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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불안하고 어수선하다. 개인이 아닌 사회에도 절망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바로 지금이 '절망사회'일 터. 오랜 이 사회적 절망은 도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망상을 해보기로 한다. 절망의 한국사회가 앞으로는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이지만, 나의 망상이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에게 가닿을 일은 없다.



1. 대통령의 탄핵, 무엇이 문제인가?

철갤의 몇몇 동지들은 내가 윤석열 씨를 얼마나 혐오하고 하찮게 여겼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테다. 나는 내가 뽑은 그를 애시당초 훌륭한 인물로 여겨본 일이 없다. 내가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을 뽑은 까닭은 딱 두 가지이다. 첫째, 문재인 씨의 실정들을 심판해 줄 것. 둘째, 부도덕과 위법한 행동이 몸에 배인 이재명 씨는 안 된다는 것.

윤석열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나는 '윤석열이 문재인을 조져줄 거야'라는 나의 작은 기대가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는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에 관한 개연성의 장면 낱낱은 기회있을 때 말하기로 하자.

문재인 씨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박근혜의 실정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구태가 미워서 문재인 씨에게 한 표를 던진 사람들의 후회와 망연자실이 이해되고 용납되는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갔다. 하지만 후회란 건 항상 반성의 시간들을 초과해 버린 상태가 아닌가. 망연자실하면서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윤석열 부부가 더 이상은 사고치지 않기를 조바심으로 버티었다. 에고가 뇌내를 지배하는 검은 머리 짐승은 고쳐지지 않는다. 짐승은 본디 자신의 습관을 통해서 세계를 확신해 가는 존재다. 그리하여 두 짐승 부부는 결국 오늘의 탄핵 시국 사태를 맞았다.

이제 문제는 윤석열이라는 아주 둔한 짐승의 탄핵에 따른 문제와 그 이후의 수습인 듯하다. 무슨 말이냐면 현명한 인간인 우리가 왜 항상 이런 짐승들의 권력 아래 놓여서 이런 부조리를 경험하냐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모멸감과 자괴심의 문제이다. 이제 와서 내 잘못은 없다고 자만하지 마라. 그것이 민주제라는 정치사회적 체제의 문제이든 인간의 타고난 욕망의 실현장소로서 자본제(여기서는 관계의 문제가 더 부각된다)의 문제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오늘 이 모든 사태에 가담한 동조자 내지 방관자이다.

그런데 우리 개인에게 저 케케묵은 인류의 체계(혹은 체제system)를 바룰 수 있는 권한이 애시당초 주어졌던가. 맞다. 한 사회의 정점에 있는 권력자(기득권)로서 민주제와 자본제의 특권을 향유하지 않는 대다수의 인민은 개인 앞에 주어진 당장의 생존과 법의 폭력에 대처하기도 바쁘다.

법이란 무엇인가. 아직까지도 정확한 법이 있어 현명한 법률가를 통해서 법치가 실현되고 있다 믿는가? 그렇게 믿는다면 바로 너야말로 민주제의 적이다. 사회체제가 양성한 인큐베이터 속의 생명(너는 생명이기는 한가!), 요즘 말로 하면 모든 가치가 소진된 논non 플레이어player 캐릭터character는 이천 오백 년 역사 이래로 철학이 가장 혐오하고 증오하는 비존재적 대상이다. 다시 말한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항상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그 때의 철학광장agora이 현실법보다 위에서 작동했고 그게 곧 현실정치의 토대였기 때문이다. 거듭, 고대 그리스 민주정 당대의 소피스트와 또 그와 맞선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오늘 날 말하는 서울법대 출신들의 사법체계와 아무 상관없다. 그건 항상 시민의 천부적(타고난) 권리에 관한 문제였다!

"한국은 반드시 망하고, 그 멸망의 까닭은 판검사와 곧 법치 때문이다." 라는 나의 오랜 주장을 기억해 내자. 법의 모순(성)을 잘 아는 나는 그런데도 항상 '법관(법률가)과 법치의 부조리함'을 먼저 입에 담는다. 무슨 까닭인가? 이제부터의 내 말은 우리가 좀 더 솔직해야 이해되는 말이다. 즉, 지금부터의 내 말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성숙할래야 도저히 성숙하기 어려운) 우리 이성에게 호소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의 경험, 곧 절망과 억울함 따위의 감성(경험세계)에 호소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