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마르크스 전공 교수님들이나 현대 마르크스주의자 슬라보예 지젝의 해석과는 약간 다르게, 어느 정도 “Yes”라고 본다.
조던 피터슨이 지젝과의 토론에서 말한
“마르크스는 결과적 평등을 이야기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훨씬 미묘한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마르크스가 결과적 평등만을 지향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핵심 맥락을 과도하게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분명,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창출한 막대한 생산력을 모두가 공유하고, 계급이 해체된 결과로,
결과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점은 맞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평등” 자체를 본질적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공산주의를 구상한 이유는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소외(alienation)**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 평등은 어디까지나 인간소외 극복의 부수적 결과일 뿐이며,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지향했던 것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였다.
여담 – 인간소외란 무엇인가?
인간소외(alienation)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생산물과 제도가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원래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자본(capital)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구조.
돈이 사회의 중심이 되고,
모든 가치가 금전적 가치로 환원되며,
심지어 인간조차 상품처럼 취급되는 현상.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박살내고자 했던 것은,
탐욕스러운 개인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비인간적 구조였다.
그는 “돈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꿈꾸었다.
이것이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며,
그가 추구한 진정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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