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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 양태가 실체에서 따라나오는 것에 대한 의문 : 4차원 시공간론>


4차원 시공간론에 따르면, 유한한 존재들이 생성, 소멸등의 변화를 겪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 이론에서는 시간에 대한 관념 자체가 환상이기에 변화도 없고 운동도 없기 때문이다.

미래-현재-과거에 이르는 모든 순간, 사건, 사물들의 배치와 관계들은 본디 정해져 있으며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3차원 존재인 우리는 마치 시간 축에 따라 의식 활동이 전개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나름의 독자적 실체를 가지고 상호작용하며 각자가 지닌 속성을 획득하고, 손실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변화하고 유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4차원 시공간론에 따르면 이미 모든 사건들, 사물들의 배치는 시간축에 따라 연장되어 고정되고 필연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3차원 공간의 고체 덩어리랑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차원을 더 뻗어서, 4차원 상의 고체 같은 것이 단단하게

굳어있는 모습이 바로 우주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거대한 4차원상의 고체 덩어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암석의 일부를 차지하는 작은 암석의 부분이거나

아니면 하나의 초코칩에 붙어있는 작은 초콜릿 덩어리들이나 똑같은 신세다.


3차원 공간과 그것을 채우는 물질등의 경로가 시간이라는 축에 따라 쭈욱 길쭉하게 펼쳐져 있는 4차원 시공간 덩어리를 상상해보자.

이런 거대한 하나의 고체와도 같은 우주 전체의 덩어리 일부인 작은 덩어리가 인간이고, 동물들이고, 행성이고, 별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 의 우주론을 접근해보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유일한 실체인 신은 자신의 본성을 무한한 방식으로 무한하게 표현한다고 했다. 이때, 과연 유한하고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존재인 유한 양태들인 우리가 어떻게 무한하고, 정적이고, 필연적인 신이라는 존재로부터 따라 나왔을까?

신은 고정되었다. 불변하는 존재다. 그의 본성에서는 인과관계에 따라 무언가가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도형의 정의로부터

그 도형의 속성에 대한 명제들이 논리적으로 따라나오듯이 따라나온다. 그렇다면 그의 불변하는 본성을 표현하는 것들 역시

당연히 수학적 도형의 정의에서 따라나오는 수학적 명제들처럼 고정되고 불변하며 필연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유한한 존재인가? 우리는 어떻게 무한한 존재로부터 따라나왔을까? 우리는 유동적이고 변하는 존재인데

말이다.


이 부분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해석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답을 내리지 못한 난제라고 알고 있다. 진태원 교수의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 못하고, 토마스 쿡의 <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이라는 책에서도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 나는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고 싶다.


이 우주를 거대한 4차원의 고체라고 생각하면, 사실 움직이는 것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더 깊게 들어가보면 하나의 '개체' 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봐야한다. 왜냐면 한 정자와

난자쌍이 만나서 수정체를 만들고, 그 수정체가 자라면서 태아를 만들고, 태아가 아기로 성장하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되고,

그 성인이 노인이 되는 이런 과정들이 4차원 시공간안에서는 그냥 하나의 고체 덩어리의 연장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럼 정자일 때가 하나의 인간 개체의 시작인가? 아니면 그 정자가 만들어지도록 만든 다른 생체 분자들이 인간 개체의

시작인가? 이런 물음들이 따라나온다. 그런데 그것들을 4차원 시공간이라는 고체의 일부를 차지하는 작은 조각으로써

인간의 탄생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 조각에는 딱히 경계랄 것도 없다. 어디부터가 인간의 시작인데? 누가 그걸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은 실재하지 않으니 변화와 운동도 없는 것이고, 생성도 없고 소멸도 없다고 봐야한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한 양태들은

초콜릿 칩에 박힌 초코들처럼 그냥 정적으로 굳어있는 무언가이고, 그 무언가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독립적 실체들을 가진 것

처럼 보는 것, 그것들이 변화를 겪는다고 보는 것, 그리고 여러 개체들을 경계에 따라 분리해서 보는 것 역시 실재와 대응하지 않는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냥 4차원 시공간이라는 거대한 고체에 박힌, 시간축에 연속적인 작은 조각들에 불과하다.

애당초 정적이고, 고정되고, 불변하는 우주의 본성을 표현하는 거대한 우주라는 고체의 일부 '조각' 이다.

우리의 삶의 궤적, 의식 활동, 판단 활동. 모든 것들이 전부 고정적이고, 필연적이고, 불변하는 거대한 시공간의

일부인 조각이다. 그런 것의 조각이니 그 조각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는 필연이고, 불변하고, 고정적이다.


그러니 답이 나왔다. 어떻게 유한 양태인 우리는 무한하고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신으로부터 따라나왔는가?

=> 불변하고 필연적인 4차원 시공간의 부분이기에 그렇다. 시공간은 신의 연장 속성을 필연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고

우리의 몸, 관념들도 그런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불변하고 필연적인 것의 부분이기에, 전체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 받고 있어 그렇다. 유한 양태들의 운동, 변화는 전부 환상이다. 시간도 환상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개체의 구분, 즉 사람, 동물, 나무, 풀 따위를 구별하는 것 역시 환상이다.

어디가 생의 시작이고 생의 끝인지 구별하는 것도 환상이다. 4차원 시공간 고체에 박혀있는 조각들이

자신의 유한한 인식 한계를 통해 만든 환상들이다.

즉 우리도 엄밀하게 보면 고정되고 불변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니 수학 도형의 정의에서

그 도형에 대한 명제들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오듯 우리 역시도 신의 본성으로부터 따라나온 것으로

보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동시에 스피노자는 비존재에도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으므로, 우리가 사는 우주 역시

그가 만들어내고 표현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우주들 중에 하나로 성립할 수 있겠다.

이런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왜 유한한 양태인 우리가 무한한 신의 본성에서 따라나올 수 있었는가?

라는 물음에서 제기하는 무한한 것과 유한하다고 인식되는 것 사이의 간극은 더 줄어들 것이다.

모든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들까지 표현할 수 있어야, 그게 무한한 신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