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돈? 권력? 힘? ... 권위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본능에 반하는 허무주의적 표상(데카당)들은, 마치 본능들의 혼란에 대항하는 구세주처럼 우리를 속이며, 본능으로부터 권위를 빼앗아온다. 또한, 이러한 염세주의적 표상들에 의해 본능에서 빠져나와 갈 곳 없는 그 모든 권위들은, 이제 의지할 곳이 없는 인간들의 간절함을 악용하여 믿음을 매개로 그 권위를 가져오려는 어떠한 악의적인 허상에게 빼앗겨버리고, 개념의 역사적 성질을 무시하며 개념을 형이상학적 미라로 박제해버리는 어리석은 철학자들에 의해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양 못박혀버린다.(실제로 사람들이 '믿는' 개념은 모두 이런 죽은 개념들에 불과하다) 이렇게 믿음에 의해 권위를 가지게 된 사념(死念)들은, 그 권위를 바탕으로 본능들의 위에 폭군처럼 군림하며, 어두운 욕망에 대항하는 환한 햇살처럼 우리를 속여 그 권위를 유지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합리성, 본능의 추구를 죄로 단정지으며 남녀간의 사랑보다 동성간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기형적이고 혐오스러운 광경까지 연출하게 했던 그 '합리성' 부터, 예수와 함께 못박혀 죽어버린 기독교와, 돈이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넘어 삶의 방향성이 되게까지 만든 자본주의, 귀납과 순환논리로 구성된 과학을 마치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우매한 발상까지, 거짓 우상들은 우리에게서 본능을 거세해버리며 우리를 말 잘 듣는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자명하다. 당연히 우리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본능에게서 고귀한 그 권리들을 뺏어간 저 거짓 우상들과, 그 우상들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는 멍청한 작자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분노의 대상은 권위 그 자체가 아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실제로 빼앗긴 권위를 자본가에게서 가져와야 한다는 천한(말 그대로 천민만이 할 법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발상은,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거대한 거짓 우상을 만들며 피해망상자들의 믿음을 매개로 권위를 세우고 있고, 결국 '돈'이라는 거대한 믿음에게서 빼앗긴 권위를 가져오는 데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하고 있다. 분노의 대상은 상대 이념이 아닌 이념 그 자체이며, 우리의 본능을 방해하고 틀에 가두어 놓는 그 모든 것들이다.

 분노하라, 우리에게서 권위를 가져간 이 모든 거짓들에 대해. 투쟁하라, 개념을 죽여 박제하고,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사육장 속의 거세된 돼지에서 벗어나 광활한 사막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라. 이것만이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완전한 이성의 자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