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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연락도 받고 하니 생각이 좀 들긴 했다.
윤석열의 계엄은 탈정치화가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 다시 정치화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정치화는 주로 탄핵반대세력이 도맡았고, 탄핵찬성세력은 정치가 아닌 법의 문제로 해결하는 노선으로 일찌감치 정리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탄핵반대세력의 정치화 과정 중 괜찮은 전망이 나올까 싶어 관심을 가졌었다.
돌이켜보면 계몽령 담론(전한길이 언급한 것은 1월 25일)이 나오고, 서부지법 사태(1월 19일)가 있던 즈음 볼 장은 다 봤던 것 같다.
계엄이 군사적으로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은 애초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고 정치가 전쟁의 연속임을 인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난폭한 자들의 음모론 수준이 아니라 정교한 군사혁명의 논리를 만들었어야 했다. 전한길 같은 자들이. 그리고 시민이 군대의 개입을 다시 요청했어야 했다.
우파의 패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독교와 유투버들이 난립하도록 방치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폭력을 터부시한 것. 첫째 요인에 대하여. 난립하며 심지어 서로 항쟁하는 기독교와 유투버로는 국힘조차 견제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우파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만큼 레거시 미디어에서 소위 "콘크리트 우파"라고 부르는 정치세력은 기독교 및 유투브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I 씨의 말처럼 탄반 시위 나간 사람들을 전부 그걸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와 유투버들을 숙청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그 가운데 없었다. 앞으로도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1공 때도 이게 문제였다. 한편으론 아스팔트 기독교인 서청 같은, 반은 정치 깡패인 자들이 백색 테러를 저질렀고, 자유당은 오늘날의 국힘처럼 우파 정치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자들이었다. 결국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선 박정희가 필요했다. 그러니 윤석열이 5.16을 흉내내려고 했던 것에도 역사적 근거가 없진 않았다.
우파의 두 번째 패인은 폭력을 터부시한 것이다. 서부지법 사태가 있지 않았냐고? 폭력을 터부시한다는 것은 폭력을 광란으로 이해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폭력을 악마의 소행으로 생각하니까 막상 폭력을 사용하게 되면 악마처럼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절제된 정치적 폭력을 심플하게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5.16 군사혁명 직후 군사혁명위원회의 성공을 보장해줬던 것은 전두환이 이끌고 나온 육사생도들의 자발적 시가행진이었다. 육사생도들은 군사혁명을 지지하기 위해 시가행진을 벌였다. 전두환과 생도들은 서부지법에 침입했던 오타쿠들처럼 쒸익쒸익거리면서 우가우가 외치지도 않았고 지진 이후 조선인을 학살하는 일본인들처럼 재판관을 찾으러 우왕좌왕하지도 않았다.
우파는 국민이 혁명을 위한 전쟁, 군인을 통한 혁명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회로를 개척해야 했다. 계엄 포고령은 너무나도 조악한 폭론이었기 때문에 그것보다 나은 버전의 테제를 어떻게든 제시해야 했다. 그것이 우파의 과제였는데, 전한길을 비롯해서 우파는 그 길을 처음부터 틀어막아버리고 무지성 평화노선으로 틀어버렸다. 그렇게 나온 게 계몽령이라는 이상한 말이다.
우파는 군의 개입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어야 한다. 군 내의 정치군인들과 연대했어야 한다. 실제로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군 내 정치군인들과 모든 수단을 다하여 연대했다.
프랑스 생각이 많이 난다. 프랑스는 군대와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결부된 나라다. 프랑스에서 민주주의의 탄생과 군대의 탄생은 결합되어 있다.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무지성 돌격하는 민중의 무리가 동시에 혁명의 군중이고 민주주의의 현현이다. 맑스가 말했듯이 의회민주주의를 보장하는 3공화국의 헌법은 계엄군의 총칼 아래에서 완성된 것이기도 하다. 우파는 루이 보나파트르를 추대했던 시토아엥들을 본받던지 아니면 계엄군에게 국회를 포위하고 7공화국 헌법을 새로 작성하게 하든지 했어야 한다. 프랑스의 전통을 따랐어야 한다. 물론 타국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게 하려고 해도 우파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아서, 갑자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기독교에 대해 또 말하자면, 기독교 우파의 지향은 미국형 우파의 기묘한 변형인데, 그게 잘 되겠는가? 미국 우파의 기본 정신은 집집마다 중화기가 비치된 미국식 밀리샤 전통 위에 서있다. NRA도 없고 민병대도 없고 KKK도 없는 한국이 어떻게 마가 운동가들의 게릴라 같은 전법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도, 계몽주의(즉 서진한 주자학의 무신론 정신)에 기반한 프랑스 공화주의에 근접하는 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우파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민주당 쪽에서는 조병옥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질 정도다. DC갤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파는 자신들이 어떤 의미에서 '민주당'과 대립하는 정파인지 정의해야 한다. 또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승만은 건국을 했고, 박정희는 그걸 발전시켰다는 식의 대충 얼버무리는 서술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박정희와 노무현, 윤석열 사이에 어떤 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정말로 역사의 평가에서 구하고 싶다면 이런 점을 해명하려고 해야 한다. 진영 논리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진영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심지어 민주화 운동권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 이미 80년대부터 수많은 운동권이 우파로 전향했다. 그들의 고민은 대체로 좌우파 양쪽에서 무시를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만큼 유용한 자료도 없을 것이다. 또 우파는 군대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군대란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아무튼 한국 우파는 우파가 파시즘과 동의어라든지 보수주의와 동의어라든지 박정희가 파시스트였다든지 하는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수다에서 벗어나서 산적한 과제들을 명료하게 해결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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