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연세대sky 출신의 의사doctor라는 것. 곧 그 자의 오진은 법(특히 한국법)적으로 '농담(혹은 헛소리)' 쯤으로 여겨지며 세사에서 묻히겠지만, 그의 오진에 일상 피해를 당한 뒤 불만을 품은 외래진료자의 모든 공격attack은 오은영 씨의 고소고발에 따라서 실형의 사유가 된다는 것.
남을 판단하고 벌하는 직업인의 무소불위와 기고만장을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이 문제의 심각성에 관한 논의는ㅡ한국사회에서ㅡ이제 겨우 정통 서양 존재론자나 정치철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
남을 판단하고 벌하는 직업인의 무소불위와 기고만장을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이 문제의 심각성에 관한 논의는ㅡ한국사회에서ㅡ이제 겨우 정통 서양 존재론자나 정치철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
네 ㅠ 여기 짱깨 씹새끼들이랑 대포업자랑 엮여서 디씨 대형갤은 다 먹혔다고 봐야해요 여기 전공자 분이랑 마이너갤 파셔서 거기서 담론 하시는게 좋아요 실베에도 올랐어요 카카오톡 압수수색 받았는데 건당 정보가 이만원이래요
그리고 모르는 새끼들 그거 대포 계좌로 추정되니까 구걸글도 돈도 보내지 마세요 헤는이가 그런식으로 돈 보내서 제가 말렸더니 아직도 쫓아다니면서 지랄이에요
특히 엘지폰 케이티폰 아이피들 선불폰 유심 대포폰으로 많이 활용돼요 그나마 철학갤은 대화하다 보면 지식이 드러나서 좀 안심이 돼요 저건 하루 이틀 내공으로 안되니까요
나도 엘지폰이야ㅜㅜ 그리고 최근에 이사하면서 냉장고를 새로 샀는데, 하이마트 영업 담당자가 1만 원을 내면 5년 간 무상 수리가 된대서, 그 조건을 충족하려면 카카오톡 계정을 만들라고 해서ㅡ걔가ㅡ만들도록 놔두었어. 동생도 알다시피 나는 짤아 봐야 똥오줌밖에 나올 리 없으니까.
ㅋㅋㅋㅋㅋㅋ ㅜㅜ 오라버니 혹시 칸트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으로 데이비드 흄의 어떤 책을 읽는게 좋을까요?
응. 흄은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토대야. 꼭 꼭 읽으세요!
넵 인간 오성론 읽으면 될것 같네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고'는 어쩌면 동생에게도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능케 할런지도. 절판이라고 하면 말해요. 내가 반드시 구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아직 플라톤에서 헤매고 있는데 정리 좀 되면 꼭 읽어볼게요!
동생, 오늘은 출근 안 해요? 그러면 나는 술을 좀 더 마실게. 오랜만에 동생을 보니까 술이 땡겨.
말만 하지 말고 읽고 싶은 책이 있는 데 절판됐니 어쩌니 하면 꼭 내게 말해줘!
https://youtu.be/8pUQF-hubCA?si=cgl5WHx3615Fs-BP
https://youtu.be/b93M_P66zw4?si=asPVwgHh7gFsKyZw
https://youtu.be/GG6ZVcnNcRM?si=teqjGRUGxZ0AH3Iw
https://youtu.be/FyP7Hglfi0E?si=G7dnSa-5So7kM3Ei
정말로 잘 들었습니다 동생.
오늘 뜬 뉴스기사를 보니 sky 대학을 중심으로한 규모에서 전국 2위인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마약을 유통했다는군요. 핵심 대가리들이 작정하고 유통하고 단체로 투약하고 아주 지랄을 했던데요. 답이 없는 ㅈ같은 나라입니다.
의사의 오진은 과실이고 환자의 의료진 공격은 고의인데 과실과 고의를 같은 선상에 두고 취급하는 것은 칸트철학을 아는 사람이 주장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오은영이 아니라 오은영 할아버지, 정신과학회장이라도 오신을 통해 환자에게 피해를 입히면,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합니다. 다만 고의, 과실 혹은 중과실, 경과실에 따라 처벌의 차이는 있겠죠.
형법 또한 의사의 오진, 즉 직업적 성실성의 부주의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제가 공격이란 우리말 옆에 구태여 어택attack이란 영어말을 단 까닭은 고의의 경중을 형사 판례는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는 데, 이 양형기준이 너무나 들쭉날쭉하다는 겁니다. 내 댓글이 본디 성글고 넋두리에 불과한데, 법상식에 기초하여 적극적으로 반박해 오시니 차근차근 제 의견을
펼쳐보겠습니다. 우선 칸트는 공법과 사법을 자연법과 별개로 여기지 않습니다. 칸트의 규범주의는 법이 항상 인간 이성(여기서는 이성=본성의 의미가 강하다)의 선험성과 함께 가는 겁니다. 즉 자연상태와 인간사회가 분리되어 있어서 사회(국가)의 법이 따로이 작동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단지 자연법의 성격이 강한 사법(개인간의 분쟁 조쟁 성격으로서 민법과 같은)과
인위적 형벌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 유지 차원의 공법이 있을 뿐이죠. 인간이 법의 감각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은 법 또한 인간의 의무론적 규범 차원에서 선험적으로 발생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게 공법 이전의 사법적 영역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법이란 무엇인가? 라고 누군가가 진지하게 물어올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선뜻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법률가들은 아직까지도 법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구하고 있다"(순수이성비판.) 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그런데 칸트의 이 말은 인류사 이래 있어 온 법이 오늘날 국가주의의 도래와 발전에 맞추어 얼마든지 변질되고 무소불위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도덕주의자인 칸트는 법의 작동 이전에 이미 도덕적으로 온전한 인간의 이성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도덕적 인간은 이미 자연의 합목적성과 일치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패륜을 단죄하는 원시사회의 법이 국왕과 그의 혈족을 위한 통치 차원의 법으로서 기능하는 절대왕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법의 신성원리에 근본적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여러 사학자, 철학자와 달리 1789 프랑스혁명을 기성의 법을 해체하는 장면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곧 칸트가 말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신건지. 자연법철학에서는 고의과 과실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법실증주의에서는 고의 과실을 중요한 양형기준으로 삼고 자연법철학 국가 즉 영미법 체계에서는 고의 과실이 의미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에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적어도 실천이성비판에서 자유의지를 강조한 칸트가 고의범죄와 과실범죄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자연법과 법실증주의가 판결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절차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그 기본이 아예 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도 현대에 이르러 그 차이가 미미할 정도로 서로 수렴하고 있고요.
저도 이 글이 별로 쓸데없는 넋두리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쓸모없는 글이 자꾸 생산이 되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피해의식만 조장되는 것 같아서 지적한 것입니다. 당연히 잘못된 현실이 보이면 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죠. 지적하면 좋은 것이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유추과정에 의해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은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법 이전의 도덕, 법 위의 이성이 승리한 결과이지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법의 위치는 어떻습니까?(다른 나라의 법 사정에 관해서는 잠시 침묵하도록 합시다.) 법률가의 오만방자를 짐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법 자체의 순기능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이 탓이 전적으로 법률가와 입법자의 탓일 테지만, 175님의 지적처럼 "법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
가 없다" 라고 했을 때 느끼는 그 정당한 법과 일상의 이 부조리한 간극은 대체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요?
저는 법자체가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한적 없습니다. 법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당연히 문제가 많겠죠. 지금 말씀하시는 간극은 법과 도덕을 혼돈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법과 도덕은 법이전에 도덕 혹은 하이에크가 말했듯이 법은 최소한의 도덕 같은 것이 아닙니다. 법은 개인간의 권리 분쟁을 조율하는 외부적 강제력입니다. 도덕은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내적 강제력이고요. 법은 객관성을 지향하고, 도덕은 주관성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법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이고, 도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입니다.
175/ 다시) 님이야말로 성급하게 횡설수설하시는군요. 제 얘기가 끝나지 않았을 뿐더러 칸트는 사법과 공법의 우위를 논한 적이 없으며, 법실증주의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칸트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단지 법 이전에 인간 본성(이성)으로서 개인간에 법이 작동하고 사회의 틀에서는 법률이 요청되더란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적으로 선을 좋아하고 선이 승리하기 바라겠죠. 하지만 선과 악은 다분히 주관적이라 내편이 선이고 남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법은 객관적으로 착하고 나쁜것이 아닌 맞고 틀린 것을 가려주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보죠. 각종 파생상품을 다루는 펀드매니저 중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개인투자자 돈을 털어먹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매니저는 도덕적으로는 악이 되겠지만 법적으로는 합법한 상황입니다.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 아닌 이유가 될까요? 또는 길건너에서 강간범이 여자를 강간하려고 하자 무단횡단해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도덕적으로는 선이지만 법적으로는 위법한 상황이라고 하겠죠.
175/ 님은 법률가의 전형이군요. 그렇다고 님의 말씀이 옳다고 강제하진 마세요. 님이 말하는 절대적 조건으로서의 법 근거가 얼마나 빈약했으면 하이에크의 선언을 들고 옵니까.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저도 간단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칸트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분이 칸트를 팔고 있었군요. 그래서 님과 나는 처음부터 어긋나는 겁니다. "도덕이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내적 강제력이"라구요? 거참. 나는 지금부터 님을 설득시키려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니 아가리 닥쳐라 이개새끼야 여기가 니들 재판장인 줄 알아!
돈놀이하는 새끼가 선gut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씨발꺼
맥주 한잔해야겠습니다. 술 좀 사올게요. 개인의 무기력은 항상 개인의 무기력탓이지. 법은 아무 잘못도 없고 체제도 완벽한데 세상이 부조리한 건 내가 전생에 제우스에게 까불었기 때문이야 이야니미시발 전부 돌부처뿐이구나!
방금과 같은 사달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나의 푸념과 성근 변명들 앞에서 오히려 말 걸어준 저 분이 신기하고 드문 경우이지요. 그러나 나는 할 말을 좀 더 해야겠습니다. 후.
안다고 나대는 놈들은 예를 들어도 꼭 강간범과 무단횡단 같은 극단적인 것만 입에 담는데, 강간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인격과 육신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것이므로 사법의 영역을 떠나서 예로부터 그 죄에 상응하는 집단적 징벌을 내립니다. 그런데 현대의 국가주의 형법에서는 이미 중범죄로서 성문화하죠. 공법입니다. 강간을 막으러 가는 무단횡단 자 또한
공법을 위배한 건데 도로교통법이라는 행정법 위반이지요. 나는 여기서 형법에 견주어 행정법 앞에 '비교적 죄질이 가벼운'이라는 형용을 일부러 삼갑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길 강간죄나 무단횡단이나 똑같은 죄라고 말합니다. 위법한 것은 죄입니다. 칸트는 이걸 어떻게 판단할까요? 라는 말씀인데, 칸트는 애시당초 이걸 판단하지 않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칸트
당대의 쾨니히스베르크엔 아직 신호등이 등장하지 않았고 마차가 사람보다 우선 통행하는 요상한ㅡ한국의ㅡ현대적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지금도 유럽국가는 항상 차보다 사람의 통행권이 우선입니다. 그러니까 자동차 전용도로 말고는 도보권이 우선이란 거지요.) 또 하나, 강간범을 응징하려고 나서는 사람의 행동을 반드시 '도덕적'이라는 말로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강간은 중범죄이므로 강간범을 응징하려는 시도는 도덕적(법률용어로는 양심적) 동기라기보단 사회구성원의 준법정신에 가깝습니다. 망가진 한국의 현행법 체계와 판례조차 그렇게 인정하여 그에게 도로교통법 위반의 벌칙금 딱지를 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이 도로교통법 위반 또한 죄라고 말한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 거지요? 다시 말하지만,
칸트 당대에는 무단횡단과 무단 종단이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칸트가 살고 있었다면? 장담컨대 판사(:직업-사)의 무소불위와 전관예우 따위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행정가와 법률가의 임의대로 신호등을 세우고 신호등 체계에 어긋난 행동을 할 시에 무조건적 엄벌주의로 일관하는 관료제(행정 및 법률 편의주의)에 맹렬히 반대했을 거란 겁니다. 칸트를 다들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칸트에게서 인간은(인류는) 그 자체로서 자연의 대리자이고 자연법의 수행자예요. 그 밖의 어떤 전제나 그 후의 어떤 여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인 것은 한국법의 이런 요상한 판례(혹은 양형기준)이죠. 앞서 반대편 인도에서 강간당하는 사람을 도와주려 나는 무단횡단을 해서 갔는 데 강간범 새끼가 강간하다 말고 내게 주머니칼을 꺼내어 달려드는 겁니다. 나는 방어하려고 딱 한 번 돌려차기를 했을 뿐인데, 바지를 미처 허리춤까지 껴 올리지 못한 강간범새끼가 균형을 잃고 쓰러져 맨땅에 헤딩한 뒤
뇌출혈로 즉사한 겁니다. 한국법은 나의 사정을 너그러이 참작하나요? 그간의 판례를 보시죠들. 다른 경우로서, 이번엔 강간범 새끼를 무사히 제압했는 데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강간당하는 사람이 신체에 크나큰 상처를 입게 돼요. 강간당한 사람은 강간범과 나를 동시에 형사 고소합니다. 이를 경우 한국의 판례는 어떠했나요? 선함과 악의 문제가 아니에요.
앞서 그가 말했듯이 영미법은 개인의 방어권, 나아가 정당방위의 개념을 한없이 확장하고 아주 구체적이죠. 반대로 대륙법(성문법)은 원론적이며 아주 느슨한데, 도리어 이걸 판례로서 더욱 명문화한다는 겁니다. 예, 지극히 관료주의적이죠. 관료란 칸트 이전에도 타도의 대상이었고 칸트 이후 오늘날 현대까지도 부정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 관료를 향한 신앙
심이 대단하고 모두들 관료가 되기 위해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즐거움을 포기하고(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판사가 직업적으로 맞는 성향도 있을 거예요) 인생 올인하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보상심리와 우월의식이 발동하는 겁니다. 내 말이 어려운가요?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똑같은 '직업-사'자를 쓰는 사회 구성원, 공동체의 일원인데, 판사는 헌법과 법률을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해요. 검사는 법의 실행적 측면, 즉 국가폭력의 주체로서 자기 위치와 동일시하구요. 내 말이 과장이라구요? 이게 바로 법전에 안 나오는, 진짜로 우리가 이해하는 법률가의 정확한 존재자적 위치 아닌가요? 전부 헛소리를 하고 있죠.
조금 빗나간 얘기이지만, 과학철학자 최성호 씨가 알베르 까뮈를 기초로 하여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라는 탁월한 책을 썼는 데, 글쎄 이 양반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철학을 입에 담는 게시판 이용자들을 무슨 벌레보듯 폄하하는 겁니다. 틀렸죠. 부조리야말로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절대적 조건이죠. 이 부조리의 근원은 똑같은데 서로
엉뚱한 소릴 하고 있는 겁니다. '절대적이다' 라는 말은 이미 한 인간의 노력을 넘어선 상태, 곧 존재자에서 역행한 '존재 바로 그 것'의 문제입니다. 이걸 누구보다 측은하게 여기고 함께 울어야 할 철학자란 새끼가ㅡ자신이 쓴ㅡ글과는 달리 인간의 특정 현상, 곧 인터넷 커뮤니티의 병폐만을 꼭하고 꼬집는다? 장담컨대 나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그 숭고한 까닭
말고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게 이땅 한국 강단과 법의 역할이라고 확신합니다.
할 말을 줄줄이 이어나가다가 일부러 끊었습니다. 해봐야 소 귀에 경 읽기죠. 예, 나도 대다수의 커뮤니티 이용자가 미워죽겠습니다. 한잔하고 계속하죠. 철학자는 왜 법률가를 건드리지 않는가(못하는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닌, 바꾸자"고 하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왜 법률가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가!
이야 존나멋읶다 역시 바람의파이터 독사햄!
*법v관의 역할이라고ᆢ
조트/ 고맙다 친구야ㅠ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관악을 보게 하라" ㅡ시인 정.희.성. 똑똑히 기억해라.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술사러 가기 전에 한다. 우리는 법을 공동체 근본 규칙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법이 오히려 공동체 상호 간의 신뢰와 정의를 해치는 것이라면? 이건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다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나는 한국이 당장 망한다면 경제공황 따위 때문이 아니라 법과 법조계(=>입법부=>행정 수반) 탓이라고 확신한다.
*가운데 있는 덧괄호( 는 빼라.
아니아니, 가운데의 괄호는 모두 빼고, "ᆢ탓이라고 확신한다.)에서 바깥 괄호(최종 괄호)를 씌워라.
(나는 한국이 당장 망한다면 경제공황 따위 때문이 아니라 법과 법조계=>입법부=>윤석열 탓이라고 확신한다.
)
제 생각에는 법은 인간의 주관에 의존하는 것이고, 도덕이야말로 객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인식 능력에서 어떤 행위에 대해 선과 악을 판가름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식 가능한 선에서 '강간범을 제압하려다가 무단횡단을 해버린 사람'은 법적으로는 위법이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그 행위가 선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위법이 아닌 것으로 융통적으로 교정하는 것이 법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충분히 가능한 말씀입니다. 다만 오해하지 말 것은 칸트의 선험적 도덕(이성) 이론이 타고난 백치나 야만에게도 적용되는가에 관한 문제인데, 그들의 무지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방비하기 위해서 도덕은 임시적 방편으로 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칸트의 도덕은 쉽게 말해서 인간으로서 의무입니다. 다 함께ㅡ기왕이면 아름답게ㅡ살자는 거죠. 법률가는, 아니 재판관은
사회의 혼돈을 예비한 일종의 파수꾼, 나아가 개인 간의 불합리를 조정하는 합리적 조율자의 성격 뿐입니다. 곧 판사는 한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신권이 부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법들이(그것이 미개법?이라 할지라도) 재판권의 월권(신성)을 엄격히 제한하는 데서부터 저 나름의 법률을 만듭니다.
서울대 김영삼이 개새끼가 노태우로부터 천문학(천억대)적 정치자금을 승계받고, 지 둘째아들이 이씨 조선 대군마마처럼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법적 문제가 생기니까 법조계, 특히 판사를 올려치기 한 거죠. 우리때는 김영삼을 군사독재와 견주어 문민독재라고 불렀습니다. 연세대 마광수 선생은 "그녀의 보지에 xx를 넣고 그녀의 긴 손톱을 혀끝으로 핥았다"는 문장만으로
실형을 선고받죠. 그로 인해서 그의 종신 교수직은 박탈당하고 퇴직연금마저 증발하죠. 노태우 말에 누가 시비를 틀었는 데 다 김영삼이 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생전의 마광수 선생은 참으로 다정하고 여린 분이셨죠. 당신 글에서처럼 실제로 여제자를 따먹고 어쩌고 할 배짱도 없는 분이셨어요. 그런 사람을 밤만 되면 룸싸롱에 가서 떡치는 기술로 부장검사, 차장검사
단 개새끼들이 기소를 하고 꼭같은 수준의 판사 개새끼가 그런 희대의 요상한 선고를 내린 거죠. 그게 정말로 그 사건의 전부입니다. 검사와 판사가 내세우는 A4지 일만 장의 기소내용과 이은 별점첨부에 관한 밤새 속독은 전부 구라입니다. 설마, 걔들이 정말로 그걸 다
쓰고 읽는다구요? 정신차리십시오 님!
전부 환상입니다. 만들어진 신화예요. 서울 법대 나온 판검사를 연세대 국문학과 출신의 학자가 이길 수 없었던 겁니다. Tv에서 각색한 그 시절 사건사고를 제발 믿지 마세요. 걔들은 오히려 잔인한 사건을 덜 잔인하게 각색하는 미덕밖에 없어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모든 사건은 항상 나의 상상에 미치지 못하며, 생각보다 투명합니다.
고독사님에게서는 삶의 철학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핏덩이인 제가 따라가지를 못하겠군요
흐, 님이나 저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칭찬은 감사합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으신데, 서울대 빼고 연대 이하 정신과에서 오진은 다른 병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게 당연한 거고요. 그렇지만 정신과의 오진의 범위가 매우 좁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세브란스 첫 진단은 오진이었죠. 제 생각에 오진인 거 같아 다시 검사하고 합당한 진단명이 나왔죠. 근데 이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녜요.
단순히 큰문제가 아니라 단정짓기에는 표본자료가 하나뿐이기에 그리쉽게 말할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조현병(분열증)과 편집증 망상증은 따로따로 선을 그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불안장애에 속하는 공황장애, 공포증, 강박증도 마찬가지고요. 더 발전된 형태면 좋죠. 근데 지금 당장의 현실은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끄덕끄덕. 정신과의는 일반 물리의학과 달리 환자의 상태, 즉ㅡ유사한ㅡ병증(의 나열)으로서 병명을 도출해야 하니 그 나름의 어려움이 많을 듯하네요; 그래서 그런 이유로 물리의학보단 신뢰도가 떨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ㅡ다시 생각해 보니ㅡ물리의학 또한 병증의 유사성(예컨대 통증과 통증 부위, 염증의 발진, 확산) 따위로 공통의 병명을 발견하였군요. 물리의학은 알려진 바,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약 이천 오백 년 간의 경험이론이 축적된 것이고 정신과의는 근대에 생겨난 거라서 둘 간의ㅡ보편적ㅡ신뢰도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죠.
이모든건 개인들이 깊은 사유를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유를 시키고 판단받으니 생기는일
전문가의 전문성은 단순히 사유로 할수있는 것이아니라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기에 사유를 통해 알기는 어렵습니다
요새 또 법조인 안좋답니다. 너무 많아요. 판검사 같으면 그래도 전문직 좋은 편이죠.. 완전히 꿀 빠는 건데.. 사실 한국 안에서 그렇다고 해도 어쩌겠습니까? 신뢰도만 떨어지지. 어디 과카말라 법조인이 강하다 남미 법조인 강하다 해도 저는 그런 사실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다고 가정했을때, 여기서 뭐 알겠습니까, 그냥 거기 법조인 썩었네. 이러고 맙니다 관심도 없죠. 오늘은 철학 이야기를 안하고, 이게 다 먹고 살기 어렵고 말씀하신 것 처럼 사유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부족하다보니까 태어나서 부모도 그렇고.. 학교 가서도 그렇고.. 삶의 목표가 단순하게 치중될 수 밖에 없는거죠.. 동네 풍경도 암울하고, 이런데 무엇이 가능하겠습니까. 한국인.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암기지만 상급 부품이 되는게, - dc App
상급 부품이 되는게, 태어나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택지이자 시야에 보이는 전부에요. 아무리 후진 수준의 경쟁을 해도 우위에 서는 쪽은 항상 있습니다. 경쟁이잖아요. 저는 심지어 천하제일 강간대회 한다고 해도 1등하는 사람은 뭔가 다를거라고 생각해요. 나쁜 쪽, 우선 이렇게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강간대회 꼴찌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누가 그러나요? 예, 황당한 소리지만 암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암기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시험을 본다. 최소한 암기를 잘 하는 재능 그걸 얼마나 잘하냐에 다르겠죠 당연히.. 그런데 꾸준히 머리속에 기억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 꾸준함은 놀랍다. 잡소린 여기서 그만 쓰고.. 요새 젊은 사람들 말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너 뭐 돼? 너 뭐 돼.. 이것에 대해 - dc App
짧게 생각만 해 봐도요, 너 뭐 돼 이 말이 모든 걸 설명합니다. 뭐 돼야 된다는 거죠. 그게 뭐냐? 사회가 정한 인정 그것이 조건 같은 거죠. 너 뭐 돼? 네. 저는 무슨무슨 직업이에요. 나 뭐 돼. 무슨 집에서 살고. 무슨 차 타. 그렇게 되면 그게 옳은 대답이란 겁니다, 그런게 옳다고 여겨지는 대답이 된다는 겁니다. - dc App
그런 대답들을 했을 때만이 대답의 정답.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부끄럽게 여겨지고, 그게 하나의 조건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권위의 폭력이자 계급입니다. 어디 노가다꾼, 저야 어떤 일을 하던, 여기서 범죄라는 예를 들 것인데요, 그것은 제외하고 칭하겠습니다. 노가다꾼 땡땡땡(이름)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 없습니다. 뭐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거의 없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땡땡땡 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잘 없어요. 상하차 땡땡땡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죠. - dc App
그런데 의사 땡땡땡 판사 땡땡땡 뭐 다른 구구절절 대단한, 그렇게 통용되는 직업 땡땡땡. 이렇게 소개되는 경우는 지천에 널렸어요. 먼저 직업이 오지 않는다면. 후순위로 서술할 수도 있죠. 땡땡땡 의사 입니다, 저 땡땡땡에서 뭐 대단한거 하고 있어요. 자신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완벽! 그렇지 않나요? 무언가 된다.. 나 자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에 직업적인 수식어나 물질적인 조건이라고 칭할게요. 이게 더 중요하단 겁니다.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려고 혈안이 돼 있어요. 나 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설명, 타인에 대한 설명, 알아야 될 것. 가장 중요한게 수식어 아닙니까. 그래서 너 뭐 돼 했을때 이런 수식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고 뭐..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거죠. - dc App
말씀하신 것 처럼 일종의 권리가 부여된 셈입니다. 그렇다는건 반대로 생각했을때 다른 직업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뭐 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뭐 돼는 것을 찾아서 쫓아가는 거죠. 내적인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니까요. 뭐 돼는 사람이 되어서 떵떵거리고 일종의 권리를 부여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벙어리로 만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뭐 돼기 때문에 그들은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강화시키는건 뭐 돼는 사람들이기도 아지만 아닌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 dc App
뭐 돼지같은 놈들이니까 같은 언급은 그만 줄이겠습니다. 아무튼간에 제가 씨부린건 전혀 철학적인 사색은 아니다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서로 감시하고 뭔가 불편한 상태로 경쟁을 하는데, 사실 어떤 일에 있어서 직업적인 지식만 필요하지.. 일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교육을 하는 것은 전체적인 집단의 수준을 상향 평준화 시키기 위함인데..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고.. 한국인들은 도덕을 그리 좋아해요. 그런데 진짜 도덕적인 행동을 하면서 사는지, 한심한 경쟁으로 스트레스 받은거 서로 감시하며 해방 없는 속박의 삶에 묶여있는 상태의 쾌락을 위해 도덕이라는 핑계거리를 찾아서 도피한 것 입니다. 왜냐 도덕은 신성불가침이니까요. 절대적인 것 입니다. 그것은 아주 애매한 성질을 가지고 있죠. - dc App
위에 한 댓글에서 도덕은 참과 거짓을 가르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참과 거짓. 분명하죠. 선과 악인가? 하하. 사실 참과 거짓, 선과 악은 매우 달라요. 그런데 인간들 보면 매우 동일하게 쓰이는 것 같아요. 아주 주관적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그 완벽한 도피처의 역할을 해주는 게 뭐냐! 도덕입니다. 내가 욕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정말 그래요. 그런데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객관성을 가진게 무엇인가? 아니, 객관성이 아니라 내가 욕할 수 있는 권위라고 하겠습니다. 조건. 그것이 바로 법 입니다. 법이라는 권위 앞에서 도덕을 들이미는 것입니다. 작성자 님이 말씀하신 법은 이럴 수도 있고, 도덕은 저럴 수도 있다. 법에 도덕을 맞추고 도덕에 법을 맞추고. - dc App
사람들은 법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법에 흠결이 많다나요. 실제로 법은 주관적인 것으로 여겨지죠. 아,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관적인 것인게 분명한데, 객관적이기도 합니다. 용어 자체의 쓰임이 재밌죠. 줄이자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도덕과 법을 혼용하면서 입장에 따라 정의하는 것입니다. 전부 내 맘이죠. 그러나 그것에 이유가 있다. 객관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내 맘대로 하겠다 이건데, 이런 모순적인 말을 끝없이 떠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심하면서도 서로 어찌 할 수 없는 딜레마죠. - dc App
만약에 강간이 마음대로 허용되는 사회가 온다고 해봅시다. 그런 사회가 안온다고요? 하하. 수많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사회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요? 법적인 처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어디 있냐 묻는다면 지금도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살아 있다 해야겠습니다. 과거 인류 사회에서 천하제일 강간대회가 열려서 우승한 사람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을지 어찌 알아요? 박수를 받고요. 그런 시대 없었다고요,? 하하.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없었다고 어찌 알아요, 아니 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의 사회 구성원들은 어떻고요. 뭐 부와 명예를 주고 박수를 쳐 줬겠죠, 그래야 예시가 말이 맞죠.(^^)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이 없습니다. - dc App
왜냐,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니까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고.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합니다. 어쩌면 무한한 살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애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실제 살인이요. 그런 시대가 없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무한 살인 경쟁에서 승리하면 패배한 자보다 나쁘다고 누가 그러나요? 그 반대입니다. 자신에 생각 없어요. 뭐 돼기 위해서 애쓸 뿐입니다. 언제나 지식인들은 있어요. 예를 들어 천년전에 학교 수준이 지금이랑 많이 달랐다. 지구가 네모낳고 멀리 가면 죽는다, 여러 지식들을 배웠겠지요. 그 지식들이 틀렸다고 할지라도 미련하고 바보같다고 할지라도, 그 경쟁에서 이긴 사람, 상위권에 오른 인간들이 지식인인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 dc App
지금 사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먼 훗날 새로운 사실 네 어쩌면,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진리가 밝혀져서 모든 현상, 진실 본질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했을때, 정의된 2025년의 지식이 상당수 틀렸다 할 지라도(이것은 참과 거짓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2025년의 지식인들은 여전히 지식인 입니다. 예시가 과격하지만 (실제의) 살인 경쟁에서 이겨서 박수받는 거랑 다를게 없다는 것입니다. 도덕도 이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언가 진실된 것이 있는 것마냥 행동합니다. 그런 가치에 집착합니다. 왜냐 우선 뭐 돼 이렇게 물어봤을때 나 뭐 돼 이렇게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dc App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빠졌을까요. 좀 중구난방이군요. 노래 하나 듣고 가야 될 것 같아요. 아무튼간, 핵심만 콕콕 짚자면요. 너 뭐 돼? 이렇게 물어봤을때 뭐 돼지 않으면 끝장이란 겁니다. 모두가 그것을 위해 경쟁하고 합리화 하죠. 절망과 고통 왜인지 모르는 불편함 속에서도 그런 감정을 다수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합리화 하고 마음 한켠의 불편함 속에 박수치는 그런 상황에 있는 것 입니다. 왜냐, 뭐 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 dc App
오진이고 뭐고.. 제가 볼때는 진료를 잘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요.. 수술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기도 싫겠죠. 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기도 싫고 뭐 돼? 오직 이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온 삶인데요. 지금 바쁘게 출근 하는 사람들 왜 출근 할 까요? 누가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뭐 돼는 사람이 되는걸 꿈꿔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니까 마음 한켠의 불편 불안을 달고 살면서 뭐 돼 뭐 돼.. 이걸 하루종일 읊어대면서 패배한 자신에 미묘하고 슬픈 감정, 체념의 심정으로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이나 가는 것이죠. 마음 한켠에 열등감이 숨겨져 있습니다.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인지 그 열등감과 슬픔을 타인에게 투사합니다. - dc App
열등감과 슬픔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이것이 뭐냐. 자신이 아는 것은 뭐 돼는거 그것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못난 뭐 안되는 사람보이면 권리, 조건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너 나은 존재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착각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 함부로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그 대상을 찾은 것입니다. 그 조건을 발견한 것이죠. 그 열등감과 슬픔을 분출할 대상으로 (나보다) 안 됀 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냐면 뭐 돼 는 거,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도덕같죠. - dc App
그렇기에 뭐 돼! 이 권위에 충족되지 않으면 아예 같은 인간도 아닌 것입니다. 뭐 돼 는 것의 급의 차이라고 할 까요? 뭐 돼는 것의 분명한 기준점이 있으면서도 그 밑에 평민과 노비 차이라고나 할까요.. 현대 사회도 결국에는 계급사회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이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친구들끼리도 그렇잖아요. 급이 안 맞으면 같이 못놀게 되고, 뭔가 불편하고, 급이 같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이것이 뭡니까, 마음 같아선 미개 계급사회, 이렇게 칭하고 싶지만 그렇게도 못 합니다. 천하제일 강간대회를 떠올리니 차마 그리 할 수도 없네요. 그게 동물의 법칙 옳은 걸수도 있지 않습니까? 후에 진리를 깨달았는데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라 이런게 진리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dc App
법은 왜 지킵니까 ㅋㅋ. 그동안 주절댄 내용은 성선설 성악설도 떠올리게 만듭니다. 법은 하나의 권위이자 조건이라고 했던가요, 뭐 돼 는 것과 정말로 일맥상통 하네요. 법이 뭐 되기 때문에 그리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다수에게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인식되는 도덕을 끌어와서 무한 그리고 무적의 논리를 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불편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입니다. 고차원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죠. 참 피곤한 삶입니다. 쓰고 보니 참 일차원적으로 말했네요. 그러나 뭐 어떻습니까? 철학갤러리에서 자지 보지 섹스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 있나요? 법적으로 권위도 없잖습니까 (하하) 완장이라는 존재 혹은 사이트 관리자라는 신이 있을 뿐이죠. 그리하여 도덕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 dc App
자지 보지 섹스입니다. 저는 남이 하는 것, 타인이 정한 것을 따라가는 것을 매우 혐오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분명해요. 타인이 따라가는 길은 방패를 제공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창으로 돌변 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을 수도 있죠. 정신 승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등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방금 사용했는데요. 자신이 곧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이 곧 자신이다. 세상은 진리다. 2가지 명제를 믿으면서 한가지 명제는 부정하지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태도로서 보여질 때 3가지 명제를 충실히 실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나 세상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고통속에서 발을 뻗기 보다 어쩌면 태도가 중요시 되어야 하는 세상이 와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dc App
열등감이라는 말이 왜 있을까요.. 열등하다라.. 여러 나라 인터넷 활동을 보지만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쓰는 곳은 오직 한국 뿐입니다. 열등감이라.. 어쩌면 거울을 보고 침을 뱉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등감이 아닌 "열등"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당연한 사회. 무수한 권위가 남용되고 잘못 쓰이는 사회. 도덕을 따지지만 그것의 대부분은 개인의 이기를 위해 쓰이는 사회. 이런 모든 것이 당연한 사회에선 어쩌면 개인의 사유란 장난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돼 는 것, 그것이 전부인 곳. 가히 보이지 않는, 숨겨진 지옥국이라 칭할 만 합니다. - dc App
고독사님, 저는 제가 쓴 글을 찬찬히 흟어보았습니다. 와! 명문이 따로 없네요. 무수한 실수와 중구 난방, 없어보이고 무식해 보이는(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 서술이 많군요. 그러나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이 실수인지, 중구 난방, 없어보이고 무식한 것인지. 법적인 문제도 없잖습니까? 잘못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집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명문이 따로 없어요. 저는 장문의 댓글을 달다가도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자지 보지 섹스를 크게 외칠 겁니다. 물론 속으로요. 물질을 쫒고 남을 비웃을 겁니다. 당연하죠. 그러나 오늘만큼은 바지를 올리고 생각에 몰두하겠습니다. 어째서 미개함이 당연시 되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뒷치기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돼지 뒷치기 아니고요. - dc App
기만이죠. 얼마나 티를 내지 않으면서 자랑하고 싶어서 미쳐있는지! 기만이라.. 그것이 정말 기만을 할 만한 것인가? 세상 구성원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만이 맞는 것이군요ㅡ 고독사님도 뒷치기를 하고 있는 제가 부러우실 겁니다. 참 재밌네요. 그리고 저는 방금 평생 아무리 써도 (아무리는 아니군요) 남는 돈을 해외 은행에 잘 보관했습니다. 제가 큰 소리로 떠들었으니 기만이 아니게 되겠군요. 뭐, 세계에서 기만이란 나라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한국이니, 좀 어색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기만의 형식이 아닌 당당한 뭐 된다는 선언입니다. 고독사님은 분명히 할 말이 없어서 불편하실 겁니다. 진위를 증명하려 들고 그것이 진실로 밝혀지면 머리를 조아리겠지요. - dc App
불편한 절은 미리 잘 받았습니다. 저의 승리군요, - dc App
아무튼간에, 이만 가봐야겠군요. 절도 받았고, 기분좋게 권위를 행사할 다른 대상을 물색 해봐야겠습니다. 기만도 해야죠, 기만인지 겸손인지. 다음 여정의 겸손에 대한 박수는 어찌 받을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dc App
한번 더! 감사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