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불편한데 비해 살아갈 이유도 의미도 찾을 수가 없다. 출근하기 싫지만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기에 돈을 번다. 비오는 날 밖에 나가기 싫지만 밖에 나가야 한다.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지만 마주쳐야한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한다. 삶이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벌을 받는 기분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야했다.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그러길 원하다. 아니면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도 좋을 것 같다. 이미 충분히 살만큼 산 것 같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다. 어쨌든 나는 태어났다.

분명 삶을 살다보면 행복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 행복을 위해 이보다 더 큰 불행과 고통을 지불해야만한다. 그러니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며 삶을 포기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어찌됐든 태어나졌기 때문이다. 외통수를 맞은 것이다. 삶은 확실히 불합리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불합리함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만한다. 현실적으로 죽는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도 않고 죽고 싶다해도 쉽게 죽을 수도 없다.


이러한 불합리 속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이를 생각해내야한다. 이 세상의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값을 지불해야하고 그 값은 무언가에 의해 정해졌고 그 값을 벌어들이는 것도 무언가에 의해 정해졌다. 개인적으로 비가 오는 것을 싫어하지만 비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지만 건강과 미용상의 문제로 그럴 수 없다. 덥지만 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방법도 때때로 제한된다. 사람은 늙어가고 늙어갈 수록 아프고 병이 들며 사는게 괴로워진다. 인간은 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 살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근본적으로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불행을 제거함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이를 위해 살아간다. 참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다.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듯하다. 필연적으로 손해를 봐야한다.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불행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이는 태어나지 않은 존재들이나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에게만 해당 될 것이다.

이 세상은 나의 의사와 상관 없이 나를 태어나게 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대해 많은 의사를 존중해야만하고 동의를 구해야한다. 세상이 이토록 불합리하도록 설계한 존재는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무얼 위해서 이렇게 설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