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존재자들의 영토가 아니다(지속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우주는 차라리 존재자 간의 영원한 분쟁 지대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한때의 점령군이거나 영원한 패잔병일 뿐이다. 어떤 존재는 이 우주 안에서 죽을(자살할) 권리마저 박탈당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이란 곧 저주(신탁)의 다른 말이다. 그럼에도 운명을 긍정하라고? 운명론자가 자신이 내뱉는 언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그 역시 흔해빠진 낙관론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끝내 이 우주를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나 만큼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다. 나의 잘난체했던 지난 흔적들은 이 밤 거리에 나뒹구는 개와 고양이의 배설물만도 못하다. 필요한 것은 영원한 죽음이고 끝끝내 닿을 곤은 아예 없음 뿐이다. 너와 내가 사라진 영연한 평등, 평화.
억울한 감정 또한 인간본성이다
고독사(125.188)
2024-08-05 0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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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닿을 곤은=> 닿을 곳은 2. 영연한 평등=> 영원한 평등 : 술에 취했다기보단 조카가 쓰던 태블릿을 얻어서 리셋하는 김에 나의 핸드폰 또한 초기화하였는 데 새로 비번을 단 디씨 글쓰기 창에 자꾸 대화창 이모티콘이 떠서 손감각으로 쓴 글임. 즉 창을 보고 않고 핸드폰 키판으로 써내려 간 거임.
*즉 창을 보지 않고ᆢ
이 우주의 대충 역사가 138억 년 쯤 된답니다. 영화 대부, 유주얼 서스펙트,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존 윅 등에서 주인공은 악당들의 이 세계와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도피하려 애쓰지만 숨을 곳이 거의 없죠.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운 법. 그들이 도피하는 방법은 악당들의 거리에서 악당보다 더한 악당이 되는 것. 그게 한계이지요. 코맥 매카시의 소설도 그런
설정이에요. 즉, 우리가 우주 끝, 팽창 임계점까지 도망친다 하더라도 야훼나 알라 따위 신의 섭리를 벗어날 순 없는 법. 제 말은 벗어나자는 겁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그 곳이 영원한 암흑, 그러니까 동방불교에서 말하는 열 두12 지옥 가운데 끝판왕인 흑암지옥일지라도 다시는 존재하는 것들로 이 세상에 드러나지 말자는 것! 영원히 캄캄한 밤은 영원히 다툼이
없는 밤. 동틀 무렵, 나를 정복하려 오는 정복자의 말발굽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는 시간. 시간이 없는 시간, 두 번 다시 빛을 마주할 일 없는 시간.
※제가 생각하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찐 주인공은 '카이저 소제(케빈 스페이시)'입니다.
요즘 또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데 항상 나는 이 세계 전체(신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인간: 심지어 부모형제)로부터 쫓겨요.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눈을 감는 순간부터(영화로 치면 스크린이 켜지는 순간부터) 쫓기는 장면만 나와요. 똑바로 서서 나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땅굴(터널? 수직 갱도)이 눈앞에 생겨나고 나는 잠시도 망설임없이 그 구멍 속으로
추락하죠. 자발적 추락. 깊이가 족히 만 미터10km는 되는 땅 속 구멍을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가요. 사실 나는 폐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무서운 게 없는 나는 좁은 공간을 죽을 만큼 두려워 합니다. 꿈 속이라지만 내 폐와 심장은 밤새 고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시발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깨고 나면 좋은 꿈도 나쁜 꿈도 아닌 데, 그냥 막막하고 세상 부질없는 감정이 현실 일상에서도 지속돼요.
없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어요. 꿈이 시작될 무렵엔 나를 좇아오는 무리 가운데 윤석열 씨도 있고 내가 손 꼭잡고 함께 도망치는 첫사랑(짝사랑)도 있고, 대만 여배우 계륜미 양(한때 내 이상형)도 있는 데 결국은 혼자예요. 단 한 사람도 보이지가 않아요.
*고통을 하다=> 고통받다.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입니다. 젊을 때는 빨리 죽고 싶다 발악을 했지요. 한데 막상 죽음이 멀지 않으니까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은지 이러이 섭섭하기만 할까. 나를 화장하여 고향 산에 뿌려줄 사람이 있을 때 죽는 건 행운인 것을.
제가 아는, 깨달은 싯달타는 철저한 허무주의자였습니다. 인연이니 인과론이니 대승불이니 하는 말은 전부 후대에 날조된 헛소리(사기)입니다!
나(유아론)의 입장에서 보면 업karma이란 것도 없어요. 업은 내 이전과 이후, 그러니까 유전genos의 문제입니다. 오늘 내가 타인의 피눈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면 훗날 나의 자녀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종말을 맞이하는 거죠.
*인류 전체를=>인류 전체의
서로간의 불신이, 억울함이 왜 생겨났습니까? 태초로부터 승자 독식, 권력의 핍박 때문이 아닌가요? 뻔히 아는 데 인간본성이니 권력의지니 따위의 전부 거짓말을 하고 있죠. 짐승은 포식자를 원망하지 않아요. 자신을 피식자로 여기지도 않죠. 그런데 우리는 짐승이 아니잖아요. 말이 있고 그 이전에 원망하는 감정이 뇌내 속 깊이 각인돼 있단 말입니다. 오히려 그
말할 수밖에 없고, 원망하는 감정을 선천적으로 지닌 그게 진짜 인간본성이란 말입니다. 그런 건 다 제껴 놓고 권력의지니 욕망의 사회학이니 하면 저절로 자본제가 해체되고 자본가가 반성한답니까?
인간의 말(언어)과 원망하는 감정은 하도 오래 되어서(태초의 것이라서) 권력이 강제로 말을 없앨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원망하는 감정은 언젠가 반드시 혁명의 형태로 폭발합니다(자기 성격을 드러냅니다).
위에 개똥글을 싸지른 어느 병신새끼처럼, 나는 인간의 심리를 잘 아니까 이재명이보단 윤석열이가 나아. 왜냐면 윤석열은 제 마누라 김건희를 진심으로ㅡ적어도 이재명이 그의 마누라를 대하는 것보다는; 왜냐하면 심리학(정신분석)은 드러난 행위들 말고는 대상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ㅡ사랑하니까. 하, 책을 사주면서까지 공부하라고 하면 공부는 안 하고 전부 이런 반풍수
도사 흉내만 내죠. 그 자체가 바로 정신병입니다. 당연한 듯 여기는 권력의지, 그런 욕망들, 그런 일상 현전으로서 우월의식, 함부로 내뱉는 무성의한 낱말과 함부로 바라보는 거만한 시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