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짧은 말은 인간 평가의 주관성과 편향을 너무도 잘 드러낸다. 우리가 누군가를 어떻게 느끼는가는 그 사람의 실제 모습보다 내가 그를 바라보는 필터에 훨씬 크게 좌우된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조금 엉뚱한 농담을 해도 “유머 감각이 있다”라고 받아들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같은 농담을 하면 “분위기 파악 못 한다”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회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호감을 가진 상사가 강하게 의견을 밀어붙이면 “결단력 있고 추진력 있다”라는 평가를 받지만, 비호감을 가진 상사가 똑같이 행동하면 “독선적이고 다른 의견을 무시한다”라는 비난이 돌아온다.
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마음에 드는 친구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노력파”라 칭찬하면서, 미운 친구가 잘하면 “운이 좋았겠지, 선생님이 봐준 거야”라고 평가절하하기 일쑤다.
이처럼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해석을 낳는 이유는 결국 평가하는 나의 마음 상태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옆 사람이 조금 느리게 움직여도 “세심하네”라고 느껴지지만, 피곤하거나 짜증이 쌓여 있을 때는 “답답하다, 게으르다”라는 평가가 붙는다.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도, 내가 여유로울 때는 “젊으니까 활기차구나”로 보이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버릇없고 철없다”로 여겨진다.
이렇듯 필터링은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 순간적인 기분, 충동, 심지어 운에 따라 작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편향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픽업 아티스트들이 흔히 하는 조언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라”, “자신감 있게 다가가라” 는 망상에 불과하다. 상대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고 나를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때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닫은 사람, 혹은 기분이 뒤틀려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재미있고 자신감 넘쳐 보여도 결국 “나대는 사람”, “부담스러운 사람”으로 비칠 뿐이다. 마치 시험지를 열어보기도 전에 오답이라고 낙인찍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며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 장점을 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지, 나를 싫어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대화까지 모두 해당된다. 같은 글도 어떤 이는 “통찰력 있다”라고 보지만, 어떤 이는 “오그라든다”라고 매도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얻으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