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뭐길래 정치판도 아니고 서로를 이러이 헐뜯으며 증오하나? 이 물음은 두 가지의 곁물음이 뻗어나온다. 철학은 본디 정치판에서 탄생한 게 아닌가? 또는 철학, 곧 사유의 싸움(인정투쟁)은 항상 정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철학(이때의 철학은 오로지 필로소피, 나는 그 외의 철학을 모릅니다)은 플라톤의 주석이라고 화이트헤드가 말했을 때 비트겐슈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죠. 훗날, 비트겐슈타인의 제자 하나가 화이트헤드의 저 말을 가져와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비트겐슈타인 이전까지의 철학을 가리킨다" 라고 한 번 꼬죠.(사실은 몹시도 비틀어져 한 번 더배배꼬은 겁니다만.)
여기서 그칠 수가 없죠. 들뢰즈는 비트겐슈타인을 찬양하는 제자들과 (실은)비트겐슈타인을 향해 "진지함을 멈춘 나르시시스트, 철학의 파괴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최근이라고, 국내 사정이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갈수록 사정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조중걸은 강단의 철학자를 씹고, 강유원은 조중걸을 씹으며 또 강신주를 씹죠. 그러면 김진석과 친한 몇몇이 강유원을 씹습니다. 점잖은 강단철학자들은 강유원과 투쟁하는 제자들을 뒤에서 응원하며 옅은 미소를 짓죠.
이런 지경이니 최근에는 대놓고 소피스트sophistes의 부활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나는 중입니다. 서구의 추세가 아니라 국내 사정도 비슷해요. 어차피 '서양철학'의 한 세계 아닙니까. 제문화 중에서 정치사회적인 것이 가장 전파력이 크고 오래 갑니다. 사실 소피스트도 오늘날 오해하는 그런 궤변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당대의 엄연한 정치권력자들이었고 뛰어난 현자(소리를 듣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잦은 전쟁과 불안한 시대의 반발적 원인으로서 탄생한 플라톤의 본체론적 철학(실재론)의 부흥으로 인해(특히 제국의 완성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지로 인해서) 오늘까지의 불명예를 얻은 거지요.
지금 여기 오늘의 우리도 겉으로는 다양성과 개성을 입에 담으며 뉴진스와 로제의 아파트에 관해서 대화를 주고 받지만 속으로는 윤석열, 이재명 따위를 향한 응원과 원망을 더 키워 나가죠. 진짜로는 혁명을 말하고 싶지만 그건 민주사회에서 반칙이니까.
ㅡ일단 여기까지.(실은 제가 지금 몹시 아픕니다. 몸살 증세가 악화하여 담결림 증상이 상체 구석구석에 나타나고 있어요. 아파서 자다 깬 겁니다.)
모든 철학(이때의 철학은 오로지 필로소피, 나는 그 외의 철학을 모릅니다)은 플라톤의 주석이라고 화이트헤드가 말했을 때 비트겐슈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죠. 훗날, 비트겐슈타인의 제자 하나가 화이트헤드의 저 말을 가져와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비트겐슈타인 이전까지의 철학을 가리킨다" 라고 한 번 꼬죠.(사실은 몹시도 비틀어져 한 번 더배배꼬은 겁니다만.)
여기서 그칠 수가 없죠. 들뢰즈는 비트겐슈타인을 찬양하는 제자들과 (실은)비트겐슈타인을 향해 "진지함을 멈춘 나르시시스트, 철학의 파괴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최근이라고, 국내 사정이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갈수록 사정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조중걸은 강단의 철학자를 씹고, 강유원은 조중걸을 씹으며 또 강신주를 씹죠. 그러면 김진석과 친한 몇몇이 강유원을 씹습니다. 점잖은 강단철학자들은 강유원과 투쟁하는 제자들을 뒤에서 응원하며 옅은 미소를 짓죠.
이런 지경이니 최근에는 대놓고 소피스트sophistes의 부활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나는 중입니다. 서구의 추세가 아니라 국내 사정도 비슷해요. 어차피 '서양철학'의 한 세계 아닙니까. 제문화 중에서 정치사회적인 것이 가장 전파력이 크고 오래 갑니다. 사실 소피스트도 오늘날 오해하는 그런 궤변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당대의 엄연한 정치권력자들이었고 뛰어난 현자(소리를 듣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잦은 전쟁과 불안한 시대의 반발적 원인으로서 탄생한 플라톤의 본체론적 철학(실재론)의 부흥으로 인해(특히 제국의 완성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지로 인해서) 오늘까지의 불명예를 얻은 거지요.
지금 여기 오늘의 우리도 겉으로는 다양성과 개성을 입에 담으며 뉴진스와 로제의 아파트에 관해서 대화를 주고 받지만 속으로는 윤석열, 이재명 따위를 향한 응원과 원망을 더 키워 나가죠. 진짜로는 혁명을 말하고 싶지만 그건 민주사회에서 반칙이니까.
ㅡ일단 여기까지.(실은 제가 지금 몹시 아픕니다. 몸살 증세가 악화하여 담결림 증상이 상체 구석구석에 나타나고 있어요. 아파서 자다 깬 겁니다.)
소주 한잔하고 계속 쓰든지, 아님 다음에 이어서 2장을 쓸게요.
꿈에 고향이 보였다. 내게는 애인이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이목구비는 평범했다.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애교가 많았다. 정이 많은 그녀는 남몰래 지갑을 열어 가난한 내 아버지에게 용돈을 찔러 주었다. 어머니는 그걸 알아챈 모양이다. 항상 굳은 표정의 어머니가 웃는다. 여동생도 웃는다. 아버지는 나의 애인에게 받은 용돈을 세며 웃었다 말았다 한다.
그녀도 웃는다. 까르르 참 예쁘게도 웃는다. 어머니는 집안에 복덩이가 굴러들어왔다고 나를 칭찬한다. 그러면서 복덩이인 나의 애인에게 나물무침을 건넨다. 또 진미채 볶음을 젓가락으로 집어 그녀의 밥공기 위에 올린다. 우리는 지금 추어탕을 먹고 있다. 나의 애인은 추어탕이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언니는 무얼 좋아해? 라고 동생이 나의 애인에게 말한 듯하다. 그녀는 짬뽕을 좋아해요, 라고 말한 것 같다. 동생이 내게 말하기를 '신신반점으로 가 오빠. 바로 요앞이잖아!'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와 나의 애인은 고향집 초가지붕 아래 마당에서 추어탕을 먹다가 신작로로 나온 게 아닌가.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불러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여긴 내 고향이니까
잠시만 기다려 줄래?(내가 반드시 너를 택시에 태워서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짬뽕집에 데려다 줄 거야!) '알았어'라고 그녀는 대꾸했던가? 택시를 잡아서 오니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애인이 사라졌다.
나의 애인이 사라졌다. 나는 사라진 그녀를 찾아나선다. 고향에서 나의 애인을 꼬실 만한 사람은 우리집 사립문 밖 흙담길을 되돌아서 뒷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기왓집 아들 준규밖에 없다. 나는 서둘러 준규네 집으로 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준규는 경북대를 다녔고 그의 형 준수는 서울대를 다니다가 휴학 중이다. 나의 애인이 그 집에 있었다.
그녀는 입고 있던 하얀 원피스를 벗은 채 흰색 나시(민소매)에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에는 미처 내가 몰랐던 요란한 무늬의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이미 그녀는 내가 알던 나의 애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가장 예쁜 여자인 해린_newjeans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준수 준규 형제에게 내 애인을 돌려달라고 떼를 썼다. 통할 리 있는가! 고함치고 가슴을 치다치다 정말로 멱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었어도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의 애인은 내게 '오빠도 같이 즐기자'라고 했다.
준규네 마당에서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데 형이 나를 붙잡았다. '니 마음 안다, 그란데 지금은 먼저 가야할 데가 있다. 일나그라.' 애인도 중요하지만 형의 말이 가리키는 곳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듯하다. 나의 할머니는 한국 나이로 99세다.
몸을 형을 따라가면서 마음은 여전히 애인에게 머물러 있었다. 형을 따라갔는데 앞서가던 형은 보이지 않고 나는 집안 아재들을 따라서 대나무를 베고 엮으며 가마와 깃대를 만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재가 말했다. '이거 아인나. 세상에서 가장 큰 깃이고 가만기라!' 아재는 내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내였다. 그런데 여기 상갓집은 누구의 집인가?
조중걸 강유원 강신주 김진석 들의 설왕설래를 알려면 무슨 책을 보아야 할지
조중걸, 강유원 씨는 인터넷 상의 마주침이었고(강유원 씨와는 나름의 인연이 작지 않습니다), 강신주 씨의 출판물 한 권을 제법 진지하게 읽은 경험이 있습니다만, 그리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김진석 씨의 작품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굳이 읽으려면 '소외에서 소내로'를 꼽습니다.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면 압니다!
글쎄 뭐 자세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습니다만, 남의 글 읽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은 없는 사람들 아닌가요?
자기만의 철학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더군다나 한국은 철학의 식민지입니다.
윤노빈 박동환?
님, 한자가 종말이 맞나요? 진심으로 묻는 겁니다. 눈도 나쁘지만 한자어가 낯설어요. 저도 나름 한자어를 많이 기억한다고 여겼는 데.
한자가 종말이라니 무슨 뜻일지
노트북 정도로 디시를 하시는 거 같습니다만, 제가노트북으로하거든요, 컨트롤 더하기 + 이걸 하시면 글자가 커진다는 걸 모르시는지 몰라요
윤노빈 씨는 일종의 철학적 신화예요. 소위 좌파진보 인사들의 통과의례랄까. 저도 그 사람의 신생철학을 읽었습니다. 함석헌 따위의 민족 동학과 변질된 헤겔의 주체이론이 돋보이더군요. 돌이켜보면 저의 실제적 삶과는 너무나 괴리된 말씀들이었습니다.
데 이거 좀 헷갈리긴 하지요 여겼는 데->여겼는데
그 사람은 과감한 실천을 하였는데요? 월북.
그럼 님의 한자가 한국말로 뭔가요? 낯이 익어서요.
이두 식으로 쓴 거죠 차자표기.
예, 월북하였음으로 영웅이 된 거죠. 김지하 씨가 많이 띄워준 걸로 압니다.
영웅이라니요. 실천을 하였다니까요. 한 가족이 한 철학자가.
그래 님은 어떤 실제적 삶이신 겁니까
이런 말은 좀 성급한데, 전라도 문인들만의 끌어주기 키워주기가 있어요. 윤노빈은 전라도 사람이 아니지만, 김지하가 끌어주고 몇 문예비평가들에 의해서 더 유명해졌지요. 본디 586 이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부딪히는 대로 사는 거죠. 그냥 살아왔던 겁니다.
586이요? 윤노빈 나이를 아세요?
가족을 데리고 월북을 했다는 게 자랑스러운 실천은 아닙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실천은 입 밖으로 내면 안 되지요.
부딪히는 대로 산다면 그건 노숙자쯤이란 말로 읽히고 주체적으로 살려면 부딪치는 대로 사셔야죠
남들 못 하는 일을 했는데 그게 과감한 실천이지요 그리고 윤노빈만의 이론-실천이고요,
에이 전라도 빨갱이씨발새끼야 윤노빈이가 42년생 김지하 친구라고! 니들 논리대로 586의 실천이 있으려면 그 이전의 이론적 토대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김지하는 한때 한국586의 마르쿠제였다고 이돌대가리새끼야!
그래 고렇게 나올 줄 알았다. 술이나 처먹는 새끼 하하
신념, 나아가 이념을 좋아하면 종교인이 되거나 정치인이 되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철학은 님이 말하는 철학과 상당한 괴리가 있습니다. 가세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philosophy&no=463215&page=2 고독사 행님, 이분 상대 안하셔도 됩니다
월북을 한 게 왜 자랑스러운 게 아니님마? 그런 실천 자체가 대단한 거짐마. 아무도 못 하던 거잖아? 남북은 아래서 사나 위에서 사나 내 마음대로이다 이런 정신 좋잖아?
내가ㅡ고래고렇게 나오기를 니가 바랐던 거지 쓰벌노마 오메 징한거!
그래 이게 내 생각이다. 누구나 죽게 되어 있고 유영철 같은 사람은 단지 아주 조금 일찍들 가게 이른바 죽게 한 사람일 뿐 重力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고생인데 저런 사람은 오히려 구세주라 보려면 볼 수가 있는 거야
전라도전라도 그러더니 지가 전라돈가 보네. 하하
175님, 반갑습니다!
유영철을 옹호하다니, 세상에
175/ 저도 이십대 때에 빨갱이물이 들어서 저 분처럼 나댔어요. 다시 읽어 보니 볼 만합니다.
116/ 대한민국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 씨도 유영철의 '인간적 아름다움(?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을 입에 담지요.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참 많이 살고 있습니다. 선말*(이두식 풀이로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모양) 님은 굉장히 똑똑한 분이에요. 허나, 아무 쓸모없는 똑똑함이겠죠.
난 陸拾代 中半이야
中半-> 中盤
나는존경하는철학자가없습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겁니다
전혀요.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앵무새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사람이 앵무새일 리는 없겠지만, 대개의 사람, 일상인은 흡사 앵무새의 삶metaphor을 산다 하더라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저 역시 그러하며, 인간의 앵무새 노릇은 거의 운명에 가까운 거라고 저의 경험칙대로 발설합니다.
껌을 좋아하겠구만 질겅질겅
586 세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번으로 대학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50대의 나이를 가진 세대를 일컫는 말로, 과거 인텔에서 만든 개인용 컴퓨터용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상표명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음색깡패 | 2016-12-15
연세대 교수 박동환 선생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강단 철학자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x 하하 그는 이 x로 뭔가 나타내는데 나는 한자로 쓴다는 거지
박동환 선생이 말하는 대문자X는 우선 '존재'라고 보면 돼요. 그러니 소문자x는 당연하게 '존재자'가 되지요. 그런데 이 구분이 사실은 모호하단 겁니다. 우주적, 곧 시공간 차원에서 이 둘은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지요. 여러 철학자들처럼 선생님께서는 필연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 필연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즉 개인의 차원이 온 우주와 연결된 그 것. 그것은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뿐입니다.
존재/존재자, 하이데거. 말장난 맙시다.
저번에 한 번 서울대 출신의 철학도에게 제가 이런 식(존재X는 존재자x와 다르거나 같다는)으로 말했더니 나보고 틀렸대요.
박동환 선생님이 생존하신다면 구순 가까운 연세이신데, 더는 철학할 수 없는 육신으로 생존의 시간만 연장한다는 게 선생님 살아생전에 대한 모욕은 아닐런지ᆢ.
-> 아닐는지
아닐는지, 라고 써야 하나요?
예 뭐.
175, 116/ 거듭 읽어 보는데, 한자어 저 분은 저보다 윗줄입니다. 온갖 이론에 언어와 낱말에 중독된 무시무시한 인간이지요. 그런데 저런 군계일학의 카리스마를 좇진 마세요. 아무 것도 배울게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옥스퍼드 영한사전이나 옥편을 필사하세요. 재야엔 여전히 기인들이 넘쳐나는군요.
튕겨서 다시 왔더니 닉이 사라져 있었군요. 저는 그 고독사 병신이 맞습니다.
왜 배울 수 없는가? 1. 저 한자어 님의 국문 문법, 한자어, (아마도) 영문법이나 제3 외국어를 이제와 좇아간다는 건 그야말로 시간(인생) 낭비다.
2. 여러 가지 언어를 습득했다는 것과 사유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여러 가지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여러 세계의 문제가 촉발될 터이고, 그런 "여러 세계의 인물(사상)로부터 나의 사유는 확장된다(가라타니 고진)." 하지만 나는 당장 나의 문제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시발 온몸 구석구석 안 쑤시는 데가 없는데 간만에 기인을 만나서 정신이 번쩍 드네. 하, 나이 오십을 먹고도 나는 아직 어린아이이구나. 죽음은 멀지 않고 언제 저것들을 다 배울까. 학생부군신위.
하 시발, 나는 죽기 직전에도 철학따먹기나 하고 있을 거야. 죽음이 머+ㄹ지않았다. https://youtube.com/watch?v=E0wvlHCh3T0&si=m2DzqXtv2gJEri7o
봤죠? 우리는 평소 중국인을 폄하하는데, 그들의 문자세계로부터 종속된 우리의 언어체계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이즈음 175나 116이 나타나서 "오빠, 여기는 한국이야!" 라고 해주었으면.
저 한자어 님의 능수능란 한자 앞에서 우리의 사유는 멈추었습니다. ㅠㅜ
강유원이의 말대로 사유는 결코 사전을 이길 수 없는가?
니미시바 고작 짱꿰 문자에도 주눅드는 새키들이 비트겐슈타인을 말해? 하.
한자어 맨끝 님께 드립니다. https://youtube.com/watch?v=zJwtPKB-9Cc&si=Ukh8o2sd5R7MNYsU
사랑하는 도반(친구)이여 나는 네게 항샹 침묵할 것을 충고했다. 그런데 그 금기를 말 뱉은 자 내가 먼저 깨트리고 내가 먼저 사죄하는구나. 죄송하다 도반이여. https://youtube.com/watch?v=SGt3I211xdM&si=SMVg0ei4WlKOdr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