도덕형이상학'을 통해서 말하는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적 완전성의 지향"은 반드시 "자기자신의 도덕적 의무, 곧 자신이 짊어져야 할 선천적 의무"를 전제한다. 이러한 의무를 위해서 도리어 쉼없이 "영적 능력, 정신성, 체력과 같은 자연능력을 길러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연능력은 저절로 생겨나서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과 맹수가 틈날 때마다 발톱을 갈고 맹금류가 또한 부리를 바위에 쪼으듯, 인간의 도덕적 의무 또한 항상 무디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만 한다. 여기서 체력이 인간의 동물성을 나타낸다면 영혼과 정신력 같은 건 인간의 이성적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이성은 자연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존재자적 특권이다. 그러니 거듭 우리는 이성의 의무를 동물의 생존력과 같이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된 의무에 관해서.
이제 내가 가진 최소한의 인격을 가지고 최대한 자율성 있게 고백해 보자.(기왕의 기계론과 달리 칸트에 따르면 자율은 항상 도덕적 인격체의 몫이다.)
우리는 이성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서 이성이 마치 당연한 듯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성품인 듯 이해한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러니 그러한 선입견은 하나 마나 한 생각이요 주장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바로 이 쓸모없는 인간(인류)의 오래된 선입견을 문제삼는다.
칸트가 '도덕형이상학'을 통해서 말하는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적 완전성의 지향"은 반드시 "자기자신의 도덕적 의무, 곧 자신이 짊어져야 할 선천적 의무"를 전제한다. 이러한 의무를 위해서 도리어 쉼없이 "영적 능력, 정신성, 체력과 같은 자연능력을 길러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연능력은 저절로 생겨나서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고양이과 맹수가 틈날 때마다 발톱을 갈고 맹금류가 또한 부리를 바위에 쪼으듯, 인간의 도덕적 의무 또한 항상 무디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만 한다. 여기서 체력이 인간의 동물성을 나타낸다면 영혼과 정신력 같은 건 인간의 이성적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이성은 자연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존재자적 특권이다. 그러니 거듭 우리는 이성의 의무를 동물의 생존력과 같이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된 의무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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