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비현실적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일종의 소설처럼 거짓이라고 생각하는지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스도교를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성욕과 같은 본능들을 억제하려는 사람의 경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능이라 함은 모든 인간이 갖는것이고 그리스도교적 시선에선 인간은 신이 만든것인데 그렇다면 신이 본능을 의도한것 아닌가?
그렇담 본능을 억제하려는건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건 아닌지
성경에 등장하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을 (특히 구약) 모두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중요한 점은, 고대인들은 현대와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거임. 고대 사회에서 역사는 오늘날처럼 객관적 사실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는 장르라기보다는, 신학적 메시지나 공동체의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한 서술에 가까웠다음. 그래서 구약 성서 뿐 아니라, 고대의 역사 서술은 숫자를 과장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흔했고, 문학적 장치도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는거임. 예를 들어, 시편은 명백히 시의 형식으로 쓰였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하겠지?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각 책이 어떤 장르인지, 어떤 시대적 배경과 목적 속에서, 누구에게 쓰였는지
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 예를 들어 창세기의 경우,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를 과학 교과서나 현대적 역사 기록이 아닌 신학적 메시지를 담은 산문적 서술로 보고있음. 예컨대 “첫째 날, 둘째 날”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해와 달은 나중에 창조됨. 해와 달이 없는데 현대적 의미의 24시간 ‘하루’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점들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기보다는 상징과 메시지 중심으로 해석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봐. 예를 들어, 단군신화도 교과서에서는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에 대한 이야기로 배우잖아. 비슷한 느낌임.
@철갤러1(12.89) 대신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에 대해서는 다름. 복음서들은 예수의 생애와 사건들을 증언의 형식으로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기록한 문서라고 보며, 기독교인이라면 예수의 기적 역시 실제 사건이었다고 믿어야한다고 봄.
그렇다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데도 왜 그리스도교를 따르는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상태에 대한 이해와 구원의 메시지에 있다고 생각함.
본능은 신이 만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억제하는 것은 신의 뜻에 반하지 않는가??? ->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원죄'라는 개념을 아는게 중요하다고 봄. 신은 원래 인간을 죄 없이 만들었음. 인류의 원래의 디자인에는 죄는 포함되지 않은 것임.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을 통해, 인류 전체의 본성에 '원죄 (=쉽게 말하면 죄를 짓게 되는 성향. 죄의 씨앗)'가 스며들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도덕적으로 약한 존재가 되었고, 계속 나쁜 마음을 가지고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거임.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지? 이와도 일정 부분 평행하는 관점이야. 기독교는 원죄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봄.
@철갤러1(12.89) 즉, 1. 인간은 원래 죄 없이 창조되었으나 2. 타락 사건 이후 본성이 왜곡되었고 2. 성욕을 포함한 통제되지 않은 욕망 역시 이 타락한 본성의 결과이다.
@철갤러1(12.89) 그런데 예수가 와서 인류가 구원될 수 있는 길이 생긴거임. 위의 관점에서, 예수는 타락 이전의 완전한 인간상이자, 동시에 신으로서 인간이 회복되어야 할 기준을 보여주는 존재임. 기독교는 “완벽해질 수 없다면 포기하라”가 아니라, “넘어질 수는 있지만, 예수라는 기준을 향해 계속 나아가라”라고 말함.
@철갤러1(12.89) 요약하면, 1. 인간은 본래 순수하게 창조되었다 2.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본성은 타락해졌고, 이로 인해 욕망과 본능이 왜곡되었다. 3. 따라서 인간은 본능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4. 그것을 절제하며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야 한다. 이는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서 가능해진다.
@철갤러1(12.89) 이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sanctification임.
그러면 성경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것이며,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은 아님. 인간이 알아서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가 있음. 그러니까 굳이 성경을 신의 언어라고 볼 것은 아니라는 건가요? 처음 성경을 작성한 사람의 의견 혹은 신의 뜻에 대한 추측이다? 재밌네요.
인간은 원래 죄가 포함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어서 타락했다면 선악과를 먹는 행위는 죄가 아니었나요? 선악과 먹지 말랬는데 먹은거면 죄를 지은 거잖아요. 원래 죄가 포함되지 않은 디자인이 왜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을까요? 선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디자인이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다면 다른 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무한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디자인이 꽤나 허술하군요.
빙빙 돌리지 말고 간단하게 말합시다. 종교가 무슨 학문이고 논리가 있습니까. 그냥 믿음에 불과하지. 무슨무슨 설이니 뭐니 자기들끼리 서로 세뇌하는 낮은 차원의 논리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인은 부모가 돌아가셔도 슬퍼하면 안됩니다. 때가 돼서 주님 품으로 돌아간 것을 왜 슬퍼합니까? 자기들끼리는 논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개연성 없는 라노벨입니다.
@철갤러2(175.205) 그러면 성경은 단순히 인간이 만든 기록일 뿐이고, 그 자체로 성스러운 텍스트는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 각자 해석해도 되는 여지가 있다는 거고, 굳이 성경을 신의 직접적인 언어로 볼 필요는 없다. 결국 최초 저자의 의견이나 신의 뜻에 대한 추측 모음이다 -> 이 부분에서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림. 1. verbal inspiration =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가 신의 직접적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입장. 2. organic inspiration = 유기적 영감설은 인간 저자의 개성, 시대적 배경,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그 전체 과정이 신의 섭리 안에 있었다고 봄.
@철갤러1(12.89) 즉 성경이 인간 저작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메시지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지는 않음. “신이 받아쓰기 시킴” vs “신이 인간 저자를 통해 말씀함”의 차이임. 이 외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dynamic inspraion 등 여러가지 입장이 있음
@철갤러2(175.205) 이제 선악과 문제로 가면, “인간은 원래 죄가 없는 디자인이었다”는 말과 “선악과를 먹은 행위는 죄였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음. 죄가 없었다는 건 죄를 지을 수 없는 로봇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죄책 상태가 없었다는 의미로 이해됨. 선택 가능성 자체가 없으면 순종도 도덕적 의미를 갖기 어려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건,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전제임. 죄를 짓지 않는 디자인 = 죄를 지을 수 없는 구조가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은 상태라는 뜻임. 따라서 선험적으로 죄가 없었다고 해서 죄를 지을 가능성까지 제거되었다고 보긴 어려움.
@철갤러1(12.89) “왜 완전한 디자인이 실패했냐”는 비판도 자주 나오는데, 기독교 신학에서는 실패라기보다는 자유의지의 필연적 결과로 설명함.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해서 자유로운 존재가 항상 옳은 선택만 하도록 강제하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결정론적 프로그램에 가깝다는 주장임. 또 “선악과를 먹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다른 죄도 가능하지 않았냐”는 질문엔, 실제로 가능했을 거라고 봄. 다만 최초의 불순종이 관계 단절의 기점이 되었고, 이후의 죄는 그 결과라는 구조임. 원죄 교리는 행위 하나보다 상태의 변화에 초점이 있음.
@철갤러2(175.205) 결국 이 문제는 “완벽한 신이 왜 위험한 자유를 허용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됨. 이에 대한 기독교적 반박은, 사랑과 관계는 자유 없이는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임. 허술한 설계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위험을 감수한 설계라는 해석임. 납득 여부는 개인 판단이지만, 최소한 내부 논리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음.
@철갤러2(175.205) “종교는 논리도 학문도 아니고 그냥 믿음일 뿐”이라는 말, 절반만 맞음. 종교가 실증과학은 아닌 건 맞지만, 그렇다고 논리나 사유 체계가 없다고 말하는 건 과도한 일반화임. 실제로 기독교 신학은 2천 년 동안 철학, 형이상학, 윤리학과 얽히면서 발전해 왔고,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인물은 서양 철학사에서도 무시 못 하는 위치 차지함. “무슨무슨 설”이 다 세뇌용이라는 주장은, 그냥 학계에서 누가 들어주지도 않을 주장임
@철갤러2(175.205) 또 “기독교인은 부모가 돌아가셔도 슬퍼하면 안 된다”는 것도, 기독교는 슬픔 자체를 죄로 보지 않아. 예수도 죽은 친구 앞에서 울었음. 죽음 이후의 소망이 있다고 해서 상실의 고통이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는 기독교 내부 어디에도 없음다 오히려 슬퍼할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면서, 그 슬픔이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는 게 기독교 아닐까. 팀 켈러는 타락 이전 인간의 원래 디자인에 죽음이 포함되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너무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으
@철갤러2(175.205) 그리고 네가 지금 제기한 비판들, 솔직히 말하면 전혀 새롭지가 않아
@철갤러1(12.89) 그니까 그게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결국 성경은 한계자인 인간이 쓴 것이고, 인간이 편집하고, 공의회에서 회의끝에 누구책을 넣고 누구책을 빼서, 유대인은 어떤 권리를 갖고, 예수는 어떤 말을 언제 했고를 결정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책을 기독교인들은 최고의 권위, 수정할 수 없는 성스러움,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여기잖아요. 그게 모순이라는 거에요. 자기들 내부에서 무슨 설이 있든간에요.
@철갤러2(175.205) “종교는 비이성적 믿음이다”, “내세 믿으면 현실 감정은 위선이다” 같은 주장들은 이미 니체, 흄, 러셀 같은 철학자들이 훨씬 정교하게 제기했음. 그리고 기독교 또한 수백년간 그에 대한 반론과 토론을 축적해왔고.
@철갤러2(175.205) 그래서 문제는 “비판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알고 비판하느냐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단순 조롱이나 도식화된 공격은 기독교를 무너뜨리지도 못하고, 무신론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지도 못함. 비판 자체는 환영받을 수 있지만, 디씨에서 아는척 하기 전에 이미 다뤄진 논의 수준은 알고 들어와야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철갤러1(12.89) 처음 만들어졌을 때 죄없는게 무슨 디자인임? 처음 만들어진 새거면 흠이 없는게 당연하지. 그건 무결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하는게 아니라 그냥 만들었다고 하는거에요. 죄를 지을지 말지 아무런 간섭하지 않고 당연히 사용하면 망가지도록 만든거. 죄가 없도록 디자인했다는 것과 스스로 죄를 지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요
@철갤러2(175.205) "그게 모순이라는 거에요. 자기들 내부에서 무슨 설이 있든간에요." -> 근데, 기독교는 성경이 "인간이 안 쓴 책"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음. 오히려 처음부터 인간이 쓰고, 인간이 편집하고, 역사 속에서 정경화되었다는 사실을, 건강한 기독교인들은 모두 인정함. 공의회, 편집, 선택 과정 다 부정 안 함
@철갤러2(175.205) 내가한 지적이 새롭지 않다고요? 당연하죠. 토마스 아퀴나스부터 지적한 거니까요. 종교가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고는 다 알고있는거에요. 예의상 말 안하는 거지. 그리고 믿음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은 설득이 안되는 거니까 말 안하는거지
@철갤러1(12.89) 인간이 쓴 책인데 왜 그게 성스러움? 신의 뜻이 있어도 인간이 잘못 적은거 같으면 틀렸을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음?
@철갤러1(12.89) 여기서 권위의 근거는 “인간의 무오함”이 아니라, 그 역사적 과정 전체가 신의 섭리 안에 있었다는 믿음임.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독교가 성립 안 하는 건 맞음. 하지만 그게 곧 논리적 모순은 아니고, 그냥 전제가 다른거지. “한계자인 인간이 만든 텍스트 = 오류 가능성 = 절대 권위 불가능”이라는 논리는, 인간 매개를 거치면 신적 권위는 성립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 전제 자체가 기독교와 충돌함
@철갤러2(175.205) 그런데 그 전제 자체가 기독교와는 충돌함. 기독교는 애초에 “신은 인간의 언어·문화·역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봄. 성육신 사상 자체가 그 예임. 인간 예수가 신의 계시라는 주장과, 인간이 쓴 성경이 신의 계시라는 주장은 동일한 논리 구조임
@철갤러1(12.89) 결국 이건 “왜 믿느냐”의 문제이지 “논리적으로 말이 되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의 입장은 계속 일관되어왔음. 1. 성경은 인간이 썼다 2. 인간은 불완전하다 3. 그럼에도 신은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다 4.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최종적 권위를 진다 이 네 단계는 내부적으로 충돌 안 함. 여기에 동의 못 하면 기독교를 안 믿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그건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고 봄. 하지만 이걸 “자기모순”이라고 부르는 건, 상대 세계관의 전제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기 기준을 들이대는 것에 가까운거지
@철갤러2(175.205) 적어도 성경에 나온 신의 스펙이면 모든 기독교인은 IS 정도의 근본주의자가 되는게 맞음. 사유만으로 존재가 되는 신이 한 말을 인간의 되지도 않는 짧은 생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말이 안됨. 그냥 신이 일요일에 일하지 말라고 했으면 응급실도 닫는게 맞음.
@철갤러2(175.205) "처음 만들어졌을 때 죄없는게 무슨 디자인임? 처음 만들어진 새거면 흠이 없는게 당연하지. 그건 무결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하는게 아니라 그냥 만들었다고 하는거에요. 죄를 지을지 말지 아무런 간섭하지 않고 당연히 사용하면 망가지도록 만든거. 죄가 없도록 디자인했다는 것과 스스로 죄를 지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요" -> 내가 자유의지의 필연적 결과라고 설명했던거 다시 읽고 오셈.
@철갤러2(175.205) 응급실 쉬어야 안식일지키는거라고 얘기 하는거 보니 기독교에서 구약 율법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모르는구나... 기독교 비판은 좋고 토론 환영한다만 기본적으로 공부를 좀 거 하시고 오셔야 할 것 같네요. 시간 없으니까 저는 이만 갈거고 철학 공부 앞으로는 열심히 하기를 바랄게요
@철갤러1(12.89) 그래요 그러니까 종교는 보편적인 논리를 따른게 아니라 단지 믿음의 총화라고요. 없어보이니까 논리를 뒤집어 씌우려고 하지만 여기저기서 모순이 터지는 거고요. 그 모순을 "나름"의 자기 순환 논리로 채우려는게 안쓰럽고요. 그냥 믿으세요. 단지 "믿음"과 "앎"은 다른거에요.
@철갤러2(175.205) 믿음과 앎은 다름 -> 맞음 종교는 믿음에 기반함 -> 맞음 그래서 종교는 논리 밖이다 -> 성급한 일반화 종교 논증은 자기기만이다 -> 입증되지 않음 결론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종교를 “논리 흉내를 낸 믿음 덩어리”로 규정하는 순간, 그 비판 자체가 철학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더 취약해짐. 진짜 ㅃㅇ
@철갤러2(175.205) 어차피 모든 죄는 자유의지 때문에 발생하는 거에요. 선악과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이요. 선악과 이전에 순결했다는 것은 어차피 시간 지나면 망가질 것이다 라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기독교에서 구약은 신이 한 말 아니래요? 그냥 심리테스트에요?
@철갤러1(12.89) 입증되지 않는 것은 성경입니다요.
@철갤러2(175.205) "자유의지 때문에 어차피 선악과 전 순결했다는 것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망가질 것이다"에 대한 "형식 논리적" 반박: 1. 자유의지는 죌르 지을 수 있는 possible condition일뿐, necessary condition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해서 죄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적 세계관 내에서 보자면, 신, 몇 천사, 예수 등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죄를 짓지 않음. 2. 시간이 지나면 죄를 짓는다는 주장은, 시간 자체를 죄 자체 발생의 원인으로 착각하는 오류. 시간은 그 조건일 수는 있지만, 결과를 강제하지는 않음. 3. 선악과 이전의 순결은 아직 죄를 짓지 않은 상채를 의미. 이 상태가 언젠가 반드시 망가진다는 주장은 post hoc determinism에 해
@철갤러1(12.89) "종교 논증은 자기기만이다"는 명제는, 내가 판단하기에 분석명제도, 경험명제도, 논리적 귀결도 아니라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거임. 마찬가지로 "성경이 신의 계시이며 최종적 진리인가" 라는 명제 또한 입증 불가능함. 그냥 믿는거 맞음. ㅃㅇ
@철갤러2(175.205) 기독교에서 구약을 어떻게 보는지는 나무위키라도 읽어봐.
@철갤러1(12.89) 님 기독교 공부, 얼마나 노력함 ? 보통의 기독교인을 넘어선 꽤 많은 지식들을 알고 있는 거 같아서 그 지식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인가 ?
@철갤러1(12.89) 그리고 그것을 공부하기 이전부터, 다양한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었는가 ? 그러한 배경지식이 시간을 많이 단축시켰는가 ?
@철갤러1(12.89) 그래요. 그러니까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에요. 선악과 자체가 의미 있는게 아니라는 거라니까요. 그때 선악과를 먹지 않았어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에 다른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였다는거. 그러니까 죄를 짓지 않도록 디자인되어 만들어 진 것은 아니고, 죄를 지을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기에 그냥 신은 만든 것 뿐이었다는 말입니다. 선악과를 통해서 뭐가 변한 것은 아니고 단지 선악과가 첫 죄일 뿐이라는 거죠.
@철갤러1(12.89) 그리고 님이 기독교에서 구약을 어떻게 보라는지 자꾸 알아보라고 하는데 기독교의 구약에 대한 관점은 통일되어 있음? 모든 기독교인이 똑같이 구약을 바라봄?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신약의 따까리 정도로 보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구약은 완벽한 홀리 바이블은 아니라는 뜻임? 성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게 기독교의 입장임?
@철갤러1(12.89) 한계자인 인간은 무한한 신이 하는 말을 그냥 들어야 하는 존재이지, 신이 한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니까요. 되도 않은 인간 주제에 왜 무한한 이성이 한 말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자꾸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겁니까?
@대수확 @대수확 본인은 reformed tradition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맞는데, 사실 신학보다는 철학 덕후였음. 본인은 대학에서 수학+CS 복전했는데, 순수수학와 theoretical computer science는 Formal Logic과 연관이 많으니까 그 분야는 원래 좋아했었고, 덕분에 철학에 더 관심이 많이 생겼던 것 같고, 그냥 신학은 목적을 가지고 단시간에 공부했다기보다는 교회 생활 하고 systemic theology 책 읽거나 인터넷 강의 들으면서 배움. 아직 모르는건 많고 부족함. 지식이 누구한테는 하나님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해주고, 누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함. 나는 신학을 공부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크리스쳔들이 신학을 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철갤러2(175.205) 당연히 기독교에서 구약 보는 관점 하나로 안 통일됨. 교단별, 신학별로 다 다름. 근데 그게 문제가 되나? 절대적 진리는 있어도 한계자인 인간이 그걸 전부 알 수는 없다고 봄. 철학도 윤리 이론 (deontology, utilitarianism, virtue ethics, etc. ) 여러 개고, 과학도 하나의 현상에 이론 여러 개가 있잖아. 그래서 해석이 나뉜다고 뭐 하나가 바로 틀렸다고 보진 않음. 다만 인간 해석이 진리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음
@철갤러2(175.205) 인간은 신 말씀을 재단하거나 선택하는 존재가 아님. 인간의 이성은 유한하고 신은 무한함. 해석은 불가피하지만 언제나 한계 있다는 전제는 지켜야 한다고 봄.
@철갤러1(12.89) 복전이라면 속단이지만 일정 확률로 과기원 출신인 거 같군 .. 그리고 세계의 본질과 관련한 여러 분야에 높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스펙이 상당히 화려하다
@철갤러1(12.89)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 부터가 문제임. 어
@대수확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국에서 일함 지금도. 머리는 별로 안좋고 그런거에 관심만 많음. 한국에서 계속 공부했으면 과기원은 무슨 지방대 갔을 듯.
@철갤러1(12.89) 어째서 무한한 신의 말씀을 한계자 주제에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말인가 하는 거죠. 그래서 무한한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결국 근본주의로 가는게 맞다는 겁니다.
@철갤러1(12.89) 박식하네.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고 무교로 전향한 지는 꽤 됐지만 흥미롭게 봄. 설명도 차분했고, 반복되는 비논리적 감정 공격에도 똑같이 맞서기보다는 개념 구분과 논리 구조를 유지하며 대응하는 점에서 참을성도 좋네. 상대는 믿음과 앎을 구분하면서 정작 전제를 검토하지 않고, 외부 기준과 모순이란 말로 단정하니 논증 설득력이 떨어져서 전체적으로 많이 일방적인 토론이라 아쉽긴 하다.
@철갤러1(12.89) 멋지네. 삶에서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도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좋은 토론 특히 감정(화)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부분을 잘 보았고 또 배운다. 그것은 절대자가 기뻐하시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철갤러1(12.89) 제가 많이 무례했나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철갤러2(175.205) ㄴㄴ 괜찮음 님은 계속 존댓말 했는데 뭐… 어차피 디씨에서 토론하는건데 심각한 인격모독만 아니면 뭐 어떰. 무례하지 않았음
@철갤러2(175.205) 저의 관점에서는 상대에 대한 무례보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대신, 논의 자체를 성립 불가능한 것으로 먼저 규정하는 표현들이 반복되어서 논리적 설득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에 가깝다고 말한거였습니다. 특히 ‘종교가 학문인가’ 라는 논점을 다루거나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전에, 그것을 믿음으로만 단정하거나, '논리를 뒤집어 씌웠다.' 등의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화법은 논증을 시작하기 전에 결론을 닫아버리고, 논의 대상을 격하시킨 점이 있고요. 절대성에 대해 인간 해석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 자체는 이해합니다만, 그 과정에서 인간 인식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전제가 함께 요구되는 지점에서는 다소 비약이 느껴져 아쉽게 보였습니다.
@철갤러2(175.205)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이 그것을 해석 없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데, 이를 동일시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유한한 인식 주체가 아니라 사실상 무한한 인식 주체를 지니게 되고, 이는 인간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요? 반면에 인간이 유한하기에, 절대적 진리의 해석을 포기해야 된다면, 참인 명제는 성립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참의 주장 또한 결국 유한성의 산물로 귀결된다고 생각해요.
@철갤러3(210.206) 저하고 12.89.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많은 것이 생략된 대화입니다. 못해도 천년 넘게 제기되어 왔던 문제죠. 저보다 훨씬 잘 아실 수도 있지만 오해하지 않게 좀 풀어보면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아버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고 즐겁게 하는 존재여야 하는데 선악과를 먹는 원죄를 지었습니다. 그 인간을 긍휼이 여기신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보내서 인간을 구원해 줍니다. 그래서 인간은 원죄를 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자유의지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갖게 되어 결국 자유의지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기는데
@철갤러3(210.206) 그 가이드라인이 성경입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게 되면 천국으로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가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죠. 그렇다면 성경은 무오류성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절대적인 것이고, 인간은 유한합니다. 유한자로써 당연하게도 진리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대리인인 사제의 도움으로 성경의 가르침으로 인도 받아 살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 입니다. 물론 내가 가진 달란트를 잘 일궈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도 해야 하고요.
@철갤러3(210.206) 그런데 이 절대성이라는게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왜냐면 성경에 모순이 많거든요. 위에서 말한 성경 절대성에 대한 이야기나 선악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무한의 존재입니다. 무한은 경계가 없음을 말하고요. 그런데 예수라는 존재가 말썽을 일으킵니다. 예수는 신인가요? 인간인가요? 신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유일신이 아닙니다. 인간이라고 하면 경배의 대상이 되기 힘들고요. 또 인간과 신의 중간으로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라고 하면 하나님에게 경계가 생기는 겁니다. 즉 무한한거는 아닌거죠. 예수라고 하는 한계가 생기기 때문에요.
@철갤러2(175.205) "제가 많이 무례했나요 ?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 누구의 잘못도 없습니다. 이 토론을 지켜보며 제가 느낀 점을 감히 말씀 드리면, 이것은 개인의 인생 가치관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서로 의견이 충돌할수록 서로를 부정할수록 서로가 쉽게 감정적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그와는 별개로,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부분도 다소간 느껴지는군요. 그 원인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단, 각 토론자가 가진 지식 깊이에 따른 차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지식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있으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어떤 우애의 지점인 거 같습니다.
@철갤러3(210.206) 또 성령이라는게 있습니다. 이건 신의 이성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3위일체 설의 주체죠. 그러면 이 성령이라는 것에 하나님은 지배되는 것인가? 라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참 많이 애매한 3위일체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철갤러3(210.206) 하나님의 절대성과 무한성은 범신론으로 수렴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무한한 존재라면 결국 경계가 없는데 하나님이 아닌 존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경계 없는 무한함인데? 그럼 나도 하나님이고 쟤도 하나님이고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도 하나님이고, 새똥도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오류들이 있지만 그 오류들의 공통의 원인은 교리의 경직성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하고 전지전능하다는 그 스펙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그 오류들을 기독교 내부에서 나름대로 설명을 합니다. 이건 이런설이고, 저건 저거고, 저건 저래서 모순이 아니고 하면서, 결국 중요한 핵심을 피해가는 것으로 보이는 거죠.
@철갤러3(210.206) 물론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가혹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은 유한자니까 신의 뜻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종교는 믿음이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학문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긴 내용이 축약이 되었죠. 신의 말씀은 신, 절대자의 차원에서 묘사된 것이고, 무신론자의 공격은 인간의 논리 수준에서 하는 공격이라 불공평하다고 볼 수도 있으니 가혹하다고 할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학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좀 무리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인들 말에 따르더라도 인간은 신을 평가하고 연구하고, 해설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니까요.
@철갤러3(210.206) 기독교에 대한 논리적 논쟁, 그러니까 가치중립적인 이게 맞냐, 틀리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이제는 가치지향적 문제, 즉 당위성, 바람직하냐 아니냐의 문제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철갤러2(175.205) 음... 기독교에서 전향한 제가 이를 왜 말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유의지가 존재했기에 선악과 사건이 가능했던 것이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자유의지가 생겼다고 보기는 순서 상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외형이 아니라, 이성과 책임, 관계성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음으로 알고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자유의지를 전제합니다. 죄악은 자유의지의 존재가 아니라, 그 오용의 결과로 이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죄의 조건을 창조하신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속 역시 자유의지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라, 왜곡된 의지를 회복하기 위함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흐름에 더 부합한다고 봅니다.
@철갤러3(210.206) 굳이 믿음이든 학문이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믿음의 차원을 넘어 학문, 옳음의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면 기독교가 내재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기독교는 인간을 본질을 가진 존재로 봅니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고 기쁘게 해야하는 본질을 가진 존재죠. 삶을 감시당하면서 마지막엔 심판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 즉 하나님이 시킨대로만 살아야 하는, 있는게 오히려 저주가 되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째로 신을 위한 삶으로 소모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철갤러2(175.205) 확인을 하지 못한 사이에 답변이 많이 달렸네요 추후에 읽은 뒤 답변 드리겠습니다.
@ㅇㅇㅇ(210.206) 죄는 특히 도덕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죄는 자유의지가 전제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즉 의도가 없다면, 큰 과실이 없다면 도덕적으로는 죄라고 보기 힘듭니다. 자유의지가 없이 어쩔수 없이 일어난 일에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가치중립적인 위법성 여부는 좀 다릅니다. 오해하실까봐요.
@ㅇㅇㅇ(210.206) 네네, 다시 이어서 해보면, 결국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삶을 영위하려면 신을 부정하는게 맞습니다. 그래야 내가 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죽으면 지옥으로 가고 싶다고, 왜? 각종 군주나, 교황, 등등 재밌는 사람은 죄다 지옥에 있고, 맨 수도승 같이 재미없는 인간들만 천국에 가득할 것인데. 라고요.
@철갤러2(175.205) 뭐 하여간 불편하게 해 드린점은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가 위와 같이 생각한다고 해서 제가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냥 제 생각을 써본것에 불과합니다.
@철갤러2(175.205) 아 가이드라인이 성경이라는 부분까지만 보고 답변한거라 당황스러웠네요. 일단 허수아비 논법에 가까운 부분과 모순점들만 간단히 짚겠습니다. 우선 자유의지가 도덕적 죄의 전제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전제라는 사실이 곧 그 자체가 죄이거나 저주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자유의지는 책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지, 책임의 대상은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로 행한 선의가 죄가 될 순 없으니까요.
@철갤러2(175.205) 이는 허수아비 논법의 오류와도 상통합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성경 무오류성은 합의된 교리가 아니며, 특정 근본주의적 입장을 기독교 전체의 필수 조건처럼 전제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의견을 그저 옳다고 선언한다면 더 이상 토론의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핵심 중에는 죄를 스스로 인지하고 책임으로 돌아서는 행위인 회개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예수는 죄사함에 대한 선행 요구 사항이 회개라고 보는 것이지, 단순히 원죄를 씻고 자유의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철갤러2(175.205) 또한 유한하다는 사실이 무지를 뜻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현대과학의 대다수가 성립하지 않으며, 지금 저희의 토론도 무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기준이라는 사실과 무오류성은 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삶의 기준이라는 주장으로부터 곧바로 무오류성을 도출하는 것은 규범과 존재론을 혼동한 비약이며, 이를 판단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 유한성 주장과 충돌합니다.
@철갤러2(175.205) 그렇기에 인간의 유한성의로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여기신다면 철학 또한 학문이 아니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학문을 논하신다면 윤리학을 포함한 모든 철학은 인간의 기준으로 서술된 것으로, 절대적인 논리적 참을 이끌어 내는 부분은 극히 한정적이기 떄문입니다. 이는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할 이유이지 부정의 사유는 되지 않습니다. 위에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글이 있던데 이와 같다고 봅니다
@철갤러2(175.205) 또한 무한이란 공간적 확산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적 발산을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네요. 따라서 존재의 충만성과 제한 없음의 개념이지, 모든 것과의 동일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다룰 수 있는 내용들이 있지만, 시간 관계 상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철갤러1(12.89) 솔직히 저도 기독교를 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꽤 합리적인 부분이 많고 좀 이해가 되는것 같습니다 제가 많이 무지하군요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ㅇㅇㅇ(210.206) 오해를 좀 하신것 같습니다. 자유의지는 책임의 전제이지, 자유의지가 나쁘다 아니다 쓴적은 없습니다. 당연하죠. 자유의지는 가치중립적 개념이지 좋고 나쁜게 아니니까요. 다만 실천이성비판에 따라 선과 악을 나누는 도덕적 죄악의 근원은 자유의지가 있냐 아니냐 하는 것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자유의지가 저주라는 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아마 데카르트가 한 말일거에요.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으나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자유를 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뭔가를 주었으나 보지말고, 보았으나 만지지 말고, 만졌으나 맛보지 말라는 신의 심술궂음을 말한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줘서 시험에 들게 하였으나 그 시험을 통과하려면 자유가 아니라 시키는대로 해야 하니까요.
@ㅇㅇㅇ(210.206) 그리고 성경무오설(biblica inerrancy)은 기독교 교리의 기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기독교 내부적으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한다면 정통 기독교인은 아닌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회개는 예수의 희생 이후의 얘기지 그 위로 소급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이전에는 아무리 회개를 해도 원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이 무지하다고 한 적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다 없다가 아닌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인간을 유한자, 한계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입니다. 신은 무한자이고, 인간은 한계자라고 하고, 신의 무한성에 시공간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은 제 말이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념입니다.
@ㅇㅇㅇ(210.206) 신의 무한성이 공간적, 시간적 차원만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차원이라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념이면서 기독교 기본교리이고요, 말씀하신 순수이성비판에서도 칸트가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ㅇㅇㅇ(210.206)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가 언급한 각종 기독교 교리의 모순에 제가 신선하게 찾아서 언급한 것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상가들이 지적한 것이죠. 칸트, 스피노자, 토마스 아퀴나스 본인, 많은 실존주의 철학자들.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종교가 됐을까요? 그게 진리라서? 아니면 그 교리가 너무 훌륭해서? 아닐걸요. 로마제국이 국교로 공인해서 그럴겁니다. 그러면 로마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황제는 기독교인이었을까요? 네 맞아요. 근데 공인할 때가 아니라 죽기 직전에 임종하면서 기독교 인이 됐어요. 재밌지 않나요? 본인은 기독교 인도 아니면서 왜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을까?
@ㅇㅇㅇ(210.206) 콘스탄티누스 엄마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잘 알았겠죠. 하지만 당시 기독교인이 대세라서 기독교 공인이 정치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거는 제 생각인데 기독교 교리가 아마 황제에게 마음에 들었을 거에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지배자로서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기독교만 컨트롤 하면 되니까요. 기독교 교리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면 천국이라는 리워드가 온다. 근데 그 리워드는 죽어야 알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철갤러2(175.205) 제기된 반론들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했으나, 동일한 오해와 전제 선언, 논점 확장이 반복되네요. 또한 제시하신 근거들에 대해 확인한 결과, 잘못된 정보 및 곡해하신 내용들을 다수 발견했습니다. 이는 추가 설명으로 해소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반응이 이해되지 않으시다면, 본인이 언급하신 내용을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