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복수는 일종의 금기와도 같다
아무리 친한 사이나 가족한테도 그 자식한테 복수할거란 말은
어리석고, 철없고, 유치한것으로 치부된다

중세 유럽 때는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결투가 있었고,
서부개척시대 땐 총잡이들이 권총 한자루로 싸웠고,
근대까지 "개인의 명예"는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었다.
남을 욕하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 각오가 있어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소위 문명인이란 작자들이 혓바닥으로
"개인의 명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고 조롱한다.
150년이 아니라 5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크게 발달치 않아

얼굴을 맞대고 사는 솔직함의 시대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인간들은 그렇게 "개인의 명예"조차 지키지 못하고
목숨만 그저 부지할 뿐이다.

그렇게 쌓인 원한들은 갈 곳을 잃고 사회를 좀먹는 암과 같이
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끝없이 가속화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복수로 인해 몰락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발악하며 온갖 법과 제도를 만들고 복수를 폄하한다.

자연의 동물 중 어린 인간만큼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고릴라,
원숭이나 코끼리도 적극적으로 복수를 한다. 복수가 야만적인
것이고 인내가 문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성욕,수면욕처럼 인간이란 동물의 수많은 입체적인 면 중 하나일
뿐이라서 억지로 억누르고 억압한다고 전혀 억눌러지지 않는다.

감히 말하자면 복수는 아름답다! 복수를 이뤄냈을 때의 카타르시스
뿐만 아니라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이 더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가 나약한 개인이 아닌 의지를 가진 생명체로서의 생존의지가
복수 상대의 고통이란 자양분을 섭식하고 꽃피우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는 복수라는 행위를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 다음에
"생명"도 "자유"도 "재산"이 훼손되었을 때는 어떡할 것인가?
같잖은 도덕적 흑백 논리는 잠시 집어치우고 아름답고 숭고한
복수의 여신-그리스인들이 네메시스라 칭한-그녀의 얼굴을
봐라. 그녀는 너의 명예뿐만 아니라 너의 고통과 아픔도 전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또한 그녀는 기꺼이 칠흑처럼 검고 긴 옷자락을 둘러 너의 명예를 수호해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복수가 곧 명예의 방패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율법과 업보의
신으로서 존중하였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는 도덕을 버려야 한다. 먼 과거 사회가 없을 때
도덕을 말하던 이들은 자기를 지킬 정도의 힘이 있었다.
사회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너를 지키는 것은 너 스스로여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남에게 고통을 준 인간이 잘 먹고 잘 사는
돈만 있다면 집행유예로 풀려나오는 전관예우로 빠져나오는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시궁창이다.

멕시코인들은 한국인의 자살율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신기해 한다. 널 열받게 한 사람을 죽여버리지 왜 자살하냐는 것이다.
그들은 네메시스를 인정했기에 우리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고
우리는 네메시스를 거절했기에 스스로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당장 내가 없다면 세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명예를 지키지 못한다면 생명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현대사회는 이 두 질문에 절대 답하지 못한다.

업보라는 개념을 억제하고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자기보호 본능인 복수를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메시스는 지금도 권력자들과 유교란 도덕철학의 시체에 묻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는 한국사회에서 금기시되는것이다.
진정한 노예는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네메시스 없는 노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