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언어개념이 없다.

아직 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를 인식하지 못하는 아기들은

자아를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아기들도 자아가 있다.

유전자, 무의식, 본능, 가능성, 이런 측면은 떼어놓고 보자

아무튼 언어를 인식할 때 자아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철학과 과학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Cogito ergosum

이 또한 언어를 통해서 열리는 인식과 이해의 지평이다.

인신론의 근간은 언어다.

예술, 종교, 체험, 자연, 5차원..이런 상상적 차원도 빼자.

우리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 세계를 인식하는 차원을

상상할 수는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체험, 대자연의 언어들(이를테면 유전자)

예술 따위의 독특한 경험들은

우리 지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확장된 세계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가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로 침묵의 영역인 것이다.

유전자의 경우

우리가 유전자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이유는

우리가 유전자를 인간의 언어로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에게 유전자 지도는 아무런 의미를 보여주지 못한다.

심지어 플라톤에게도 유전자 지도는 그냥 낙서일 뿐이다.

플라톤과 조선시대 양반에게 유전자 지도는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 이해와 언어의 지평이 세계의 사물에 미칠 때

그것은 해석가능하고 이해가능한 언어가 된다.

이처럼 언어는 세계의 존재형식이 아니라

"우리 인식의 존재형식인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존재형식을 언어를 통하지 않고 알 수 없다.

그래서 언어는 곧 인간의 존재형식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의식과 필히 동반되는 형식인 것이다.

자시의식 또한 하나의 언어의 형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경험을

의식하지 않으면

즉, 이해하지 못하면

아기와 같은 무르익지 않은 자아를 가진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