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렉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들을 추적하고 심판하는 역할을 한다
요주의 인물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컨텐츠의 영상을 업로드하고 광고 수익을 얻는다
이전에는 이슈라면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퍼오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써 사용되었으나(이슈를 신속히 견인 -> 렉카차)
근래에는 화제의 빌런에 대해 다루는 유튜버라는 뜻이 강하다
일단 그들의 영상이 자극적이고 재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법을 교묘히 이용하며 도덕의 선을 넘어 다니는 이들을 추적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새 응원하는 마음이 되기도 하고,
공권력이 미처 닿지 못하는 영역에서 활약하는 그들에게 약간의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누가 좀 나서서 정의 구현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사이버 렉카들은 개인의 이런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대중과 모종의 계약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정이 중요한 가치인 사회에서 그들만이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태계를 보며 찜찜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상을 보면서 느껴지는 묘한 쾌감에서
나도 폭력을 즐기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선징악의 스토리에서 느꼈던 안도감과는 사뭇 다르다
별생각 없이 여론에 동조하는 것 같은 나를 관찰하며 떳떳지 못함을 느끼고
그저 누군가 잘못했다는 이유로 집단린치에 가세하는 내가 낯설게 다가온다
문득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내가 간과한 게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과실에서 비난의 당위성을 찾는 과정에는 생략된 맥락이 있다고 느낀다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은 속 시원하지 않다
나는 아마도 "잘못했으면 맞아야지."라는 말을
"안 그래도 누군가 때리고 싶었는데 마침 네가 잘못했구나."라는 말 대신으로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사회에 폭력이 용인되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그저 누군가를 비난하고 끌어내리고 싶었던 참에 미친 놈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처럼 공격성을 해소할 기회로 삼으려고 했던 내가 있다
솔직한 말로, 나는 법이나 도덕 따위의 것들에 별 관심이 없다
내 못난 근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구실만 제공해 준다면 진실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오늘날 사이버 렉카 식의 정의 구현이 먹히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공격성을 해소할 기회는 흔치 않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렉카질'이 마치 악인에게 행하는 마녀사냥으로 보인다
단지 대상만 악인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본질은 마녀사냥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무대에 오르게 된 악인은 내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한 제물이 되고
나는 다시 지겨운 일상으로 돌아가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런 식으로도 굴러가는 것 같은 사회에 염증을 느끼지만 별수 없다
괜찮은 대안을 제시할 능력도 없으면서 이런 문화에 반대하는 게 주제넘는 것 같다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렉카 영상들을 포르노처럼 취급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시적으로 불만을 해소하고 내가 원하는 결말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영상을
달리 취급할 방법도 사실 없었던 것 같다
과연 렉카 동영상을 집단의 위한 포르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구성원들의 불만을 다시 잠재우는데 기여하는 컨텐츠라는 망상도 해본다
따지고 보면 그런 식의 컨텐츠가 먹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 끊임없이 정액을 생산하는 육체를 관찰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자극적인 컨텐츠에 열을 올리는 에고와 결을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공격성을 관리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그런 식의 배출구를 찾아다녀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 같았다
마치 하루라도 지랄병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정신병자처럼 말이다
이런 장애에 가까운 페널티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해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할까?
솔직히 혼란스럽다
사회에 그런 이벤트조차 없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혼란을 감당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는 악인들은 집단의 유지를 위한 제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슬프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가 폭력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개념은 좀처럼 수긍하기 힘들다
사회의 여러 경쟁에서 탈락하고 선의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일까?
무르익었다. 어떤 글솜씨의 경지에 다다른 듯합니다. 다만 "(말따옴표)" 안에는 다른 어떤 기호도 삽입하지 마세요. 예컨대, 나는 아마도 "잘못했으면 맞아야지"라는 말을 하고, 따옴표 안에 마침표를 넣으면 안 됩니다. 문학적인 글솜씨가 타고났습니다. 죽은 마광수 선생님이 봤더라면 님을 불러서 소주잔을 기울였을 겁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철학입니다. 나는
님이 여기서 더 나아가 철학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으면 해요. 문학은 아름답지만 너무나 나약해서 님의 삶에서 지구력을 키울 수가 없어요. 타인과 함께 울고 웃는 글만 쓰다 보면 금세 탈진합니다. 그러니까 철학적인 글은 내가 우선 살고자 하는 아주 이기적인 글입니다. 젊을 때부터 그런 글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근육질의 철학자가 되고 싶어요
예, 문학은 한강처럼 노벨상을 받지 못할 거라면ㅡ나ㅡ자신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그래요. 하지만 철학은 일단 주변의 도움(인맥) 없이도 나의 사상적(이론적)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라서 이게 목적한 바대로 이루어지면 훗날 나의 재능에 대한 열등감 따위로 인해 무너질 일은 없습니다.
가끔 삶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들이 철학적 개념이랑 닿아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원의 세계에서 철학만큼 인생의 여러 문제 잘 설명할 수 있는 체계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고독사님 말도 맞습니다 맨날 우는소리만 해선 바뀌는 게 없으니까요... 이성적 작용을 통해 그럴듯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이성(적 세계)과만 관계하지 않습니다. 칸트는 문학적 글솜씨가 없었을 뿐, 이성보다는 감성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경험세계는 한없이 타자와 충돌한다는 점에서 결코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술취한 내게 '이성적으로' 충고하기를 "네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아!" 했을 때, 그 누구의 말은 이성적일 까닭이 전혀 없고, 고작 술취한 나보다는 조금 더
논리적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을 기억하시죠? "논리란 끼리끼리 짝맞추기일 뿐, 진리 혹은 사실과 아무 상관없다." 진짜 철학자는 '논리적'이란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차라리ㅡ항상ㅡ수학적이길 바랍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트락타투스tractatus logico philosophicus는 로직코를 까부수는 논술이란 뜻입니다. 로직이 주어가 아닙니다.
오늘 댓글은 좀 어렵습니다...ㅋㅋ
유투버 뿐만 아니라 요즘은 세상사람 모두가 논술학자이지요.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 사회보다 더 어지러운 말장난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택시 운전사가 소크라테스 흉내를 내고 스스로 소크라테스라고 믿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접하죠. 그러면 진짜로 희랍철학을 공부한 사람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침묵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만 할게요. 오늘도 몹시 취했는데, 취하고 또 취해도 너무 괴로운 날이어서 아무래도 여기서 잠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먼저 잘게요. 다음 날에 또 봅시다. 응대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논술=> 진술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주무세요, 형님
두 번 읽었습니다. 아무튼 간에 일취월장입니다. 님은 이제 좋은 소재(주제)만 만나면 신춘문예 등단도 가능한 경지입니다. 즉, 문재는 이미 기성작가의 비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자꾸 더 써서 한국 인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 주십시오.
헐...부끄럽습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데이 ㅎ
이제 시작입니다. 하루도 쉬지 말고 쓰고(생각하고) 또 써 보십시오(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