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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기. 스피노자의 에티카ethica는 '도피로서의 형이상학'이다. 무엇으로부터 도피인가? 우선 우리가 피지컬이라 부르는 타고난 크기(키)와 미모(얼굴), 골격과 근력 따위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기인하는 열등감은 우리의 성장을 멈춘다. 제한된 시간을 사는 우리는 성장을 멈춤과 동시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생산적인 활동을 멈춘다. 그러니까 하나의 닫힌 세계에서ㅡ타고난ㅡ생김새는 운명의 토대이다. "각각의 개체는ㅡ상대적으로ㅡ완전할수록(타고난 완전성이 보장될수록) 더 활동적이고, 따라서 덜 수동적이다."(5부 정리40.) 그러니 자본제의 인간에게서 실은 소산적 활동조차 불가능하다. 결국 부품은 다른 부품으로 대체될 뿐이다.



현실세계의 결핍을 앓는 자만이 시간(성:엄밀히는 근대적 시간성=>기계적 시계로서의 시간)을 부정한다. 그리하여 시간성을 자신의 망상세계로 가져온다. 그는 더 이상 타자를 위해 노동하지 않는다. 사실 소산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이 오직ㅡ자신의ㅡ욕망으로부터 출발하고 끝맺는다 할 때 세계는 항상 능산적(적극적)일 뿐이다. 결핍된 자, 그리하여 도태된 자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는가. 그것은 이것 아닌 저것, 여기 아닌 저기, 지금 아닌 다른 시간을 견주어 노닐 수밖에 없다. 



시간이 멈춘 형상 밖의 세계에선 나와 타자가 항상 동등하다. 오히려 나는 타자의 능력(가능한 세계의 능력)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천부의 능력을 지녔다. 신즉 자연, 단 하나의 가치로서 실체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형이상적 기대가 지금 여기 나의 신체와 결합해야만 비로소 능산적 존재가 되는 듯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스피노자는 다음 시대에 올 자본제와 말로서 이루어지는 집단지성(?)의 터무니없음을 미처 알아차릴 수 없었다. 스피노자 식으로 따지면 인터넷 시대의 우리 모두는 이미 능산적 세계를 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전히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