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삼비판서를 분명히 1회독 하였다. 그렇지만 그 책들이 잘 생각나질 않는다. 철학에세이를 적으면서 과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하여 칸트 책에 있는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칸트가 자연필연성에 대하여 적었고 나는 그 서술을 진화론에 빗대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칸트 철학의 전모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가 적어 놓은 글들 중 말단의 가지들에 주목하면서 그에 동조하여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함께 떠올려 보았던 것 같다.
내가 주목했던 칸트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B447 ... 이 때 1일어나는 것의 조건은 원인이라 일컬어지고, 2현상에서 원인의 무조건적 원인성은 자유라고 일컬어지며, 반면에 3조건적인 원인성은 좀 더 좁은 의미에서 자연 원인이라고 일컬어진다. 4현존하는 것 일반에서 5조건적인 것은 우연적이라고 일컬어지고, 6무조건적인 것은 필연적이라 일컬어진다. 그리고 7현상들의 무조건적 필연성은 자연필연성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나는 1에 事를 연관짓고 2에 돌연변이를 연관짓고 3에 자연선택을 4에 物을 5에 성선택을 6에 생식을 7에 진화론을 각각 연관지어본 적이 있다.
칸트철학의 대요를 얻지 못하고 단지 읽기에 급급한 채로 독해하다 얻어걸린 구절이었다. 다윈 이전 시대의 사람인 칸트가 진화론을 알고 있었을 리는 없고 칸트 철학의 어떤 내재적 동기에 의하여 위의 구절이 적히게 되었을까 생각하며 책을 다시 펼쳤는데 그걸 알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삼비판서를 좀 여유를 가지고 다시 읽게 될 날이 올까?
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선택이란 무엇일까? 자연선택의 영문 표기는 natural selection이다. 자연선택에서의 자연은 인간 문명과 구분되는 '전체로서의 자연' 즉 명사로서의 자연이라기 보다는 형용사로서의 자연 즉 '자연스러운'이란 말과 더 가깝다. 만약 자연선택이 selection by nature 와 같이 적혔다면 그 때의 자연은 마치 인류의 어떤 민족이 신에 의해 선택받았다 주장하듯이 어떤 자연이란 실체에 의해 특정 개체들이 선택받았다는 뜻이 된다.
다윈은 애초에 자연스러운 또는 자연에 의한 선택이라는 개념보다는 생존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도태 현상에 대해서 말했다. 생존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도태 현상은 곧 생존경쟁의 결과로 도태되지 아니한 나머지 개체들의 생존 현상과도 같다. 다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 자연도태가 아닌 자연선택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사태를 규정하였다.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는 사회진화론의 창시자인 하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했다.
다윈은 진화론을 적어 두고도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에 의한 자연스러운 선택일까? 다윈은 '사람'에 의한 비둘기 육종으로 그 종이 분화된 사례를 책 초반에 적어 둔다. '사람'에 의해 가능했던 이 일이 위대한 '자연'이 해 내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 되묻는다. 다윈의 말대로라면 자연과 그 변화는 생물 종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이란 하나의 실재로서 존재하는 '명사로서의 자연에 의한' '형용사로서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단 말인가?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자연'이 해 냈던 그 일을 신이 해 내지 못할 리는 더더욱 없다.
신화는 능동태와 친하고 과학은 수동태와 친하다. 신화는 신화를 이루는 신들 그 주체의 이야기이지만 과학은 어떤 사건이 특정 조건에서 되어지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에 수동태가 없고 과학에 능동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폴론에게 쫓기던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해가는 과정은 능동태보다는 수동태적 문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마찬가지로 과학 또한 수동태로 적히는 것만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natural selection' 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주체'를 기다리는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히틀러는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에 기반하여 그 자신이 인종 청소를 하고자 했던 역사가 있다. 그 때의 natural은 자연의 언어가 전혀 아니었다.
한편 big bang에는 그 사건을 일으킨 주체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사건은 능동태나 수동태로 적힌 것이 아니라 단지 발생했거나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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