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잘 살아야 본질을 찾든 뭐가 되든 하는 거 아닐까 게임으로 따져 보자 니가 롤플레잉 게임을 시작했는데 게임은 안하고 리버스 엔지니어링만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서... 뭔가 앞뒤가 잘 안 맞는다
철갤러 2(211.58)2024-09-05 20:31:00
본질 없이도 살아진다는 말임. 그게 실존'주의ism'임. 그런데 사르트르도 저 문장에서 본질이 마치 있는 것처럼 유비하였잖아? 그럼 실존에 맞서는 본질이 없을 수는 없는 거지; 그렇다면 이제 본질은 누구의 몫일까?
고독사(125.188)2024-09-05 20:33:00
답글
말장난 아니야. 생각해 봐. 금세 답이 나오지?
고독사(125.188)2024-09-05 20:36:00
답글
답이 나왔지? 푸! 너의 그 답이 꼭 사르트르의 본디 뜻이야.
고독사(125.188)2024-09-05 20:40:00
답글
그럼 인간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거얖?
그럼 생존만을 위해 일을 다니는사람과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기위해 일을 다니는 사람중에
전자가 실존주의임?내쓸모를 남에게 인정받는다는게 목적이 아니라 내쓸모를 내가 인정한다여야 하는거여?
내가 좋아하지않아도 유행이니까 사야겠다…하는 행위같은것도 남이 정한 본질을 따르는일이야?(철학잘몰라 바보질문이라면 ㅈㅅ
익명(117.111)2024-09-05 21:00:00
답글
우선 실존은 생존과 별 상관없는 말이고, 니 말대로 사회적 쓸모의 관점에서는 칸트의 의무론(:노동의 문제)도 "반드시ㅡ타자(사회)에ㅡ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해. 그런데 니 말대로, 너의 자율성이 박탈당한 채 사회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응하면 반드시 사달이 나겠지. 네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자면, 과장하거나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 날 한국사회를 예로 들면
고독사(125.188)2024-09-05 21:21:00
답글
적절해. 너는 오랜동안 백수였고 지금도 여전히 백수야. 인간사회는 문명의 초창기부터 백수(무직,무적자)를 혐오해 왔거든? 너는 원죄의식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백수생활을 해가고 있지. 그런데 한국사회는 사기꾼이나 돌깡패짓을 하는 인간말종들이 오히려 더 대접받고 권세를 누린단 말야. 심지어 사법, 공법마저도 얘들 편이야. 무슨 말이냐면, 니가 사기를 치거나
고독사(125.188)2024-09-05 21:29:00
답글
무력으로 남의 돈을 강탈해서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뒤에도 돈만 있고 직업(사기꾼, 조폭)만 있다면 얼마든지 장가도 가(결혼도 하)고 때에 따라선 "호인"이니 "상남자"니 하는 칭송도 주변으로부터 듣게 돼. 그런데 너는 군대 제대 후 나이 사십인 지금까지 여전히 백수야. 그 오랜 시간동안 너는 네 자신의 사회적 합리화로부터 시작하여 형이상적 우주론까지 얼마나
고독사(125.188)2024-09-05 21:39:00
답글
고민이 많았겠니. 그런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너 말고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네 부모님마저도 "차라리 깡패짓이나 해라 이새끼야!" 할껄? 다시 돌아가서 사르트르가 자신의 실존주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아예 상황situation 논리를 전개하는 데 거기 전제가 "인간은 자신의ㅡ사회적ㅡ지위나 봉급, 연륜 따위에 의해"서 존재자적 위치가 결정된다
고독사(125.188)2024-09-05 21:48:00
답글
는 거야. 무시무시한 말이지만,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딱 들어맞는 말이지. 너는 철학공부한답시고(실제로 하고 있음!) 돈벌이를 안 하는데, 주변에서는 너를 깡패나 사기꾼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 이게 정말로 내가 지어낸 말일까? 현실이다! 그리고 실존적 문제야! 칸트의 도덕주의에 따르면, 타인에게 저지른 나의 죄는 사회가 규정하는 죄와
고독사(125.188)2024-09-05 21:54:00
답글
동률이야. 그런데 평생 방구석에 처박혀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희박한 너는ㅡ니가 아는 세상ㅡ모든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데, 부산 깡패 위대한이나 인천 깡패 성명준이는 돈도 많이 벌고 만인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해. 자, 이런 사회에서 본질보다 앞섰던 너의 실존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을까?
고독사(125.188)2024-09-05 22:01:00
답글
백수(실업자)보다는 깡패 아들과 사기꾼 며느리를 원하는(돈만 잘 벌면 된다는 조건 하ㅡ) 한국사회에서 실존적 문제는(목적은) 오직 성공(최소 백억 대 부자) 뿐이다. 사르트르는 그러니까 상황 논리(이론)에서 이런 자본의 끝판왕적 폐해를 내다본 거지. 즉슨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동급인 존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철학자의 말은 무조건 의심부터
고독사(125.188)2024-09-05 22:11:00
답글
해야 하고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고독사(125.188)2024-09-05 22:11:00
답글
*끝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독사(125.188)2024-09-05 22:13:00
답글
글쿤 한60퍼정도 이해했어
그럼 실존주의자들은 가스라이팅같은거 잘 안당하겠네
철갤러 3(211.36)2024-09-05 22:38:00
답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실존주의라는 말이 사실 당사자들(키에르케고어,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 등등)이 주장한 것도 아냐. 어떤 사람이 실존주의자이고 또 어떤 사람이 본체론자인지를 누가 규정할 수 있겠냐?
고독사(125.188)2024-09-05 22:45:00
답글
그것보다 사람의 일상이 자신의 철학적 소신에 의해서 움직일까? 나는 회의적이다. 하이데거가 나치의 앞잡이였던 건 알지? 한때 내가 가장 존경했던 김진석(인하대 철학과: 니체 전공) 씨는 문재인이를 대놓고 칭송했고.(말없고 감정기복이 덜한 그 사람이 문재인이 보고는 "믿었다"고 고백하지.)
고독사(125.188)2024-09-05 22:50:00
답글
그(김진석)가 문재인의 탁월한 가면술에 속았든 말든, 철학자는 결코 성급해서는 안 되지.
고독사(125.188)2024-09-05 22:53:00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임
rFI(59.7)2024-09-05 20:49:00
답글
생각해보니깐 웃기노
rFI(59.7)2024-09-05 20:49:00
답글
그걸 묻는거부터 틀렷다는 말임
rFI(59.7)2024-09-05 20:50:00
답글
https://www.youtube.com/watch?v=dHthGtIt18s
rFI(59.7)2024-09-05 20:52:00
답글
근데 사실 나도 모름
rFI(59.7)2024-09-05 20:56:00
답글
굿! 결국 실존=본질이니까.
고독사(125.188)2024-09-05 20:56:00
답글
니 말이 맞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은 이미 본질을 담지한 존재자야.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 인간(인류: 그 자체).
고독사(125.188)2024-09-05 20:59:00
답글
여기서 헷갈리지 말 것은 실존주의자에게 있어서 본질은 더 이상 아무런 삶의 동인이나 조건이 될 수 없단 것. 그만큼 현상계의 오늘이 내게서 강렬하단 것. 그러니까 이건 실재와 현상이 합치된 완전한 일원론적 사고는 아냐. 도리어 형이상을 형이하의 가치나 원리 아래에 숨겨 두는 것.(종속의 의미도 아냐.) 초기의 현상학자, 예컨대 사르트르의 친구였던 메를로-
고독사(125.188)2024-09-05 21:07:00
답글
퐁티 또한 실재를 없다거나 무가치하다 거나 말하지 않아. 실재란 걸 '전제'하기에 현상의 강렬함을 더 더욱 좇게 되지. 메를로퐁티의 말년 저작(미완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이러한 현상(사건) 만능주의를 반성하는 기미조차 엿보여. 아니, 자신의 현상학을 다시 써 보겠다는 의지이지.
후자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다음 전자를 마음껏 해라. 뭐 이런의미 아닐까요?
삶을 잘 살아야 본질을 찾든 뭐가 되든 하는 거 아닐까 게임으로 따져 보자 니가 롤플레잉 게임을 시작했는데 게임은 안하고 리버스 엔지니어링만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서... 뭔가 앞뒤가 잘 안 맞는다
본질 없이도 살아진다는 말임. 그게 실존'주의ism'임. 그런데 사르트르도 저 문장에서 본질이 마치 있는 것처럼 유비하였잖아? 그럼 실존에 맞서는 본질이 없을 수는 없는 거지; 그렇다면 이제 본질은 누구의 몫일까?
말장난 아니야. 생각해 봐. 금세 답이 나오지?
답이 나왔지? 푸! 너의 그 답이 꼭 사르트르의 본디 뜻이야.
그럼 인간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거얖? 그럼 생존만을 위해 일을 다니는사람과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기위해 일을 다니는 사람중에 전자가 실존주의임?내쓸모를 남에게 인정받는다는게 목적이 아니라 내쓸모를 내가 인정한다여야 하는거여? 내가 좋아하지않아도 유행이니까 사야겠다…하는 행위같은것도 남이 정한 본질을 따르는일이야?(철학잘몰라 바보질문이라면 ㅈㅅ
우선 실존은 생존과 별 상관없는 말이고, 니 말대로 사회적 쓸모의 관점에서는 칸트의 의무론(:노동의 문제)도 "반드시ㅡ타자(사회)에ㅡ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해. 그런데 니 말대로, 너의 자율성이 박탈당한 채 사회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응하면 반드시 사달이 나겠지. 네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자면, 과장하거나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 날 한국사회를 예로 들면
적절해. 너는 오랜동안 백수였고 지금도 여전히 백수야. 인간사회는 문명의 초창기부터 백수(무직,무적자)를 혐오해 왔거든? 너는 원죄의식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백수생활을 해가고 있지. 그런데 한국사회는 사기꾼이나 돌깡패짓을 하는 인간말종들이 오히려 더 대접받고 권세를 누린단 말야. 심지어 사법, 공법마저도 얘들 편이야. 무슨 말이냐면, 니가 사기를 치거나
무력으로 남의 돈을 강탈해서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뒤에도 돈만 있고 직업(사기꾼, 조폭)만 있다면 얼마든지 장가도 가(결혼도 하)고 때에 따라선 "호인"이니 "상남자"니 하는 칭송도 주변으로부터 듣게 돼. 그런데 너는 군대 제대 후 나이 사십인 지금까지 여전히 백수야. 그 오랜 시간동안 너는 네 자신의 사회적 합리화로부터 시작하여 형이상적 우주론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니. 그런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너 말고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네 부모님마저도 "차라리 깡패짓이나 해라 이새끼야!" 할껄? 다시 돌아가서 사르트르가 자신의 실존주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아예 상황situation 논리를 전개하는 데 거기 전제가 "인간은 자신의ㅡ사회적ㅡ지위나 봉급, 연륜 따위에 의해"서 존재자적 위치가 결정된다
는 거야. 무시무시한 말이지만,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딱 들어맞는 말이지. 너는 철학공부한답시고(실제로 하고 있음!) 돈벌이를 안 하는데, 주변에서는 너를 깡패나 사기꾼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 이게 정말로 내가 지어낸 말일까? 현실이다! 그리고 실존적 문제야! 칸트의 도덕주의에 따르면, 타인에게 저지른 나의 죄는 사회가 규정하는 죄와
동률이야. 그런데 평생 방구석에 처박혀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희박한 너는ㅡ니가 아는 세상ㅡ모든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데, 부산 깡패 위대한이나 인천 깡패 성명준이는 돈도 많이 벌고 만인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해. 자, 이런 사회에서 본질보다 앞섰던 너의 실존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을까?
백수(실업자)보다는 깡패 아들과 사기꾼 며느리를 원하는(돈만 잘 벌면 된다는 조건 하ㅡ) 한국사회에서 실존적 문제는(목적은) 오직 성공(최소 백억 대 부자) 뿐이다. 사르트르는 그러니까 상황 논리(이론)에서 이런 자본의 끝판왕적 폐해를 내다본 거지. 즉슨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동급인 존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철학자의 말은 무조건 의심부터
해야 하고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끝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글쿤 한60퍼정도 이해했어 그럼 실존주의자들은 가스라이팅같은거 잘 안당하겠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실존주의라는 말이 사실 당사자들(키에르케고어,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 등등)이 주장한 것도 아냐. 어떤 사람이 실존주의자이고 또 어떤 사람이 본체론자인지를 누가 규정할 수 있겠냐?
그것보다 사람의 일상이 자신의 철학적 소신에 의해서 움직일까? 나는 회의적이다. 하이데거가 나치의 앞잡이였던 건 알지? 한때 내가 가장 존경했던 김진석(인하대 철학과: 니체 전공) 씨는 문재인이를 대놓고 칭송했고.(말없고 감정기복이 덜한 그 사람이 문재인이 보고는 "믿었다"고 고백하지.)
그(김진석)가 문재인의 탁월한 가면술에 속았든 말든, 철학자는 결코 성급해서는 안 되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임
생각해보니깐 웃기노
그걸 묻는거부터 틀렷다는 말임
https://www.youtube.com/watch?v=dHthGtIt18s
근데 사실 나도 모름
굿! 결국 실존=본질이니까.
니 말이 맞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은 이미 본질을 담지한 존재자야.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 인간(인류: 그 자체).
여기서 헷갈리지 말 것은 실존주의자에게 있어서 본질은 더 이상 아무런 삶의 동인이나 조건이 될 수 없단 것. 그만큼 현상계의 오늘이 내게서 강렬하단 것. 그러니까 이건 실재와 현상이 합치된 완전한 일원론적 사고는 아냐. 도리어 형이상을 형이하의 가치나 원리 아래에 숨겨 두는 것.(종속의 의미도 아냐.) 초기의 현상학자, 예컨대 사르트르의 친구였던 메를로-
퐁티 또한 실재를 없다거나 무가치하다 거나 말하지 않아. 실재란 걸 '전제'하기에 현상의 강렬함을 더 더욱 좇게 되지. 메를로퐁티의 말년 저작(미완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이러한 현상(사건) 만능주의를 반성하는 기미조차 엿보여. 아니, 자신의 현상학을 다시 써 보겠다는 의지이지.
불가능성은 가능성의 영역을 압도하는 선제적 조건이다이기
굿! 그것도 실존주의적 캐치프레이즈가 맞다.
담배 좀 사올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쏟아 놓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