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여자친구와 결혼을 고려할 때, 사람들은 함께 등산을 가보라고 조언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등산과 같이 체력적 소모가 크고 신경이 예민해지기 쉬운 상황에서는 사람의 가면이 벗겨지고,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자신을 통제하고, 예의와 배려를 유지하며, 사회적 기준에 맞춰 행동하지만, 신체적·정신적 한계에 다다르면 숨겨진 성향과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나온다. 그래서 연인과의 장기적인 관계, 나아가 결혼을 고려할 때는 이런 ‘극한 상황’을 통해 서로의 본성을 엿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왜 사람들은 흔히 사회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 사람의 본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할까? 등산이라는 상황이 본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야만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회적 압박과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미 매일매일 그런 ‘극한 상황’을 살아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낙인, 인간관계 속 위선과 숨은 동기와의 반복적 마주침은 그 자체로 사람의 본성을 관찰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낮은 지위와 천대는 일종의 지속적 등산과도 같다. 따라서 오히려 사회적 천대를 받는 사람들은, 그 압박 속에서 인간을 읽는 감각과 통찰력을 자연스럽게 발달시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흔히 권력과 지위를 통찰력과 연결짓는다. 높은 지위의 사람은 경험과 지혜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낮은 지위의 사람은 무식하고 편협하다고 쉽게 판단한다. 이러한 편향은 사회적 천대를 받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과 관찰 능력을 가려버린다. 결국 본성을 보는 능력은 결코 사회적 지위와 비례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극한 체험을 통한 관찰’에만 의미를 부여하며, 이미 매일 압박 속에서 인간을 관찰해 온 사람들의 통찰을 간과한다.
이 점에서 나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높은 정상에 계셔서 산 밑의 풍경을 훤히 볼 수 있으나, 산 밑에 있는 자들은 산 정상을 오히려 훤히 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를 내려다볼 때 넓은 시야를 가지지만, 실제로 산 아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즉 사회적 천대를 겪는 사람들은 산 정상을 볼 때 넓은 시야를 가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권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의 관찰이 항상 통찰력을 담보하지 않듯,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가진 관찰과 이해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은 반복적 압박과 현실 경험 속에서 길러진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 인간관계와 사회 구조 모두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우리는 본성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힘든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는 힘든 상황 속에서 타인의 본성을 확인한 사람들의 시야를 무시한다. 이는 단순한 관찰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사회적 신뢰와 권력 구조, 그리고 고정된 편견에 의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우리는 등산을 통해 본성을 확인하듯, 사회적 천대 속에서 길러진 통찰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특별한 상황에서의 반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삶의 맥락, 그리고 그 속에서 축적된 관찰력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 본성은 극한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반복적 압박 속에서, 천대받고 소외된 이들의 눈을 통해 더 깊이 드러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종종 ‘산 정상에 있는 자’의 시야만을 신뢰하고, 낮은 위치에서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사회의 아이러니이자,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근본적 편견이다.
굿굿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더 지혜롭다 여기는건 단순한 편견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까지 오르는데 그만큼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빅데이터에 의한 추정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예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찾아갈 ‘확률’이 높잖아요.
그리고 제 경험상으로 비추어 볼때, 안타깝게도 지혜와 어리석음은 세습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지근성과 열등감이 유전되는거에요. 낮은 지위의 사람이 자신의 거지근성과 열등감을 직시하지 못하고 ‘내 생각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면 영원히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똑똑함과 지혜로움은 전혀 다른 개념이고, 본문에서 말하는 통찰력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