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바뀌어 주말 새벽인데, 이 시각에도 잠들지 않고 철학 갤러리(진짜 철학자들의 모임 장소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가끔씩 철학하는, 자주 철학하려는 자들의 모임 정도는 되지 않을까?)에 온다는 것은 내가 사회적응자는 아니란 거. 더군다나 지금은 파리 올림픽 경기 중계시간인데.


그래 나는 나이 오십이 넘도록 사회부적응자였고 여전히 사회부적응자가 맞다. 그런데 나의 부적응이 대체 이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지? 나는 26개월 동안 현역병으로 군생활을 했고, 잘했든 못했든, 창군 이래 항상 비꺽거리던 한국 육군의 소모품으로서 내 역할을 마쳤다. 전역하자 마자 대기업 자동차회사의 비정규 생산직원으로 일 년 가까이 일했다. IMF가 터졌고 나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깡패생활을 하는 동네 선배들과 어울렸다. 싸움도 하고 징역살이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죽인 일도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등친 적도 없다. 나는 혼자서 둘을 패고 상처냈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았는 데, 내가 대여섯 넘는 놈들에게 밟혀서 응급실에 실려간 일은 더 많다. 나의 어머니가 그 때 병원비 합의금만 해도 집 한 채는 샀다고 했으니, 내 어머니는 나의 업을 벌써 다 닦았다.


대구백화점, 대백프라자 앞에서 짝퉁 던킨 도나츠 장사도 했고, 경북 의성의 유명한 노름꾼 밑에서 운전수도 했다. 그러다가 경남 통영으로 가서 고기잡이 연안배를 탔고 결국엔 원양어선도 탔다. 나는 남들이 한국의 월드컵 4강전을 볼 때 난바다에서 그물을 털었고 노무현 씨가 죽었을 때 고향 대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육지를 떠돌며 울산 현대조선소, 거제 삼성, 창원 D조선소에서 족장일과 용접공 보조 등등 온갖 험한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