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실험 : 의식과 무의식의 악마
주제 : 인간으 스스로를 알 수 있을까?
인간의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여러가지가 함께 결합된 총체로 구성되며, 무의식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행동양식, 습관, 반응 등을 포함한다. 이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기에 무의식이라 불리며, 우리가 이를 인식하는 순간 무의식의 성질은 소멸되고 의식의 일부가 된다.(인식된 순간부터 무의식은 무의식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림) 이를 바탕으로 사고실험은 다음과 같은 전제를 세운다: 만약 어떤 존재, 즉 ‘의식과 무의식의 악마’가 인간의 무의식을 완전히 복제하여 의식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무의식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가능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의식화되는 순간 무의식이 아니게 되며, 무의식의 본질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무의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생성된다. 무의식을 인식했다고 해서 자아가 해체되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즉시 새로운 무의식이 생성되며 자아는 계속 변화한다. 이로 인해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무의식의 재생산을 통해 끊임없이 갱신되는 유동적 구조로 이해된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환원되듯이 의식또한 무의식으로의 환원 가능성을 가진다.)
따라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은 가능하나, 무의식의 전면적·완전한 인식은 이론적으로도 본질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인간이 평생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영원히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자아가 항상 ‘일부 미지의 자신’을 품고 존재한다는 점에서, 자기 성찰의 한계이자 존재론적 조건을 드러낸다. 결국 이 사고실험은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을 완전히 인식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완전하게 아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계는 존재함 무의식의 정의가 너무 많아서 하나의 예외가 생기면 사고실험이 무너진다는것 하지만 무의식의 정의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건 결국 여러 가능성이 존재함을 내포한다고 생각해서 무의식을 의식과 상호배타적인것으로 생각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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