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는 악마적인 게임이다
플레이어의 정신에 해를 가한다는 의미에서라기보다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재미를 준다는 의미에서 굳이 악마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물론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정신에 해롭다...)
게임이 출시되고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몇 년 전 레저렉션이라는 타이틀로 탈태하는 과정을 통해 그 수명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리마스터를 통해 과거의 명작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은 마치 고전을 재해석하는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출시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관련 컨텐츠가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여러모로 대단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디아블로의 묘미가 특유의 랜덤성과 불완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는 것 같은 레벨링 시스템도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확률을 기반으로 한 파밍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정말 천재적인 시도였다고 본다
플레이어가 획득하는 아이템에 부여되는 옵션이 랜덤하게 설정된다는 아이디어는
아이템을 파밍 하는 과정에서 도박과도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에서 원하는 옵션의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사냥과 크래프팅을 통해 슬롯머신의 레버를 몇 번이고 당기다 보면
어느새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템 옵션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붙는 수식어를 관찰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요소로 다가온다
국내의 온라인 게임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적용된 경우를 보게 되는데
높은 확률로 디아블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결국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아이템 파밍에 나름의 동기를 부여하게 되고
최고 등급의 아이템을 얻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입장에서 완벽을 달성하는 것은 일종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한 플레이어는 정지하게 되고 게임 세계와 일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밸런싱이나 새로운 아이템 출시를 통해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아블로의 게임 환경은 플레이어가 '토끼겅듀'가 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게임에서 캐릭터를 완벽하게 세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거기에는 결코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디아블로가 그런 과정의 재미를 탁월하게 구현해 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룬워드 아이템의 출시로 인해 수수, 고뇌 일변도의 세팅이 주류를 이루게 되며
세팅의 재미가 반감됐다고 느끼지만, 디아블로는 여전히 재밌는 게임이다
마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시스템에서
최적의 세팅을 위해 행복한 고민을 거듭하는 내가 있다
이런 디아블로의 세계에도 여러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아이템 복사 파동부터 시작해서 버그 아이템의 출현, 해킹 사태로 인한 유저 이탈까지
게임의 생태계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온 사건들로 인해 열병을 앓는 것 같은 과정을 거쳤다
후에 여러 패치를 통해 사태를 수습하며 게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디아블로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없데이트로 인해 블리자드에서 버려진 프로젝트라는 인상도 받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서비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잘 만든 게임은 아직도 수많은 게이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마치 그들로 하여금 이 작은 세계에서 졸업하는 것을 망설이도록 한다고 느낀다
언젠가 이 게임이 담고 있는 철학에 대해 간파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디아블로의 세계에서 주사위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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