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말과 행동이 다른 철학자의 이중성에 관하여
김재인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번역한 사람이자 들뢰즈의 정치철학으로 서울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들뢰즈식의 혁명론을 자주 주장했는데 그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과거의 혁명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한 혁명은 또 다른 왕조의 시작을 알리거나 더욱 더 폭압적인 법률을 만들었을 뿐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 아니었죠. 혁명이 시민의 몫이어야 한다는 전제조차도 실은 모호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진짜 시민은 어디에 있습니다. 공회의장의 연단 앞쪽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아 있던 지롱드파girondins(온건 공화주의)가 시민입니까, 아니면 왼쪽에 앉아 있던 자코뱅파jacobins(급진 공화주의: 엄밀히는 산악파montagne)가 시민입니까. 그도 저도 아닌 가운데 자리에 서 있던 마레파mareis(중도 화해주의)가 시민입니까. 아직은 시민의 개념이 모호한 시대였으니 '국민'이라고 부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피를 많이 흘린 어느 지역의 어느 인민이 혁명의 주체일 수 없었고 특정인의 특정 정파의 탄생을 알리며 이는 곧 새로운 황제 탄생의 전초가 되지요."(말따옴표 안의 글은 실제로 김재인 씨가 한 말이 아니라 그의 정치사적 시선을 고려하여 내가 각색하였다.)
이제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서양철학사답게) 마르크스로 옮겨 가는데 이는 사실 들뢰즈식의 모호한 혁명론을 보충하려는 흔한 수단일 뿐이다. 무슨 말인가? 우선 김재인 씨의 말을 더 들어 보자.
"러시아의 10월 혁명(1917)도 우리는 실패한 역사적 경험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내부에서도 비판받죠. 공산주의의 실현은 경제적 조건으로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엔 이제 개인들의 온갖 욕망(심리적 욕망=>일상의 욕구)이 개입합니다. 한국의 419혁명은 그런 점에서 비슷한 시기의 프랑스 68혁명보다 가치가 높다 할 수 없습니다."(이 또한 나의 각색임.)
김재인 씨는 이제 프랑스 68혁명의 향수를 발언하는 들뢰즈의 입장에서 출발합니다. 말장난을 시작한 거죠. "그것은 시도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진정한 혁명은 성공을 한없이 유보한다. 그것은 개인의 유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혁명은 항상 개인의 몫이고 개인이 개인으로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성공한다. 그러므로 혁명전야란 항상 고요한 개인의 일상과 다름없는 상태다."(각색함.)
이해 됩니까? 결국 김재인 씨의 혁명은 마르크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들뢰즈식의 혁명론(론theory가 될 수 있을까?)입니다. 이런 말도 나오죠. 자신이 번역한 '천 개의 고원'을 바탕으로 들뢰즈 정치철학, 혁명철학을 해석하고 잡설을 단 여러 글에서 그는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 또 "사령관 없는 군중의 일제 발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로베스피에르가 없는 프랑스 혁명, 레닌 없는 10월 혁명, 박정희가 나타나지 말아야 할 419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재인 씨가 선택한 건 결국 '문재인'이라는 조용한(?) 혁명가(?)였죠. 실제로 김재인 씨의 글 곳곳엔 문재인을 혁명가급으로 추어올리는 보기 민망한 문장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문재인이란 성군은 들뢰즈와 니체 전공자인 김재인 씨에게 초인의 발현이었죠. 헤겔을 무척 미워하는 김재인 씨는 헤겔과 동급으로(헤겔이 나폴레온의 등장으로 온전히 미쳐 버렸듯이) 문재인의 추종자가 됩니다. 하라는 철학공부는 않고 첧학박사 학위가 무색하게 문재인의 경제적 성과에 관해서도 쉼없이 코멘트를 달지요. 그래서인지 그는 문재인 정권 당대에 경희대 조교수(연구교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령관 없는 게릴라식 전쟁, 메시아 없는 메시아 주의는 실현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예, 바로 광주 518 민중항쟁과 87년 6월 항쟁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 항쟁 또한 엄밀히 말해서 혁명의 성과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518 민중항쟁은 그 출발점이 김대중이라는 그들 지역의 특정 정치인을 옹호 사수하기 위한 시위에서 촉발되었다는 점. 그리고 훗날 너무나 정치적인 이유로 과도한 명예를 부여했다는 점. 마찬가지로 87년 6월 10일 항쟁도 특정 정치인(결과론적이지만 결국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자칭 민주세력의 거두)의 정계복귀와 헌법재판소라는 이상한 법적 권위체계의 탄생 말고는 실제 민중의 삶이 변하는 기폭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이종사촌 동생이 저보고 "형님, 518이 없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런 자유로운 발언도 할 수 없어요"라더군요. 저는 그냥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습니다.
김재인 씨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미 우리는 자발적 시민(개인)의 정권 투쟁이 가능함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김재인 씨의 숨겨진 심리(곧 진실)로서 그의 정치적 성향입니다. 자칭 맑스주의자로부터 출발했다고 선언한 그의 들뢰즈 철학은 상당히 좌파적이며 그 때의 좌파는 현실정치로서 민주당 문재인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한때 아웃사이더로서 김재인 씨를 신뢰하였기에(사실 나는 무조건하고 소수자 편을 듭니다) 문재인을 뽑았습니다. 박근혜를 욕하는 데에 인생의 1할을 바쳤지요. 그런데 문재인 정권 5년이 어떠했습니까?
김재인 씨는 들뢰즈의 정치철학, 혁명철학을 말하면서 아직까지도 한반도식 극우/극좌 구도를 사용합니다. 예, 극우는 반드시 존재하며 그들을 가리켜 "시대의 괴물, 역사의 사생아"라는 명칭을 서슴없이 사용하지요. 반면에 그는 노무현ㆍ문재인 신화 만들기의 최전방인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서프라이즈 출신의 김동렬 씨를 희대의 천재로 묘사합니다. 즉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는 반드시 존재하며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도층과 온건좌파, 혹은("소리없는 자들"의) 들뢰즈식 좌파인 지식인층만이 '정상'이라고 믿는 거죠.
;그런데 오늘 지금 서울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유튜버 주최자도 없고 특정 주동자가 없는 '서부지법 판사 탄핵' 시위가 열리고 있습니다. 김재인 씨의 오랜 주장처럼 이건 주동자(전광훈, 신혜식 따위)도 주최측(한국 우파연합 따위)도 없어요. 그러면 사령관 없는 게릴라들이 일제히 발포하고 있는 거지요. 물론 김재인 씨는 저 현전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입과 손가락으로는 구심점없는 주변(자)의 존재론을 쉴새없이 갱신해야지만 그의 진짜 정신과 육체는 서울대 출신의 철학박사와 경희대 교수라는, 유물론적 철학자의 일상을 유지해야거든요. 토대(하부구조)가 형이상(상부)을 구축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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