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은 출산율을 늘리기 위해서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는답시고 금전적으로, 경력으로 손해를 하나도 보지 않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거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출산이 금전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에 안한다'라는 것이 당연히 전제된 사고방식 아닌가?




마치 유치원에서 지각 벌금을 책정하자 지각이 폭증한 것처럼 출산을 단순히 금전적 손해라 생각하고 그것의 손해를 메우는 방식으로 정책 지원을 하면 아예 사회 관념 자체가 왜곡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의 출산 정책은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금전적 보상과 경력 보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이며 진보적인 조치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깔린 전제를 살펴보면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즉, 출산이 개인에게 금전적·경력적으로 ‘손해’라는 인식이 이미 당연한 사실로 전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출산을 손해로 규정한 상태에서 정책이 설계되면, 출산은 삶의 의미나 사회적 연속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손익 계산의 대상이 된다. 이는 개인이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보상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단순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출산이라는 행위의 성격 자체를 경제적 거래로 환원시킨다. 정책이 이와 같은 관점을 공식화할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출산을 더욱 명확한 비용 항목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유치원 지각 벌금 실험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지각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자, 지각은 도덕적 문제에서 금전적 선택지로 전환되었고 오히려 지각이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출산을 손해로 전제한 뒤 그 손해를 보전해주는 방식의 정책은, 출산을 ‘보상받을 수 있다면 고려할 수 있는 행위’로 재정의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을 왜곡시킨다.



그 결과, 출산 지원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는다. 이는 지원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 논리의 문제에 가깝다. “경력 단절을 막아주겠다”는 정책적 언어는 곧 “출산은 원래 큰 손해”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화하며, 개인의 선택을 더욱 계산적으로 만든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출산이 왜 손해가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정책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동 구조의 경직성, 한 사람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직장 문화, 돌봄을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는 사회 시스템 등은 그대로 둔 채, 그 결과로 발생한 부담만을 금전적으로 보전하려는 접근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정책 방향은 출산을 장려하기보다 출산의 의미를 해체하는 효과를 낳는다. 출산은 의미 있는 삶의 선택이 아니라 보상 대상 행위가 되고, 아이는 존재가 아닌 비용으로 인식되며, 부모는 사회적 주체가 아니라 지원의 수혜자로 규정된다. 이와 같은 인식 구조 속에서 출산율 하락은 정책 실패라기보다 정책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출산율 문제는 단순한 인구 정책의 영역을 넘어, 사회가 인간의 삶과 선택을 어떤 언어와 전제로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