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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가 다 간다. 올해 초 나는 이종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서른 중반 쯤 들어서는 사촌 여동생 아이는 나와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난다. 그러니 아이라고 불러도 된다. 아마도 이번이 나의 세상 마지막 결혼식 참석이라고 말한 것 같다. 장차 조카들 결혼식에까지 나이 많은 미혼의 숙부가 참석할 수는 없는 법. 부조나 넉넉히 하면 그만이다.


예식이 끝나고 함께 귀가하자는 사촌형제들의 당부를 외면한 채 나는 예식장을 몰래 빠져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생각이 많은 걸음걸이였다. 결혼식이란 건 그러니까 현재 나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는 일종의 인맥 잔치이다. 친지에게 나의 성장을 자랑하고 싶으면 자주 결혼식을 올려라. 나는 결혼할 리 없으므로 덜 부끄럽겠지만, 당장 팔순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 앞으로 찾아올 문상객은 몇이나 될까. 아무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 한 사람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실패한 인생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집 앞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부모님 연갑 쯤 보이는 어른 한 분이 길을 묻는다. "여서 지산동 갈라카마 몇 번을 타마 됩니꺼?" 설마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인가 싶었지만 나는 정류장 외벽에 인쇄된 버스노선도를 찾아 읽으며 친절하게 답한다. "518번 타마 됩니더." 어른은 다시 머뭇거리며 내게 말을 건다. 거의 혼잣말 수준으로 음성이 낮고 시선이 고르지 못하다. "'하, 518ᆢ' 하필이마 번호가, 번호가 참 더럽네요." 그 뜻을 잘아는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내 눈치를 살피던 어른이 한마디 더 말을 보탠다. "518 즈그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데이. 진짜로 그기 아인데 하, 전라도새끼들."


예전 같으면 어른의 말에 나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내가 보고 듣고 읽은 것만이 사실이며 진리라고 믿었던 옛날의 나라면 나의 진리와 사실 인식에 반하는 노인어른의 저 푸념을 단순한 투정 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진다는 거다. 나는 푸념 뒤에 도사린 어른의 딱한 처지와 울분을 느꼈다. 518 버스는 좀체 오지 않았고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석 대나 놓쳤다. 노인어른의 말씀이 재밌다고 여겨졌다. 사실 나는 예식장 식당에서 밥도 먹지 않고 혼자서 소주 두 병을 급히 마시고 나왔다. 나는 취해 있었다. 모처럼 만에 만난 사람들과 사회와 거리에 몹시 취해 있던 거였다. "내가 월남전 참전용사입니다. 말이 보훈용사이지 우리는 개보다 조금 나은 취급을 받는다고 보마 됩니다. 간데 518은 당시에 광주만 살았어도 자꾸 발굴해서 보상해 줘요. 당시에 길을 지나가기만 해도 유공자가 됩니다. 하ᆢ." 이윽고 518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선다. "어르신 버스 왔심더." 고맙심데이. 어른이 내게 고마웠던 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