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는 자연계에서 비정상적이다. 자연의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따라 결국 무질서로 돌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이 무질서한 자연 속에서 관념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대응한다. 어차피 늙고 썩어 문드러질 신체를 가지고도 생명 활동(번식)을 통해 자연의 흐름에 저항하려 한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불완전한 존재다. 이 불완전함은 살아있는 동안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게 만든다. 고통이 기본값인 상태에서 가끔 찾아오는 쾌락이나 행복조차 생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종의 진통제에 불과하다.


생의 의지는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하며,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진화해왔다. 여기에는 선과 악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살아남느냐, 죽느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더 불행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선악을 따지고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의미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DNA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후세에 전달하려는 것이거나 고통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한 생명 활동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인간은 이를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인정은 타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로 인해 갈등, 즉 인정투쟁이 발생한다.


인류가 협력과 집단화를 통해 발전해온 것도 개체로서 약했기 때문이다. 서로 뜻이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자원이 풍족한데도 누구는 굶어 죽거나 서로 죽고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인류가 끝없이 진보하는 이유도, 결국 자멸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 타인의 인정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기에 끊임없이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본질적인 이유도 결국 자신을 인정해줄 존재를 찾기 위해서다. 여기서 부모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든 부응하지 못하든 이는 중요하지 않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맹목적이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사슬을 만들어 자신을 구속하고, 죽을 때까지 그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일수록 자식에게 더 집착하며, 이는 그들의 한계이자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