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윤석열 계엄령 사태를 겪으며 나는 하나 뿐인 친구(친구이자 선배)를 잃었다. 하나 뿐인 여동생(친동생)과도 결별했다. 정치얘기는 부모형제와도 하지 말랬는데, 나는 그 가르침을 비교적 잘 실천하며 살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작별은 꼭 정치탓만도 아닌 듯하다. 즉슨 나는 이미 그들에게 별 쓸모없는 주변인이었던 것.
왜 그런가.
일찍이 나는 돈벌이가 시원찮았다. 배를 십수 년 동안 탔지만 나는 현재 신용불량자인 것. 그렇다고 내가 남보다 더 여색을 밝히고 술에 빠져 살았다고 확신하지 마라. 강한 선입견은 어떤 경우에도 해롭다.
사흘 전에 나는 몇 해 만에 부산을 갔다 왔다. 나보다는 몇갑절로 돈을 많이 버는 서울 사는 동생 내외가 부산 가는 길에 대구 사는 오빠(나)를 부른 것. 실은 걔들이 나를 부른 게 아니라, 걔들과 함께 사는 어무이가 나를 부른 것. 가고 싶지 않았다.(후에 걔들도 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잘 놀았다. 수학을 참 잘하는 조카가 갈수록 한 문제 두 문제 틀리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동생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빠이자 외삼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꼴에 나도 '어른(?)'이랍시고 한마디했다. "조카야, 수학은 기초가 중요하다. 영어, 국어 뭐 이런거 쫌 몰라도 된다. 역사 같은 건 아예 배우지 마라. 빵점을 맞아도 좋다. 그건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니까 그 시간에 차라리 수학 공식 하나를 더 배워라."
내가 말을 많이 할수록 여동생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빠 니는ㅡ조카ㅡ아이에게 항상 말을 함부로 해.(대구에서 초중고대까지 나온 여동생은 이제 서울말을 쓴다.)"
"야야 내가 무슨 틀린 말을 했는데?" 하고 물으니 동생은 대뜸 "내가 얘(조카) 공부시키려고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오빠, 우리가 클 때와는 달라. 그리고 얘(조카)가 오빠보다 수학문제를 더 잘 풀어. 오빠는 그냥 잠자코 가만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아, 그랬구나. 미안해.) 그래 동생아 알지 잘 알지.
"야야(조카야) 느금마 고생하는거 알제? 삼촌은 니 보고 공부 열심히 해라 소린 안 한다. 우예끼나 수학만 잘 해라." 이게 뭔 개병맛 개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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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정치 얘기가 나와서 사달이 난 거지.
난 윤석열이를 옹호하는 입장이었고 동생은(내 매제가 목포사람임) 윤석열을 옹호하지도 않는 고향 대구사람 자체를 극우 도시라 혐오하는 사람이고.(즈그 오빠가 한때 진짜 마르크스주의자였단 걸 알면까무라칠껄!)
아무튼 그렇게 나는 쫓겨났다. 주머니에 돈이 삼천 원밖에 없고, 내가 꼬불쳐 둔 돈은 호텔 숙소의 내 잠바 안주머니에 있는데, 상황이 하도 더러워서 일단은 그 자리를 피했다. 예전에 나는 재환이 짱구 등등, 지금은 부산 칠성파 깡패들과 불알친구인데 걔들 연락처를 기억할 리 있나. 부산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울고 있는데 울엄마가 왔더라. "야이 새끼야 엄마 나이가 곧 팔십이다. 내가 왜 니 때문에 이 나이묵도록 이 고생을 해야 하노 이새끼야."
"그라마 가(여동생) 말대로 518도 "무조건" 옳고(내 여동생이 실제로 그렇게 말함), 민주당이 하는 건 다 좋은깁니꺼!"
"아이고 야야 니 나이 오십둘이다. 아(이)들 말하는거 그러려니 내비리마(내버리면) 안 되나? 우예 그래 시근이 없노."
ㅡ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 돈이 없다는 것. 오랜동안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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