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이사한 나의 집은 정남향으로 앞산을 마주하고 정북진으로 비산벌을 너머 팔공산 구암길에 가닿는다. 내 눈에 닿는 남쪽 끝과 북쪽 끝 사이 어디에도 시선의 장애물이 없다.
1.1. 예부터 이런 집을 바람길에 놓인 택지로 여겨 풍수사의 길흉점이 극명하게 갈렸다. '길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니 사람이 사람의 길을 가듯,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간다(천상병의 시).'
1.2. 플라톤은 서른 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 엘레아로 갔다. 서쪽에서 들려오는 풍문이 있어 "현명한 사람은 항상 고난에 처하고 처절(: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한다." 엘레아는 아테나의 식민지였다.
1.3. 그 무렵 플라톤은 꿈을 참 많이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플라톤 중기를 후대는 '망상과의 접신'이라 명명했다. 그의 꿈은 항상 막힘없는 바닷바람을 타고 육지에 당도했다. 그의 후기 또한 망상의 해석에 지나지 않으리라.
1.4. 숫자는 서로들 접촉하는 에테르에 의해 촉발되고 새로운 수학은 항상 바람과 새*를 통해서 온다.
1.5. 이 집으로 이사온 지 한 달 보름째다. 나는 한 달 보름 동안 단 하루도 꿈을 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며칠 전 다녀간 나의 어머니도 이 집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녀는 태어나서 일흔 여섯 해를 사는 동안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아들인 내게 고백했다. 아들인 나도 이렇게 매일처럼 꿈을 꾸는 일은 이전에 없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1.6. 그러나 풍문의 진원지인 엘레아에 도착한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를 찾아가지 않았다. 세계가 근원의 하나, 궁극의 하나to hen에서 맺고 끊는다면, 그 곳이 이 비루한 섬(엘레아)일 수 없다.
1.1. 예부터 이런 집을 바람길에 놓인 택지로 여겨 풍수사의 길흉점이 극명하게 갈렸다. '길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니 사람이 사람의 길을 가듯,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간다(천상병의 시).'
1.2. 플라톤은 서른 여덟 살에 고향을 떠나 엘레아로 갔다. 서쪽에서 들려오는 풍문이 있어 "현명한 사람은 항상 고난에 처하고 처절(: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한다." 엘레아는 아테나의 식민지였다.
1.3. 그 무렵 플라톤은 꿈을 참 많이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플라톤 중기를 후대는 '망상과의 접신'이라 명명했다. 그의 꿈은 항상 막힘없는 바닷바람을 타고 육지에 당도했다. 그의 후기 또한 망상의 해석에 지나지 않으리라.
1.4. 숫자는 서로들 접촉하는 에테르에 의해 촉발되고 새로운 수학은 항상 바람과 새*를 통해서 온다.
1.5. 이 집으로 이사온 지 한 달 보름째다. 나는 한 달 보름 동안 단 하루도 꿈을 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며칠 전 다녀간 나의 어머니도 이 집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녀는 태어나서 일흔 여섯 해를 사는 동안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아들인 내게 고백했다. 아들인 나도 이렇게 매일처럼 꿈을 꾸는 일은 이전에 없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1.6. 그러나 풍문의 진원지인 엘레아에 도착한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를 찾아가지 않았다. 세계가 근원의 하나, 궁극의 하나to hen에서 맺고 끊는다면, 그 곳이 이 비루한 섬(엘레아)일 수 없다.
2.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 사이의 시대적 간극을 안다. 그 사이에는 제논과 멜리소스가 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2.1 그렇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2.2. 당신의 그 거짓말 솜씨를 무어라 부를까? 철학은 아니니까 문학이라 불러도 좋은가?
2.3. 시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중인데, 작성자가ㅡ스스로ㅡ삭제했다니.
누가 개추를 눌렀냐? 이런 낙서에까지 마음의 추천을 던질 사람은 내 (여)동생 뿐이지. 그러니 내 여동생에게 그의 선의를 되돌려 주다 https://youtube.com/watch?v=cQZg7YoZ3lw&si=qCkcq2rZNjziVYOs
※내가 사랑하는, 철학하는 여동생에게: 철학사적으로 실재론은 관념론은 대립하지만, 보편개념으로서 둘 다 실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대립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한때 반짝하다 사라진 유명론에 주목할 것! 유명론은 형식주의라서 오늘날 분석철학과 바로 맞닿는 구석이 있다.(속으로는 바로 "맞닿는다"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동생, 동생은 지금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읽고 있는 중이라서ㅡ망설이고 망설이다가ㅡ겨우 말을 건넨다. 앞전에 내가 말한 요청주의에서 신(god: 도덕)의 요청은 순수이성비판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어. 왜냐면 칸트 스스로가 그에 대한 '변명'으로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다시 보충하고 판단력에서 또 또 언급하니까.
즉 순수이성비판은 제대로 된 비판이론인데, 곧 흄이 거부한 수학과 물리의 사이비성을 선험적 종합으로서 다시 세웠는 데, 그렇게 나아가는 칸트가 선험의 끝판왕인 신존재das ding an sich 앞에선 또 횡설수설하고 있어.(물론 칸트도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지만ㅡ)
;어쩌면 우리가 칸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건 그의 횡설수설 탓도 아닌가? ㄴ 이 문제도 곰곰이 궁리해 보자.
누군가가 칸트는 신을 앞문에서 추방하고 뒷문으로 다시 불러들였다며 비판을 한 것이 떠오릅니다.
ㅎㅎ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3145 재밌는 기사라서 갖고 왔어요 ^^
고맙습니다, 동생ㅠㅠ
https://youtu.be/iwePzJLYBwE?si=WCgUeTGg2KCIOWaq
https://youtu.be/Fr9Z5iuOjxw?si=oWBXCoty9BbEZ0Ef
에테르 는 무엇이라고 이해해야할까요? 에테르 란 무엇입니까? - dc App
굉장히 어려운 개념인데 저는 여기서 말 그대로 고대 서양의 제5원소, 고대 동양의 기(기운), 현대 물리학에서 힉스(입자) 따위의 어떤 촉발 개념으로 이해하고ㅡ함부로ㅡ사용했습니다. 칸트도 말년에 이 에테르에 대해 사유하죠. 나머지 하나, 수학에서의 허수 따위. 현전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어떤ㅡ영원한ㅡ가능성.
감사합니다 항상 잘 읽고있어요. 응원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