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씨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나 그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는 소시오패스라고 장담하지는 맙시다. 윤은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에 도취되었거나 혹은 그보다 심각하게 퇴임 후의 염려에 정신이 마비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이코나 소시오보다 그런 일상인이 더 많이 살고 있는 듯합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05:45:00
답글
윤가는 알콜중독자 같어
戰端(222.117)2024-12-12 06:46:00
답글
저도 알콜중독자입니다. 알콜중독자라고 해서 다들 윤석열 씨처럼 살지는 않죠. 술보다 무서운 게 아집이고 권위의식이며 권력욕, 폭력성 같은 겁니다. 술은 그걸 더욱 더 부추기죠.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것과 더불어서. 아침은 드셨습니까? 저는 지금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술사러 갑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09:04:00
그래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이런 게 한 법어[국룰]이지요 - 너 몇살이야?
戰端(222.117)2024-12-12 05:00:00
죄라는 개념 자체가 우주 선악 이분법 따리 망상->. 그런거에 고통받는거 자체가 망상->. 인간의 조건이 망상
rfi(59.7)2024-12-12 05:14:00
답글
양육조건에서 엄마의 역할이 선악을 젖절히 혼합시키는거임. 부모의 gaze 눈빛이 중요함 부모가 역할을 못하면 선/악 사이에 강력한 간극이 발생하고 선악 혼합에 실패함.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감. 이런부류는 남을 볼떄도 이상화된 신/ 좆같은놈 딱 두가지 방법으로밖에 볼수없고, 웃긴건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거.
rfi(59.7)2024-12-12 05:18:00
답글
유아가 자기한테 젖을 주던 엄마가 사라짐 -> 저건 악이다! 엄마가 돌아옴 (저건 선이다) 시간이 흐르면 유아는 엄마가 현실을 사는 존재라는걸 자각하고 선과 악에 대한 혼합적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함( 엄마가 돌아올떄도 있고 안돌아올떄도 있구나 이건 내가 타협해야 하는 현실이구나) 근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선악이분법이 내재된 신념이 됨
rfi(59.7)2024-12-12 05:18:00
답글
이 신념은 타인/자신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좆같은 신념이라 현실과 대치할떄마다 약-망상장애를 일으킴
rfi(59.7)2024-12-12 05:19:00
답글
자기에 대해서 선악이분법이 작용될떄는 죄책감으로 타인에게 작용할떄는 엄청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공격성으로 나타남
rfi(59.7)2024-12-12 05:20:00
답글
정신분석은 항상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흐흐
고독사(125.188)2024-12-12 05:48:00
그 까닭은 선험적인 거라서 칸트가 잘 알지 싶은데, 아무튼 도덕 또한 일종의 법칙이죠. 죄책감은 주로 부도덕이나 죄에 의해서 생겨나죠. 도덕이란 건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이것조차 입법하지 않고 살면 윗님들 말씀대로 사회생활(인간의 관계 맺음)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어요. 내가 불편하게 되거든요. 실험해 보십시오.
고독사(125.188)2024-12-12 05:57:00
죄책감 없는 무한자유는 '한중월야 씨'의 웹소설 '천마(하늘에 이른 마도:인)' 시리즈에나 나오는 허무맹랑한 소리입니다. 그마저도 완전한 자유에 다다르지는 못하지요. 왜냐하면 그는 천지를 가르는 그 가공할 힘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서 해탈하지 못하거든요. 죽지 않는 한 인간에게서 진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도리어 칸트의 도덕적 자율론이나
고독사(125.188)2024-12-12 06:31:00
답글
실천적 자유에 의지해 보는 것이 더 수월한 삶의 방법일 듯합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06:32:00
요즘 불한당, 깡패들이 유튜브에 나와서 "힘(피지컬 또는 금력)이 곧 정의, 내 말이 곧 법"이라며 설쳐대는데, 걔들도 속으로는 언제 뒈질까 싶어서 벌벌 떨고 삽니다. 설령 트럼프라 한들 더 큰 힘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무한자유와 권능을 맘껏 외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하면 대개는 허세입니다. 인간은 님의 생각만큼 그리 위대하거나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06:42:00
원래는 선과악은 없음. 인간이 분별을 통해 선과악을 만들어낸거지. 단 햇빛에 있는 식물과 햇빛이 없이 그늘진 곳에 있는 식물이 성장하는 상태가 다르듯이 단지 악을 추구하는 자도 그늘진 곳을 벗어나기위한 자기만의 생존성향임.
철갤러 1(27.119)2024-12-12 06:47:00
답글
그렇다면 그게 그 사람의 선이고 아름다움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영원히 응달에 살아야죠. 양지로 나오는 순간 타자와 충돌하게 됩니다. 충돌하는 순간 죄나 부도덕이 발생하죠. 자신의 그늘진 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타인의 일조권을 빼앗아서는 안 되죠. 세상은 넓고 양달은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저 타고난 권력의지 때문에 타인의 볕을 죄다 뺏는 거라면, ᆢ
고독사(125.188)2024-12-12 06:57:00
답글
잔뜩 써놓았는데 디시가 또 훼방을 놓네요. 편할 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렇다고 님이 설마 사탄의 권능(악의 권능)을 가졌다고 보이지는 않으니까. 애시당초 선은 없는 거니까 하면서 너무 많이 죽이고 살진 마십시오.
고독사(125.188)2024-12-12 07:06:00
답글
ㄴㄴ 뭔가 나쁜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아닌데 예전에 어떤 유동이 인간의 조건은 죄책감이라고 한 말이 기억나서 궁금해서 그랬어요
익명(kdh000410)2024-12-12 13:59:00
답글
인간의 조건(아마도 도덕적 조건: 여기서는 윤리라고 해도 상관 없음)이 죄책감 또는 죄의식이라면 그 유동님은 서양철학을 공부한 분이 맞습니다. 칸트의 도덕관도 예수의 인간구원에 따른 원죄의식(부채의식)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 분 말씀대로 어쩌면 그건 (초기)중세 이후 서양정신의 근간입니다. 그러니까 지고지순의 도덕이 먼저 있었던 게 아니죠. 플라톤과
고독사(125.188)2024-12-12 14:16:00
답글
다릅니다. 부도덕과 죄가 도덕을 일깨웁니다. 이 지점에서는 칸트도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14:17:00
답글
※이거 항상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라서 첨부하는 말인데, 플라톤의 이데아는 페노메논 너머의 누메논 뭐 그런 식이 아닙니다. 우시아ousia가 아니에요. 우시아 이전의, 아니아니 우시아를 우시아답게 드러내는 이성 그 자체입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14:25:00
답글
※1.1) 그러니까 이데아는 여럿으로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하나, 진짜인 하나입니다. 그건 저 멀리 어떤 공간을 짐작하는 말이 아니라 시원으로서 하나입니다. 예컨대 성경에서 말하는 "빛으로서(의) 모든 것." 좀 어렵죠? 남들처럼 설명하면 삼각형의 원형은 저 먼데 따로이 있지만, 그게 사각형ᆢ의자ᆢ사과의 원형과 한데 있어요. 어디에? 이성의 빛 속에.
고독사(125.188)2024-12-12 14:32:00
답글
플라톤의 존재론은 무조건하고 파르메니데스의 일자to hen를 염두에 두고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 것의 실상이되 그것은 오직 하나로서의 빛, 곧 이성logos." 이렇게 자꾸 생각하다 보면 "현상으로서의 삼각형 너머 형상으로서 삼각형" 따위의 아리송한 말이 도리어 체계잡힐 거예요.
고독사(125.188)2024-12-12 14:41:00
답글
※1.2. 일자는 전체가 맞아요.
고독사(125.188)2024-12-12 14:48:00
답글
*1.2.1. "하나로서의 전체."
고독사(125.188)2024-12-12 14:49:00
답글
이 지점에서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입장과도 참 많이 닮았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특히 니체를 공부한 사람들의 말과 달리 플라톤은 한때 헤라클레이토스의 광신도였습니다.
고독사(125.188)2024-12-12 14:57:00
답글
일자이자 로고스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고독사(125.188)2024-12-12 14:59:00
답글
뻘글로 보일 수 있는 질문에 이렇게까지 성의있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동양철학에서는 무엇이 인간의 판단기준으로 보는지 귀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서양철학에서는 죄책감이라면 동양철학에서는 무엇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교에서 인의예지신 강조하는 건 들어봤어도 ....
익명(kdh000410)2024-12-13 00:45:00
답글
저는 동양철학이 뭔지 모릅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릅니다. 읽은 거라곤 남들 다 읽는 교양수준의 논어와 맹자, 도덕경, 제물론 따위죠. 그리고 제가 말한 서양정신의 근간으로서 원죄의식이란 것도 다수 학자들의 주장일 뿐, 그게 진리(또는 사실)라거나 인간문화(=사회)의 척도는 아니에요. 플라톤이 운 좋았던 건지 기독교 교부철학자들이 플라톤의 행운을
고독사(106.102)2024-12-14 19:44:00
답글
이용한 건지, 진위를 낱낱이 따지기엔 빌어먹을 시간이 너무나 지나와 버렸지만, 플라톤이 기독교와 만나서 서양정신의 근간이 된 건 정말로 운빨입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의 대화편은 대화체라는 모호함, 고대 언어, 개념어의 이중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 조건은 다 갖추었죠.
고독사(106.102)2024-12-14 19:50:00
답글
시문학을 공부하는 서양정신의 하나로서 그리스의 비극정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시(극작)와 플라톤의 이데아는 우선 당대 정치권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가령 고대 그리스 당대의 시인(극작가)은 말 그대로 광대였습니다. 반면 변론은 귀족(시민)의 특권이었지요. 또 플라톤 당대는 수많은 국지전과ㅡ그들만의ㅡ세계대전을 치르던 와중이라서 나름
고독사(106.102)2024-12-14 19:58:00
답글
문명의 충돌기였습니다. 하여 소아시아로부터 에게해를 거쳐 지중해 멀리 이집트까지의 문화교류가 당대 지식인의 상식이었어요. 그러니까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개념은 밀레토스의 헤라클레이토스와 시칠리의 파르메니데스, 거기에 피타고라스까지 짬뽕된 기의signifie의 묘지, 아니 신전입니다.
고독사(106.102)2024-12-14 20:07:00
답글
플라톤은 이데아에는 헨(1), 누스, 에이도스, 우시아, 로고스 등등 세상 온갖 위대한 낱말뜻이 죄다 담겨 있습니다. 예, 플라톤은 그 어지러움을 잘 알면서 사용했습니다. 플라톤은 칸트처럼 정확한 개념(어)의 구축이라는 진지함 따위는 없었습니다. 플라톤의 진지함은 오직 '세상 개조, 인류 개조'라는 사상가적 진지함이었습니다. 플라톤 역시 소피스트와는
고독사(106.102)2024-12-14 20:17:00
답글
다른 정치적 야심가였습니다. 독일 근대 고전어문학자인 헤르만 딜츠가 그의 제자에 크란츠에게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 선집을 엮을 때 항상 당부한 게 "플라톤의 정치적 시선을 빼고 번역하라"였습니다.
고독사(106.102)2024-12-14 20:21:00
답글
대충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무리 단골술집이라고 해도 혼자 술상을 앞에 놓고 핸드폰 타자를 찍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고독사(106.102)2024-12-14 20:24:00
답글
※아! 그리고 중요한 거.
하나는 전체라고 했을 때, 이 전체라는 낱말은 항상 '동일성'을 가리키거나 지향한다는 건 잘 아시죠?
죄책감이 없으면 사이코패스 같은 이들로 넘쳐나겠지요 윤석열 같은 괴물 천지가 된다고요
윤석열 씨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나 그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는 소시오패스라고 장담하지는 맙시다. 윤은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에 도취되었거나 혹은 그보다 심각하게 퇴임 후의 염려에 정신이 마비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이코나 소시오보다 그런 일상인이 더 많이 살고 있는 듯합니다.
윤가는 알콜중독자 같어
저도 알콜중독자입니다. 알콜중독자라고 해서 다들 윤석열 씨처럼 살지는 않죠. 술보다 무서운 게 아집이고 권위의식이며 권력욕, 폭력성 같은 겁니다. 술은 그걸 더욱 더 부추기죠.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것과 더불어서. 아침은 드셨습니까? 저는 지금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술사러 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이런 게 한 법어[국룰]이지요 - 너 몇살이야?
죄라는 개념 자체가 우주 선악 이분법 따리 망상->. 그런거에 고통받는거 자체가 망상->. 인간의 조건이 망상
양육조건에서 엄마의 역할이 선악을 젖절히 혼합시키는거임. 부모의 gaze 눈빛이 중요함 부모가 역할을 못하면 선/악 사이에 강력한 간극이 발생하고 선악 혼합에 실패함.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감. 이런부류는 남을 볼떄도 이상화된 신/ 좆같은놈 딱 두가지 방법으로밖에 볼수없고, 웃긴건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거.
유아가 자기한테 젖을 주던 엄마가 사라짐 -> 저건 악이다! 엄마가 돌아옴 (저건 선이다) 시간이 흐르면 유아는 엄마가 현실을 사는 존재라는걸 자각하고 선과 악에 대한 혼합적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함( 엄마가 돌아올떄도 있고 안돌아올떄도 있구나 이건 내가 타협해야 하는 현실이구나) 근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선악이분법이 내재된 신념이 됨
이 신념은 타인/자신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좆같은 신념이라 현실과 대치할떄마다 약-망상장애를 일으킴
자기에 대해서 선악이분법이 작용될떄는 죄책감으로 타인에게 작용할떄는 엄청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공격성으로 나타남
정신분석은 항상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흐흐
그 까닭은 선험적인 거라서 칸트가 잘 알지 싶은데, 아무튼 도덕 또한 일종의 법칙이죠. 죄책감은 주로 부도덕이나 죄에 의해서 생겨나죠. 도덕이란 건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이것조차 입법하지 않고 살면 윗님들 말씀대로 사회생활(인간의 관계 맺음)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어요. 내가 불편하게 되거든요. 실험해 보십시오.
죄책감 없는 무한자유는 '한중월야 씨'의 웹소설 '천마(하늘에 이른 마도:인)' 시리즈에나 나오는 허무맹랑한 소리입니다. 그마저도 완전한 자유에 다다르지는 못하지요. 왜냐하면 그는 천지를 가르는 그 가공할 힘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서 해탈하지 못하거든요. 죽지 않는 한 인간에게서 진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도리어 칸트의 도덕적 자율론이나
실천적 자유에 의지해 보는 것이 더 수월한 삶의 방법일 듯합니다.
요즘 불한당, 깡패들이 유튜브에 나와서 "힘(피지컬 또는 금력)이 곧 정의, 내 말이 곧 법"이라며 설쳐대는데, 걔들도 속으로는 언제 뒈질까 싶어서 벌벌 떨고 삽니다. 설령 트럼프라 한들 더 큰 힘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무한자유와 권능을 맘껏 외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하면 대개는 허세입니다. 인간은 님의 생각만큼 그리 위대하거나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원래는 선과악은 없음. 인간이 분별을 통해 선과악을 만들어낸거지. 단 햇빛에 있는 식물과 햇빛이 없이 그늘진 곳에 있는 식물이 성장하는 상태가 다르듯이 단지 악을 추구하는 자도 그늘진 곳을 벗어나기위한 자기만의 생존성향임.
그렇다면 그게 그 사람의 선이고 아름다움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영원히 응달에 살아야죠. 양지로 나오는 순간 타자와 충돌하게 됩니다. 충돌하는 순간 죄나 부도덕이 발생하죠. 자신의 그늘진 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타인의 일조권을 빼앗아서는 안 되죠. 세상은 넓고 양달은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저 타고난 권력의지 때문에 타인의 볕을 죄다 뺏는 거라면, ᆢ
잔뜩 써놓았는데 디시가 또 훼방을 놓네요. 편할 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렇다고 님이 설마 사탄의 권능(악의 권능)을 가졌다고 보이지는 않으니까. 애시당초 선은 없는 거니까 하면서 너무 많이 죽이고 살진 마십시오.
ㄴㄴ 뭔가 나쁜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아닌데 예전에 어떤 유동이 인간의 조건은 죄책감이라고 한 말이 기억나서 궁금해서 그랬어요
인간의 조건(아마도 도덕적 조건: 여기서는 윤리라고 해도 상관 없음)이 죄책감 또는 죄의식이라면 그 유동님은 서양철학을 공부한 분이 맞습니다. 칸트의 도덕관도 예수의 인간구원에 따른 원죄의식(부채의식)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 분 말씀대로 어쩌면 그건 (초기)중세 이후 서양정신의 근간입니다. 그러니까 지고지순의 도덕이 먼저 있었던 게 아니죠. 플라톤과
다릅니다. 부도덕과 죄가 도덕을 일깨웁니다. 이 지점에서는 칸트도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이거 항상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라서 첨부하는 말인데, 플라톤의 이데아는 페노메논 너머의 누메논 뭐 그런 식이 아닙니다. 우시아ousia가 아니에요. 우시아 이전의, 아니아니 우시아를 우시아답게 드러내는 이성 그 자체입니다.
※1.1) 그러니까 이데아는 여럿으로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하나, 진짜인 하나입니다. 그건 저 멀리 어떤 공간을 짐작하는 말이 아니라 시원으로서 하나입니다. 예컨대 성경에서 말하는 "빛으로서(의) 모든 것." 좀 어렵죠? 남들처럼 설명하면 삼각형의 원형은 저 먼데 따로이 있지만, 그게 사각형ᆢ의자ᆢ사과의 원형과 한데 있어요. 어디에? 이성의 빛 속에.
플라톤의 존재론은 무조건하고 파르메니데스의 일자to hen를 염두에 두고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 것의 실상이되 그것은 오직 하나로서의 빛, 곧 이성logos." 이렇게 자꾸 생각하다 보면 "현상으로서의 삼각형 너머 형상으로서 삼각형" 따위의 아리송한 말이 도리어 체계잡힐 거예요.
※1.2. 일자는 전체가 맞아요.
*1.2.1. "하나로서의 전체."
이 지점에서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입장과도 참 많이 닮았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특히 니체를 공부한 사람들의 말과 달리 플라톤은 한때 헤라클레이토스의 광신도였습니다.
일자이자 로고스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뻘글로 보일 수 있는 질문에 이렇게까지 성의있게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동양철학에서는 무엇이 인간의 판단기준으로 보는지 귀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서양철학에서는 죄책감이라면 동양철학에서는 무엇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교에서 인의예지신 강조하는 건 들어봤어도 ....
저는 동양철학이 뭔지 모릅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릅니다. 읽은 거라곤 남들 다 읽는 교양수준의 논어와 맹자, 도덕경, 제물론 따위죠. 그리고 제가 말한 서양정신의 근간으로서 원죄의식이란 것도 다수 학자들의 주장일 뿐, 그게 진리(또는 사실)라거나 인간문화(=사회)의 척도는 아니에요. 플라톤이 운 좋았던 건지 기독교 교부철학자들이 플라톤의 행운을
이용한 건지, 진위를 낱낱이 따지기엔 빌어먹을 시간이 너무나 지나와 버렸지만, 플라톤이 기독교와 만나서 서양정신의 근간이 된 건 정말로 운빨입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의 대화편은 대화체라는 모호함, 고대 언어, 개념어의 이중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 조건은 다 갖추었죠.
시문학을 공부하는 서양정신의 하나로서 그리스의 비극정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시(극작)와 플라톤의 이데아는 우선 당대 정치권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가령 고대 그리스 당대의 시인(극작가)은 말 그대로 광대였습니다. 반면 변론은 귀족(시민)의 특권이었지요. 또 플라톤 당대는 수많은 국지전과ㅡ그들만의ㅡ세계대전을 치르던 와중이라서 나름
문명의 충돌기였습니다. 하여 소아시아로부터 에게해를 거쳐 지중해 멀리 이집트까지의 문화교류가 당대 지식인의 상식이었어요. 그러니까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개념은 밀레토스의 헤라클레이토스와 시칠리의 파르메니데스, 거기에 피타고라스까지 짬뽕된 기의signifie의 묘지, 아니 신전입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에는 헨(1), 누스, 에이도스, 우시아, 로고스 등등 세상 온갖 위대한 낱말뜻이 죄다 담겨 있습니다. 예, 플라톤은 그 어지러움을 잘 알면서 사용했습니다. 플라톤은 칸트처럼 정확한 개념(어)의 구축이라는 진지함 따위는 없었습니다. 플라톤의 진지함은 오직 '세상 개조, 인류 개조'라는 사상가적 진지함이었습니다. 플라톤 역시 소피스트와는
다른 정치적 야심가였습니다. 독일 근대 고전어문학자인 헤르만 딜츠가 그의 제자에 크란츠에게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 선집을 엮을 때 항상 당부한 게 "플라톤의 정치적 시선을 빼고 번역하라"였습니다.
대충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무리 단골술집이라고 해도 혼자 술상을 앞에 놓고 핸드폰 타자를 찍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중요한 거. 하나는 전체라고 했을 때, 이 전체라는 낱말은 항상 '동일성'을 가리키거나 지향한다는 건 잘 아시죠?
※시문학을 공부하는 v사람들이ᆢ
※※시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v말하는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