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생긴 궁금증인데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정말 본능에 따라 아이를 낳은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일손도 늘리고 노후를 위해 낳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노후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사니까, 관습적으로 아이를 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피임도 할 수 있고, 일손은 커녕 내 노후를 위해서는 낳지 않는 것이 좋을 만큼 먹고살기 힘들고, 사회적 관습에서 많이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단순히 인생을 두고 투정부리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의 중요한 일인데 이유조차 없이 실행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아이를 정말 좋아하지만 제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겠어서 이 반출생주의를 깨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한 가지 조건은 내 욕심만으로 낳는 것은 안됩니다. 출산은 생명의 기쁨이라느니 존재 자체가 선이라느니 이런 이유는 저를 설득하기 힘들어요
반출생주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남
쾌락의 존재보다 고통의 부재가 압도적으로 좋음
죽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님
반론으로 보통
1. 내 삶은 완전히 행복하다. 반출생주의자들만 불행한 거 아냐?
2. 내 삶도 고통이 있다. 그래도 이겨내야지.
3. 내 삶도 고통이 있다. 그런데 고통이 안 좋은 것이냐?
이렇게 나뉘는 것 같은데
사실 제 자식도 1번과 같은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모든 순간이 행복한 건 아니지만 나름 즐거울 때도 있고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인생을 하나의 예술작품 만들듯이 공들여 살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제 자식은 어떨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2번 3번이 문제인데, 사실 둘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네요.
2번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의지가 매우 강한 편일 수도 있습니다.
3번은 고통이 악이 아니라면, 인생이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출생주의자들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낳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결론적으로, 출생주의자들은
1.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우리처럼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더라도 반출생주의를 비판할 것인지 아니면 감수할 수 있는 고통에 정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2.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인생의 필연적인 것이라면 사실 경제 수준과 줄 수 있는 사랑의 정도를 따지지 않고 낳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낳야하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받고 싶습니다.
논리적으로 이상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감안해주시고
싸우지 말고 다양한 의견 많이 들어보고 싶어요.
고통이 왜 좋음 미치광이야
인생의 가치, 목표, 의미 같은 것을 오로지 쾌락에 두는 경우, 반출생주의는 제 생각으론 깨뜨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의 증대에 있다라는 것도 하나의 철학적인 가정일 뿐이므로 (물론 그것은 매우 와닿는 가정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 반출생주의는 깨집니다.
또한 쾌락을 주관적이라고 가정해도 반출생주의는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반출생주의는, 인생의 목적은 객관적인 감각적 쾌락의 증대에 있다, 라는 좁은 제한을 걸어둘 때만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반출생주의자들을 싫어하는 분들이 아이를 1-2명 정도로 제한해서 낳는 것도 자신의 환경에서 고통을 최소화하고 쾌락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생의 목적이 쾌락의 증대에 있지 않고 고통은 얼마든지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면 피임하지 않고 아이가 생기는 대로 다 낳아야 하지 않나요?
@철갤러1(211.235) 인생이 원래 힘든거야! 그냥 살아야지 뭐! 라고 하시는 분들의 말이 이미 태어난 사람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그분들도 아이를 낳을 때에는 내심 최대한 고통은 적게 받고 행복하게만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한 두명만 낳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집이 가난해지든 사랑을 덜 받게 되든 아이가 생기는대로 낳아야죠 피임하지 않고. 인생은 쾌락의 증대가 목적이 아니니까
반출생주의에 철저히 반대한다면, 인생에서의 행위들은, 예를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들은, 객관적인 고통과 쾌락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것입니다. 주관적인 쾌락의 가정을 적용한다면, 그들은 1, 2명의 자녀가 가장 덜 고통스럽다고 자신은 주관적으로 느낀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아예 고통과 무관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그들이 아이를 한둘 낳는 판단은 그게 덜 고통스러워서도 아니고 더 즐거워서도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한 판단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ㅇㅇ(221.148) 아 넵 부모는 주관적인 쾌락의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걱정하는 것은 아이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고통의 크기가 스스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장애를 갖고 태어났는데 극복할 수 없다든가 제가 아무리 애써도 스스로 허무주의에 빠져서 삶을 증오할 가능성이요.
말씀하신대로 태어남을 당한 사람에게 태어나기 전에는 낳아도 되는지의 여부를 묻을 수 없기 때문에, 또 그 태어남 당하는 사람의 주관적 기준이 삶의 고통을 매우 민감하게 느끼는 기질이라면, 그에게는 출생이 매우 억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태어남을 원하는 그런 기준의 기질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그러므로 그의 출생 가능성을 막는 반출생주의의 적용은 어쩌면 불합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날 사람이 삶의 긍정적으로 볼지 부정적으로 볼지 알 수 없으니 아예 낳지말아야하는지, 아니면 같은 이유로 무조건 낳아야 하는지..
@ㅇㅇ(221.148) 그럼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자신만의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아이를 낳는 것 같나요? 아니면 사회적 관습 때문일까요? 저는 요즘 사람들이 진정으로 종족번식의 욕구를 강하게 갖고 있지도 않는 것 같고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아이 낳기 전부터 아이를 정말 좋아해서, 귀여워서 낳는 사람들도 적은 것 같아요
@철갤러3(211.235) 단지 내가 자라올 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낳았으니까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만의 그럴 듯한 이유가 없어서 남들이 흔히 말하는 갖가지 이유들을 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느끼기엔.. 외로움 때문에 낳는 것이 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끼리 만남도 줄어들고 점점 가족을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가족만이 이유라면 부부 둘로도 충분하지 않겠냐 할 수 있는데, 사람은 늙게 되면 젊음을 곁에 두고픈 심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은 뭔가 매력을 주고 받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늙을수록 그게 안 되며 그래서 젊고 어린 내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게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노인이 길 가운데 앉아있으면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며, 노인 역시도 같은 노인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므로.. 그냥 이것은 제 개인적인 망상입니다.
이를 따지려면 다시 인식론, 존재론 등으로 들어가서, 우리 인식은 오직 감각 자료와 그에 대한 쾌, 불쾌만을 가진다 혹은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감각적인 무언가일 뿐이다 등을 논해야 합니다.
그럼 선생님이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제 개인적인 출산관을 물으신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제 자신에게 주장해야 한다면,, 저는 아이의 귀여움과 웃음, 순진함, 정서적 유대 등을 좋아하므로 그것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혹은 그저 신이 내린 운명이다(어쩌다보니 아이가 생겼다) 정도의 답이 생각
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