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물리학bio_physics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에도 불구하고 라는 관용어는 이제 제발 삼가자: 지긋지긋하다!) 대개의 인간은 여전히 사회과학적 인간 본질과 인간 완성을 생각한다. 사회과학(?도대체 이게 성립하는 말인가!)자가 말하는 그런 인간(종: 인류) 속성을 생물학에 맞대면 유전자dna 쯤 되겠다. 그리고 뇌과학에서의 시냅스 작동 따위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생물학적 본질로서 유전자와 시냅스 교류란 게 사회과학에서 인간의 어떤 특성(목적)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생의 의지(생존 욕구). 짐승의 생산 본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이걸 인간중심화하면 바로 자연계의 권력의지wille zur macht(맹목적 힘이라고 해도 좋)다. 즉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인간본성(변증적법 본성의 '완성')ㅡ그것이 과학이라면, 과학이 될 수 있다면ㅡ이 가능하려면 우리는 생존의 문제보다 더 깊이 권력의지(의 문제)에 관해서 숙고해야 한다.
p.s. 586이고 민주화고 다 쓰잘데없는 말장난이다. 이 세상에 타인의 삶을 "위해서" 내 삶을 "희생"하는 인간 존재자는 아예 없거나 드물고 또 드물다. 586 민주화 운동가의 뇌내와 배때지 속 유전자에는 '민주'라는 이념 말고 "욕망"만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걸 간과한 모든 사회과학적 담론은 예수쟁이들의 선언과 꼭 같은 신화일 뿐이다.
p.s. 586이고 민주화고 다 쓰잘데없는 말장난이다. 이 세상에 타인의 삶을 "위해서" 내 삶을 "희생"하는 인간 존재자는 아예 없거나 드물고 또 드물다. 586 민주화 운동가의 뇌내와 배때지 속 유전자에는 '민주'라는 이념 말고 "욕망"만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걸 간과한 모든 사회과학적 담론은 예수쟁이들의 선언과 꼭 같은 신화일 뿐이다.
너희는 '측은지심'이란 말을 어떨 때, 어떻게 사용해? 그냥 불쌍한 사람이니까 도와주자는, 뭐 그런 개념이니?
공맹의 유가에서 말하는 본디 측은지심은 특정 대상, 그러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전제하지 않아. 그보다 나의 자발적 태도가 우선 조건이지. 그래서 그런 성선설에 맞서는 성악설도 나오고 하는 거야.
내가 이틀 전에 걸어서 홈플러스에 술과 반찬거리를 사러 가는데 늙은 아지매가(울엄마 연76세 쯤으로 보이더라)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내당 네거리 그 큰 도로에서 리어카가 전복된 걸 본 거야. 아차! 싶대(왜냐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에 휘말리겠구나 하는 예감 때문에). 그 큰 도로에 수많은 차가 오가고 수많은 행인이 가득한 데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는 거야. 순간ㅡ솔까말ㅡ내 맘 속에서도 '모른체 지나쳐야 한다ᆢ모른체 지나가야 한다ᆢ'는 다짐이 수십 번 반복되었어. 나는 항상 베풀고도 욕먹는 삶을 살았거든. 눈감고 지나가자, 가자 했는 데 내 주먹만 한 아지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 장바구니 가방을 인도로 던지고 함께 널부러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 끝나겠니. 리어카부터 다시 바로 세워 일으키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왜냐면 거긴 편도 4차선(왕복 8차선) 도로이니까. 리어카를 세우는 데 빈 막걸리병과 빈 맥주깡통이 왕창 쏟아져 내리는 거야. 시발 오후 두 시의 땡볕 아래서 똥오물을 뒤집어썼다. 일단 바(고무나 나일론; 줄)부터 고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부터 당겨 묶기 시작했는데, 당기는
족족 삭은 바들이 터져나가는 거야. 하 시발 미치겠대. 다행히도, 천상 다행히도 내가 뱃놈 출신이 아니냐.(세상에서 뱃놈 만큼 매듭 묶기를 신속정확하게 하는 직업인은 없다.) 터지는 족족 묶어 가면서 겨우 수습했다. 아무튼 이 사건에서 나는 사회가 강요하는 윤리적 의무를 이행한 것이냐, 아니라면 나의 자율성에 따른 행동이었느냐는 것.
오후 다섯 시 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지매 보고 그랬다. "아지매요 종이쪼가리 줍다가 날샐낍니까. 인자 퇴근시간입니더. 이카다가 정말로 난리납니더. 제발 내 시키는 대로 리어카 대가리나 꼭 잡고 가마이 있으소! 시발 뭔 떼돈을 번다꼬 이래 감당도 못할 욕심을 부립니까!"
또 하나, 그 많은 행인 가운데는 도덕주의 철학전공자가 있을지도 모르고, 평소 도덕을 강요하는 학부형이거나 학생들도 있었을 텐데, 정말로 단 한 명도 나서 도와주지 않더라. 여자라서 리어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면 도로에 날리는 폐지 조각이라도 함께 주워 줄 수는 있었을 텐데. 게 중 덩치큰 중고등학생(교복을 입고 있었으므로)이 사방 눈치를 보면서 도와
주려다기 신호가 바뀌니까 결국 제 갈길을 가더군.
이제 여기서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디 성품인가, 사회가 강요하는 윤리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각자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해봐. 참고로 하이데거의 '개념처럼' 쓰이는 sorge(염려)라는 말과 칸트의 selbstbewusstsein(자의식 쯤)을 연결지은 논문이 많다. 칸트도 sorge는 아니지만 우리말 '염려'에 해당하거나 자발적 선의에 관해서 굉장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오늘은 주말이자 주초였네. 다들 편히 쉬고 싶은 하루였는데 결국 무거운 주제를 던졌군. 미안해. https://youtube.com/watch?v=rgB_eWncloY&si=OoxAMkUHrA_io8DA
곰곰이 씹어 보니 결국은 내 자랑이 되었군요. 이걸 의도한 게, 아니 목적은 니체의 전언이었는데ᆢ.
나는 정말로 특정 의사(그것도 대구 경북대 의대 외과 교수) 하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각오하고 무언가를 써 볼 수 있는데(굉장히 철학적이기도 한데) 망설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의사와 정부라는 막강한 두 세력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는 게 나을 듯합니다 님들.
"가난한 새끼들은 평생 춤과 노래에 빠져 살지." 실제는 부자들의 유흥시간이 더 많은데, 그렇다고, 선생님 말씀이 다 맞다, 고 일단은 넘어갑시다. 이단, 삼단도 넘어가야 합니다. 시간은 반드시 시대(시절)의 임계점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청년들에 의한 혁명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시간 만큼 무서운 게 타고난 존재자적 자질이니까. 아무튼 머잖은
때에 조선노묵 586과 그의 씨앗들은 인종청소 당할 날이 올 겁니다. 예, 장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