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들 중에서 이른바 ‘모범적’이라고 불리는 인간형을 오래전부터 견딜 수 없었다.


20대 시절, 그들은 술자리에서 외모와 여자 이야기만을 반복했다. 누가 더 예쁜 여자를 만났는지, 누가 더 쉽게 여자를 얻었는지가 그들 세계의 통화였다. 연애를 하지 않거나, 외모 경쟁에 관심이 없거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상한 놈”, “뒤처진 놈”이 되었다.


그때 그들은 세상이 그것뿐인 양 행동했고, 타인의 다양성이나 삶의 방향 따위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자,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더 이상 무기가 되지 않자, 그들은 기준을 바꿨다. 이제 대화의 주제는 연봉, 아파트 평수, 대출 규모, 차 브랜드로 옮겨갔다. 외모로 하던 서열질을 돈으로 반복했을 뿐,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디 살아요?”라는 질문은 안부가 아니라 탐색이었고,

“연봉은 어느 정도?”라는 말은 호기심이 아니라 평가였다.


이런 인간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새 ‘성공한 어른’, ‘현실적인 사람’, ‘모범적인 시민’으로 불린다.


그들이 누군가를 함부로 “불쌍한 인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이야말로 더 불쌍하다.

그들은 한 번도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본 적이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이 나에게 맞는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그저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외모를 갈고, 다음엔 돈을 갈고, 또 다음엔 자식과 체면을 갈 뿐이다.


그래서 기준이 바뀔 때마다 불안해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다.

서열이 없으면 존재감도 사라지는 삶이다.


늙어 외모가 초라해지자 돈으로 서열을 매기며 안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확신하게 되었다.

저들은 평생을 남의 평가로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이야말로, 내가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