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시절, 닌텐도 DS가 크게 유행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는 왜 이런 것을 만들지 못하느냐”라고 말했고, 그 말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뻔했다.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닌텐도가 강력한 하드웨어 덕분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온 독보적인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덕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닌텐도 스위치의 기기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하지만 젤다, 포켓몬, 마리오 같은 콘텐츠가 판매를 견인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자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한국 사회의 평면적인 사고는 축구에서도 드러난다.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가 축구를 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축구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전 축구선수 이천수가 유튜브 채널 ‘리춘수’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축구를 포기하는 재능 있는 유소년이 많다. 기숙사와 훈련 비용, 장비 비용은 부모에게 큰 부담이 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유소년이 재능을 보이면 구단이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독일은 무려 13부 리그까지 존재하고, 영국과 프랑스도 비슷하다. 인구 3천 명 남짓한 작은 마을조차 홈 구장과 리그 팀을 갖고 있다. 하부 리그 팀 중 상당수는 사실상 동네 축구회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리그 시스템 속에서 재능 있는 아이들은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재능이 꽃피는 구조는 결국 ‘인기’에서 비롯된다. 하부 리그 팀조차 수천, 수만 명의 관중이 들어차는 경우가 흔하다. 관중이 많으니 구단의 재정이 뒷받침되고, 자연스럽게 유소년을 후원할 수 있는 자금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유럽·남미에서 하부 리그 팀조차 이토록 인기가 있을까? 그것은 한국보다 지역 연고가 훨씬 끈끈하고, 사람들이 여가와 스포츠에 쓸 수 있는 관심과 여력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성세대가 “그까짓 공놀이”라며 스포츠를 비하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양 국가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스포츠와 여가 활동을 권장한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성인이 되기 전에, 청소년기에 폭넓은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영양가' 타령을 하며 공부 외 활동을 억누른다. 이런 억압은 물질만능주의를 강화하고, 더 나아가 다른 형태의 중독으로 이어진다.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한국의 기성세대 중 일부는 “경제는 망한 주제에, 그깟 공놀이 하나 우승했다고 좋아하네”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오히려 부러웠다. ‘공놀이’라는 사소한 것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한국에서는 기뻐할 대상조차도 정해져 있다. 비싼 자동차, 고급 아파트, 명품처럼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것에만 기뻐하라고 강요받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게 더 무익한가? 나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생을 희생하느니, 차라리 ‘그까짓 공놀이’에 열광하며 기뻐하는 편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굿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