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라는 악당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집에 들어온 손님을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였다.
그러나 결국 그도 테세우스에게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당위는 곧 권력이다.
누군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정의가 그 사람 마음속에 있다면,
그 사람의 세계는 오직 선과 악일 뿐이다.
그는 이 세상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심판의 권력을 쥐게 되는 자는 누구나
마음 속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고이 간직해두고 있다.
그리고는 눈 앞의 여러 대상을 자신의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키가 넘지는 않는지,
혹은 작은지 끊임없이 달아보곤 한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반복되었던 끔찍한 학살과 참상의 비극은 사실,
누군가 주장하는 신념이 가진 내용 그 자체의 문제보다도
그것만이 옳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에게서 등장했다.
그 외양은 중세에선 기독교적 근본주의였고,
근대에선 불평등과 계급 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근본주의였다.
현대에도 다양한 문화와 지역에 따라 그 외양은
이슬람, 반공주의, 반계급주의, 민족주의 등 제각기 천차만별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확신에 찬 분노"였다.
그리고 항상 "부정할 수 없는 당위"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시대의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항상 출발해왔으며,
악마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의 "내용"이 아닌
그것이 가지는 "특성"과 "양상"을 항상 이용해왔다.
만약 초등학생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명확한 당위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자신이 그 당위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행위와 태도까지 그런 당위를 대변하기에 정당하다는 확신은
매우 무모하고 오만한 생각일지 모른다.
반지의 제왕 속 나오는 절대 반지는 그 자체로 막대한 실체적 힘을 가진 도구이다.
만약 올바르게 사용되었다면 세상을 위해 쓰였을지 모른다.
아마 처음 그 절대 반지를 만들었던 누군가 또한 그런 마음과 확신을 가지고 만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반지는 반드시 부서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 반지를 낀 자는 누구도 예외 없이 타락하고 말았으니까.
인간이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변증하고 있다.
당신이 눈앞에 있는 대상을 악이라고 확신한다면,
심지어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크고,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확신하며,
심지어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이 그 신념에 근거한
모든 행동을 하는 것이 용납된다는 명분이 되어줄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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