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서 제게 물어오셨듯이 저도 여쭙습니다. 은밀하게(사실은 아주 친밀하게) '잘 지내시죠?' 음, '저는 님이 항상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예,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인터넷 폐인은 여전히 인터넷 폐인으로 머물러 있단 게 "잘 지내냐"는 물음의 정확한 응답이지요. 여기서 제가 님의 인터넷 폐인생활을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님은 먼저 이해하실 겁니다. 부동성. 움직이지 않는 특질이 존재론을 일깨웠고 존재자는 여전히 그런 부동의 원동자를 동경하지요.
이제껏 인터넷 폐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가능성이 많은 님은 플라톤 철학으로 따지면 진짜 철인이기도 합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게 바로 순수입니다.
그러니까 인터넷 폐인은 여전히 인터넷 폐인으로 머물러 있단 게 "잘 지내냐"는 물음의 정확한 응답이지요. 여기서 제가 님의 인터넷 폐인생활을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님은 먼저 이해하실 겁니다. 부동성. 움직이지 않는 특질이 존재론을 일깨웠고 존재자는 여전히 그런 부동의 원동자를 동경하지요.
이제껏 인터넷 폐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가능성이 많은 님은 플라톤 철학으로 따지면 진짜 철인이기도 합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게 바로 순수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님 자신입니다. 모든 철학의 문제는 님 자신의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더욱 더 천착하여야 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변곡점 따위는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심각하거나 덜 심각한 노년의 나를 발견했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그게 진짜 님의 현재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 말도 틀렸습니다. 나의 지금 말에는 구체성이 없어요. 허한 말이란 거지요. 즉, 님은 이미 어떤 철학(제가 알기로 님은 칸트 또는 고대 희랍 철학 공부를 하는 분이 맞지요?)에서 제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이에요. 그게 답니다. 나보다 못한(모르는) 애들을 비웃고 나보다 잘난(장숙 김영민급) 애들 앞에서 낙담하는 그저 그런 흔해빠진 존재
:그렇다면 철학이 겨우 지식의 총체입니까?
;하지만 수학이 인간을 구원하지는 않죠.
♥+ https://youtube.com/watch?v=1mKR0Hml-9s&si=xKcZ___EtcVqjgND
https://youtube.com/watch?v=n0XObyTHBe0&si=mN5g_JcBLS5Ajug8
¿○° https://youtube.com/watch?v=aIWOBFyGQDs&si=CLP7uscZkC8tb8B4
ㅡㅡ https://youtube.com/watch?v=ZnlMefvi06o&si=Av6Q4UV7K6UynDTv
고독한 남자의 "야망"이란 말만 거세하면 제법 훌륭한 노래입니다. 특히 후렴부의 "나나나ㅡ나나나" 하는 오픈 허밍은 한때 나의 자살 심정을 유도했지요. 김정은이 앞에서 고개숙인 자, 마초이즘을 노래하는 자 따위의 선입견을 모두 내려놓고, 노래 그 자체에 집중해 봅시다.
♥+거듭 사랑하는 59, 211, 116님께 드립니다. https://youtube.com/watch?v=06G2HOYhSww&si=LMcQrADAbAwb_3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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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철학자 211, 116, 59님과 함께 듣습니다.♥+ https://youtube.com/watch?v=WP-Ex_3rUDw&si=MNJATK24NA0g57So
가슴을 치며 울고 또 울어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철학함'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님들이 있네요. 나 때문에 아프지 마세요. 만일 내가 님들에게 고통이라면 나를 당장 버려야 합니다. ♥+ https://youtube.com/watch?v=6eLT4_bbgdY&si=fkJOg6t8n1etHW7y
철학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철학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유일한 무기이며, 유일한 반성 자료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철학보다 더 큰 삶의 공부는 없습니다.
♥+어렵지만 아무도, 아무 것도 원망하지 말며 https://youtube.com/watch?v=vVpf4VWP9g4&si=7XpU4_fqkkuWU5k3
♥+ https://youtube.com/watch?v=U_T9Nux8woo&si=FPazxcrE0Hxy4qSI
♥+힘냅시다 내 사랑 철학자님들 https://youtube.com/watch?v=WsYkOt9UaVQ&si=jCGFWailPXu8csx3
♡다시 한 번 https://youtube.com/watch?v=zztFBwxSM78&si=I_Hi1uuitOXDbBst
211님, 제게서 뭔가 형이상적인 통찰을 기대하셨을 텐데 매우 실망스럽지요? 사는 게 항상 (빈)깡통따기 바로 이런 식이죠.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님이 저를 불러 주었기에 저는 나타나서 앞으로ㅡ종종ㅡ님께 쓸모있는 철학에 관해 읊조릴 겁니다. 오십 묵은 나보다 님은 무조건 오래 살기(벌써 약속했음)!
https://youtube.com/watch?v=w-wB-gF9G-A&si=T3trWVvl53lRmU28
결국 모든 것은 없음(무의미)이 아니겠는가? ㅡ너는 그 무의미를 견디면서 살 수 있는가? ㅡ무의미조차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런 견딤의 과정이 나는 인생이라 말하고 싶다.(자크 데리다, 1930~2004, 프랑스.)
내가(주체가) 나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2개가 아니므로... 나는 당연히 1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 이외의 모든 것입니다 내가 발견했다 -> 내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세계 = 대상 = 철학에서 말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211님께 다시: 오직 결핍의 과정 속에서만 사유는(생각은) 싹튼다. 세상 모든(만인의)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생각을 멈춘 상태, 곧 즉자이다.
저는 아름답지 않군요 어제도, 오늘도 주구장창 생각중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는 앞으로도 생각과 함께 살아갈 예정입니다 결핍은 메워지지 않을 것이므로
제가 211입니다 고독사 아이디 보고 조금 놀람
저는 죽어서야 생각을 멈출 수 있을듯 합니다
175/ 그래서 님은 현재도 철학 중입니다. 내 결핍의 까닭이 돈이나 인정욕구 같은 걸로 바로 메워질 수 있다고 여기면 오로지 돈을 벌며 명성을 쌓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물론 그런 최선(의 노력)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죠.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다른 쪽으로, 다른 사유를 시도해 보자는 거죠. 오늘날의 철학에서 그보다 중요한 의미는 없습니다.
님은ㅡ틈틈이ㅡ칸트 철학도 공부하고 고대 희랍 철학도 공부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칸트의 근현대적 의의가 뭐든가요? 다른 모든 말을 잠시 삼가고 칸트철학의 근현대적 의의는 '(인식)주체의 발견', 곧 '개인의 발견'에 있습니다. 예컨대 중세의 교조주의자나 고대 로마 철학에서 아퀴나스나 아우렐리우스는 본인의 이름으로 말하되, 진짜 자신은 아니죠.
그들은 사회 속의 어떤 직위, 어떤 소속, 무엇보다 국가나 신권의 구성원으로서 발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발언과 개인의 발언이 똑같은 무게를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보면 칸트 이전과 이후는 어마어마한 인식체계의 차이가 발생하지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칸트철학의 본질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더라도 칸트가 몰락히지 않듯, 님의 수고스러운 생각의
본질에는 기왕의 사회문제와는 다른 무언가가 반드시 예비되어 있을 겁니다. 위대한 철학이 위대한 철학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한 개인의 끊임없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건 틀림없습니다.
거듭 아름다움(-다운 존재)은 대상의(을 향한)ㅡ보편적ㅡ평가이지 나의 이름이나 존재론적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이 지점을 자주 간과해요. 세상에는 진심으로 김태희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아이유가 결코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차이의 문제는 존재론(본체론)과 별로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현대
현대철학은 차라리 그런 자연적(심미적) 관점의 차이가 어떻게 권력으로 발생하여 투쟁하는가 하는 따위에 관심이 있죠.
(개인의)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고 죽음이라는 고통과 비애의 시간을 향해 치닫는 무질서한 과정들의 총체입니다; 그러니 그럴수록 님의 가치를 발견하셔요. 그런 님만의 독특한 가치가 새로운 세계(문화)의 뿌리가 됩니다. 세상을 바꾸려 말고 오직 자신만을 견디는 데에 최적화한 사람이 되십시오.
앗, 아닙니다 전 그냥 무지랭이입니다 인식주체는 발견될 수 없습니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대상입니다 발견의 주체가 어떻게 주체를 다시 발견할 수 있나요 모순입니다 오른손으로 오른손 만지기입니다 고독사님은 진짜 자신을 발견하셨습니까?
마지막 댓글 감사합니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것 같습니다 거의 반포기 상태에요 고독사님이 말씀하신 가치는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을듯 합니다
예, 철학 또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저도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최고!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유재하 https://youtube.com/watch?v=yPdUVGhmXWA&si=YmI_WmJuz1WY1N5r
그래도 인간의 심리사(마음의 역사)는 항상 난센스의 문제이니까 어떤 천재일우의 때도 기다려 보세요. 님처럼 독특한 사람만이 그런 하늘의 기운을 포착할 테니까. https://youtube.com/watch?v=p5TGgp8t440&si=8znYAfOGgZ9UNF7l
♥+내 사랑 힘내세요 https://youtube.com/watch?v=mAdPh-IyQ0M&si=P3hD9uLd7BzuWLyn
예, 그게 최선인듯 하네요 그런 줄 스스로 알면서도 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철학갤 기웃거리는 제가 좀 웃기기도 합니다 날로 먹으려는 심보지요 뭐...
https://www.youtube.com/watch?v=i6M2GWofves
잘 들을게요. 철학갤ㅡ이든 어디든ㅡ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건 날로 먹자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겸손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서울대 철학과 학부생이 철갤을 들릴 일은 드물지요. 그러나 나는 걔들을 진짜 철학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걔들이 나를 비웃는 건 세상사람과 함께 비웃는 것이겠지만, 내가 걔들을 비웃는 건 이론과 실천(생각함의 깊이)의 층위입니다.
이번에 나의 조카가 수학영재가 되었습니다. 그애가 내게는 여전히 조카일 뿐 다른 의미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면 장땡입니다 (밥먹고 디시하는 로보트의 생각임.)
나이 차이가 마흔 살 가까이 나는 삼촌으로서 조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영화관람표를 예약한(정확히는 그 돈만 지불한) 것 뿐입니다. 그거라도 해줄 수가 있어서 나는 기쁩니다. 나이 열네 살 먹은 놈이 고등학생 미적분을 다 풀고 이젠 벡터니 뭐니 하며 본격적 고등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재이지요. 그런데 얘가 저보다 뛰어난 선배와 동기에게
기가 죽는 모양이에요. 학제, 아니 학문의 세계가 본디 그러합니다. 님이 스스로의 천재를 자학하는 것은 마땅하나, 님이 세상 모든 걸 깨우쳐서 그리 괴로운 건 아닙니다. 철학의 어떤 느슨한 끈을 악용하지는 마옵소서 내 벗이여!
175/ 거듭 개인의 삶은 그 끝이 무의미합니다. 의미와 무의미의 경쟁을 내 머리속에 그리지 말고 끝까지 나의 의미를 찾아 봅시다. 그게 진짜 허무라고 할지라도 내가 보아야 하고 심지어는 내가 발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님을 진짜 철학자라고 믿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https://youtube.com/watch?v=pxWa1djr3yQ&si=o4whh4HKDHyjKCcx
맞아염, 저는 사실 조또 모릅니다 그냥 이게 최선이야 하고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일 뿐... 적어도 솔직한 노력을 해봐야죠 앞으로도 계속 찾을 겁니다 제 정체성이 그렇기 때문에 ㅎ
푸!
"사실" 저도 겨우 좆만 알죠. 좆을 알고 모르고는, 부질없는 앎의 차이입니다.(좆이 무언지 몰라도 씹은 그 좆을 생래적으로 의식하여 유성생식하지요.) 노래나 들읍시다 철학자 님! https://youtube.com/watch?v=oxVAzqkL2dw&si=7VPiOPxzczf6dK9F
175/항상 느끼지만 제가 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요. 하지만 님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어느덧 이만큼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믿지 말고 오직 님 자신의 가능성만 믿으십시오. 칸트가 말하는 보편 위의 가능성은 꼭 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같은 길(철학)을 걷는 도반으로서, 무엇보다 인생 폐인의 선배로서 일갈합니다. "님은 지금
사람답게 살고 있습니다!"
동무님, 저는 이만 잘게요. 힘내세요(저도 곁에 있습니다!) ♥+ https://youtube.com/watch?v=DCtouot15cA&si=BYTafnr1Srhrhze5
우리들 못난 철학자님들께 전합니다.(니체도 살아생전 진짜 찐따였어오.) https://youtube.com/watch?v=-omHvipYsvI&si=RG8HwM3p1PSNtU86
개똥벌레라고 아시죠? 우리땐 쇠똥구리라고 배웠는 데 아무튼 종의 절멸을 앞두고 있대요. 우리 철학이 비록 제학문의 똥찌거기를 핥으며 살아가더라도 나름의 집을 짓고 나름의 스캐빈저 역할로서 여전히 지구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을 담당한다는 걸 잊지 맙시다.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https://youtube.com/watch?v=SM9U8RCj_i4&si=-BbrASbJDK0nWP49
https://youtube.com/watch?v=xg-RSb1qp7c&si=iPEjl9ZjsZYsaQwb
개똥벌레와 쇠똥구리는 아예 다른 종이군요. 개똥벌레는 반딧불이랍니다. 조또 모르면서 하찮은 내 기억 따위를 더듬어 나댔습니다. 죄쇵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러니까 칸트를 아는 내가 무시하는 칸트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 칸트보다 더 냉정하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런 두려움 없이 나섰다가는 필히 낭패를 맛봅니다. 인간은 저의 이익이 달린 문제에서는 모두가 조폭이고 모두 천재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말이 없는 자와 아예 문맹을 흉내내는 일상의 주변인을 가장 두려워 하십시오. 말이 통하지 않는 자는 뛰어난 스승보다도 윗줄입니다.
즉, 침묵을 일상화하십시오. 생각하고 또 생각하되,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많은 시간을 침묵하십시오. 어차피 철학은 소통의 학문이 아닙니다.
님과 소통하는 자는 님과 똑같은 수준의 폐인인 나밖에 없습니다. 침묵 또 침묵, 또또 침묵하여 사람들에게서 아자(벙어리)소릴 들어야 합니다.
ㅋㅋㅋ '제 학문의 똥찌거기를 핥으며' 라는 표현이 되게 웃겨요. 칸트 아니면 헤겔 이후로 통찰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 사라져버리고 말 따먹기 선수들의 언어 분석 놀음, 논리화 놀이로 전락한 철학의 꼬락서니가 웃기긴 해요.
175/ 영원히 침묵하는 저 하늘과 저 시간은 오직 벙어리만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무여, 나와 함께 침묵의 길을 떠날 수 있습니까!(자다 깼습니다ㅡ진짜로 잘게요)
아아 116님,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몹시 취했고 잠자다 잠시 깨어 헛소리 중입니다. 속이 쓰려 라면 하나 끓을 테니 하고픈 말씀 맘껏 해보십시오.
끓을? =>끓일
116/ 제학문의 어버이로서 철학의 이미지는 님이 말씀하는 칸트와 헤겔에서 종말을 고한 게 맞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게 요즘 궁금해지더군요. 고독사님. 이제 이론철학적 주제들에서 슬슬 현실과 일상속에 맞닿아있는 주제들에 관심이가요. 실존, 선택, 가치, 예술, 미...
밀리 서재라는 전자책 서비스에서 미학 입문서 하나 읽는 중입니다. 껄껄
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사실 칸트와 헤겔, 아니 칸트 벌써 이전의 뿌리인 플라톤 철학조차도 말장난으로 여겨집니다. 즉슨 그런 공부로는 출세는커녕 제 존재자적 위치마저 위태롭습니다.
제 조카(여동생 아들)가 수학 영재입니다. 즈그엄마는 문학과 역사도 중요하다면서 독서를 강요하는데, 나는 조카에게 수시로 말하길, "역사책은 전부 거짓말이다. 문학은 나중에 취미삼아 읽어도 된다. 니가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에만 집중해라"고. 심지어 나는 조카에게 국어공부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영어공부를 하라고. 나의 이런 강요 때문에 오늘날
걔가 수학영재 소릴 듣는 건 아니겠지만(어릴 때부터 조카는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었고 취미가 남달랐습니다), 나는 조카의 재능을 몰랐던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강요를 할 것 같습니다. 즉, 나는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가짜 학문이라는 거지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당장의 생활세계에 있어 아무런 쓸모없는 공부입니다. 예, 말 그대로 인격이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공부 그 자체입니다. 학문과 공부는 다르다는 거죠. 학문은 말 그대로 지식학이고, 그건 살아가는 수단과 출세의 자료여야 합니다. 시답잖은 형이상적 말장난이 아니죠. 아주 구체적이고 사물과 현상에 맞닿은 것이어야 합니다.
철학 자체만으로는 그럴겁니다. 또 문학이나 사학은 더 그렇겠죠. 그런데 공학과 철학 모두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실용적 학문과 병행되는 철학은 꽤나 강력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과학과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철학공부를 하는 까닭의 첫째 원인이 수학과 과학을 미처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여깁니다. 내가 내 조카처럼 수학에 재능이 있었더라면 나는 칸트 말고 프린키피아를 먼저 읽었을 겁니다. 수학에, 아니 수식에 문자적 해석이 끼어들면 반드시 사달이 납니다. 수학은 수식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보다 먼저 사물(현상)과 접촉(접속)해야 합니다.
철학, 문학, 사학은 주어진 상황을 해석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주겠지만, 상황을 만들고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실용학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고독사님 말대로 구체적 시공간적 과정과 절차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반면 철학은 시공간 자체에 대해 사유하죠. 다소 수동적이에요
세상을 헤쳐나가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상상력과 실천력도 중요할 것입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할 거에요.
아아, 역시 내 사랑! 님 말씀대로 공학과 철학이 병행되었을 때의 시너지는 공학이 주체이고 철학은 객체인 경우입니다. 여기서 이런저런 말장난을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한국사회는 이상하게도 인문학이 무슨 만학의 으뜸인 양 당연한 학제로 여기는 데 그거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편견과 아집이에요. 고대 그리스의 필로소피도 본디 필로소포스(재능있는 자)의 경연에서 유래
한 말입니다. 거듭 인문학이 만학의 척도일 리는 없다는 거죠. 소크라테스(플라톤)의 형이상학 이전에 이오니아의 자연철학(과학)이 먼저 존재했습니다. 그런 자연철학에서도 얼마든지 시공간적 사유가 깊이 있게 전개되며 오히려 보다 구체적인 우주론적 사유가 펼쳐집니다. 예컨대 원자론이나 아페이론(무한정자) 같은.
그리하여 최근에 고민하던 철학 공부 방향을 결정했죠. 앞으로는 분석적 책들은 가볍게만 읽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다른 무언가를 서포트 하는 것이 철학인데 지나친 형식적 분석 언어적 분석은 그런 서포트 할을 하는데 불필요하니까요. 전체론적 맥락적 체계적 시스템적인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 끄덕끄덕/
정말로 보기 좋습니다. 분석철학, 곧 언어철학은 기왕의 어긋난 형이상적 사변철학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도리어 그 세계는 말로 이루어진 사변의 늪으로 한층 빠져버리는 입구가 되지요. 예, 현명한 자라면 플라톤의 이데아에서도 원자 너머의 소립자나 제일원인을 발견하는 법. 최곱니다!
116님 같은 분을 보면 역시나 철학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생각함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분명 어떤 격차가 있어요. 아름다움에 보다 가까운 뭔가가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분석철학의 포문을 열었으나 결국 후기 철학에서 일상언어를 분석하며 언어의 의미는 맥락과 사용에 있다고 주장했던 것은 굉장히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명료한 사고를 위한 훈련 방법은 참을성 없이 형식 기호를 도입하는 것에 있지 않고, 밀도 높은 텍스트들을 자주 접하면서 문장들의 의미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그리는 것에 있어요.
뭐랄까 분석철학은 젊은이들이 철학 입문 과정에서 대륙 텍스트들의 휘황찬란한 어휘들에 질리고 토가나와 손을 댔다가, 결국 나이 먹어가면서 언어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되면서 대륙적 텍스트에 손을 대면서 버려지겠죠. 전문 철학자가 아니고서야 그들의 방법으로 과정으로써의 철학의 참맛을 모두 버리는건 바보짓인거 같아요
희랍 철학을 공부할 때는 과거 그리스 철학도가 된 것 처럼 미신과 우상들, 그리고 신전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우주의 이치를 배워가는 심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칸트 선생의 글을 읽을 때는 맑고 정결한 마음으로 공원 산책 하듯이 이성 자체에 대해 사유하는 이런 몰입은 형식 기호를 도입해 언어의 다층적 면모를 인위적 틀에 끼워맞춤과 동시에 박살나버립니다
한마디로 낭만도 없고 통찰도 없어요. 저는 어느날 생각해보다가 활동으로서의 철학 만큼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철학의 기능을 오로지 명증한 논증으로만 생각하며 그 위안을 형식 기호들 속에 파묻어버리는 것은 실존적 자살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냐면 모든 철학적 주장은 반증 가능하며 정답이지 않지만요 그런 주장들을 산출해내는 우리의 몰입, 사유, 철학함 이것은 절대 포기 못하는 낭만 그 자체인 것이니까요.
이야 님은 정말 최고다! 예, 문학과 예술의 면모로서 철학함! 그게 진짜 살아있는, 살아가는 공부죠. 앞서 제가 인문학의 부질없음을 말하면서 공부와 학문을 분리하여 비문의 늪으로 빠지고 말았는 데, 그걸 수습하려는 와중에 님의 댓글이 올라와서 그걸로 저의 변명을 갈음하겠습니다. 곧, 님은 제가 하고픈 말을 한 발 앞서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고픈 말이 많은데, 자다 깼고, 아직 술이 덜 깨어서 일단은 잘게요. 님 말씀대로 전기 비트겐슈타인tractatus과 후기 비트겐슈타인philosophische..note's을 나누는 기준은 비트겐슈타인의 심적 포즈의 변화에 근거해요.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면, 어제 나와 오늘 나의 제스처gesture는 다르다는 거죠. 님은 정말로 멋진 사람입니다.
예, 정말로 철학은 철학함이 전부인 것. 나는 철학을 하고 있다는 태도, 습관, 그런 부단한 활동이 전부인 것. 그러니까 철학은 여타의 직업인이 행하는 일상과 다름없어야 하는 것. 문학인이 시와 소설을 쓰듯 철학을 하는 것. 노가다꾼이 못질을 하고 공구리를 치듯 성근 언어의 세계를 촘촘히 메우는 것. 님은 정말로 통찰력의 끝을 보여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진짜로 잘게요. 너무 신나서 잠도 오지 않아요. 116님 최고!
♥+116님께 https://youtube.com/watch?v=fRMf3wKBCPo&si=fpTVuLLGhFdveupS
고독사님의 이런 표현력이 그리웠네요. '성근 언어의 세계를 촘촘히 매운다'! 이것은 곧 사유의 구멍을 메운다는 것이고 세계를 표상하는 카메라 렌즈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것. 새로운 사건, 사실, 사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사건, 사실, 사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 더 엄밀히 말해 새로운 개념틀과 그것의 적용을 배우는 과정, 그것이 철학함.
그러기에 수동적인 측면이 있고 그러기에 철학의 늪에 빠진다면 우리는 식물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러나 카메라 렌즈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내가 가야 할 길도 더 잘 보인다는 것! 그럼 카메라가 아닌 다른 도구를 집어 길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일테죠. 아니 어쩌면, 지금 서 있는 바로 이 길이 너무 마음에 든다면 그냥 주저앉아 렌즈를 더 깎아 멋진 사진을 담
는 삶도 나쁘지 않겠죠!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위안이 되는 그것
햄! 반가워요!
반가워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