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당위를 정의하자면, 당장 무언가를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을 통제하게 만드는 일종의 지침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당위는 크게 수단적 당위와 윤리적 당위로 나뉜다.
우선 수단적 당위란,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써 당위가 창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공부는 지식 함양이나 학력이라는 목적의 수단이며, 운동은 건강이나 멋진 몸이라는 목적의 수단이고, 노동은 돈이라는 목표의 수단이다.
물론 각자의 목적은 차이가 있을수 있다.
여기서 수단적 당위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주체적 수단적 당위로, 위와 같이 자신의 욕망이나 목표에 따라 스스로 설정한 경우이다. 이는 자발적이며, 주체적인 것이고, 자유롭다.
둘째는 타율적인 수단적 당위다. 이는 외부에서 강제된 목표를 수단으로 따르게 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원하지 않는 진로를 강요받아 공부하거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해야만 하는 상황은, 그 목적이 자신의 욕망에 의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치나 압력에 의해 설정된 것이다.
이런 경우, 그 주체는 타율적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주체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비자유하다.
지금까지 나는 수단적 당위를 설명했지만, 이는 윤리적 당위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당위는 개인 또는 타인의 목적에 의지하므로, 윤리적 판단이 될수 없다.
그렇다면 윤리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칸트는 윤리성을 현상계가 아닌 선험적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았고, 이를 통해 윤리의 절대성을 추구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적인 감정과 이성, 즉 현상계 속 경험에서 윤리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윤리적 당위의 핵심은 공감 능력과 이성의 조화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은 무차별적인 감정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을 이끌어내는 방법론적 공감이다. 인간 일반(넓게는 생명체 전체)에 대한 애정, 그리고 내가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을 타인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윤리적 동력을 제공한다. 이 공감 능력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이때 이성이 그 적용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범죄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범죄자에게만 감정이입하는 현상은, 그 대응되는 피해자에게 같은 수준의 공감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공감의 편향이 낳는 왜곡된 도덕 판단이다. 따라서 "평등한 공감"이 윤리적 판단의 핵심이다.
물론 사회에는 공감에 기반하지 않은 당위 체계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질서 중심 윤리
이 윤리는 질서를 정당화하는 규율이 그 자체로 근거가 되고, 다시 그 질서가 규율을 정당화하는 순환 논리를 가진다. 질서 유지가 목적인 이 체계에서는 개인은 질서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윤리를 따르는 개인은 외부 질서를 내면화했을 뿐, 진정한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비자유의 상태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이러한 윤리가 지속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효과적이고, 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스스로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조차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서 속의 편안함은 때로 자율성 속의 불안정함보다 선호되기도 한다.
2. 원한 감정 기반 윤리
이 경우 윤리는 결핍의 보상 수단으로 사용된다. 어떤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그 원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어 그 대상을 평가절하하거나, 동일한 대상을 추구하는 타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자기기만적이며, 도덕을 수단화하고 멀쩡한 가치를 왜곡시키기에 부정적인 것이다.
이제 다시 돌아와서 형식적이지 않고, 자기기만적이지 않으며, 주체적이고 보편성까지 갖춘 윤리란 무엇에 기반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이 바로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사이코패스처럼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윤리의 보편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오히려 공감 결여 사례는 왜 공감이 윤리의 핵심 기반이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유아기때 나는 노예상태였다. 여기서 노예상태란 주체성을 상실했다는 의미인데, 사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때의 나는 외부의 모든 규범을 수용만 하며, 모든 당위를 "하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나는것"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청소년기가 되며, 나는 내가 따르던 당위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당위는 수단적 당위, 윤리적 당위로 나뉘는데, 수단적 당위는 결국 더 큰 이익을 위해 따르는 것이니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은것이고, 윤리적 당위는 결국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이성의 조화에 근거한 것이기에 그 어던 외부의 강제력도 가지고 있지않은, 모두 "자발적인것" 이 된다. 이는 어떤 당위적 사슬에도 얽매이지 않은 주체성을 획득한 순간이었건 것이다.
이 글은 무조건적 관습의 해체를 외치는것이 아닌, 윤리와 주체성의 관계를 탐색하고,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윤리성에 대한 생각과 선언을 담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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