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세상‘이란,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에서 그가 설명하듯 사태의 총 집합입니다.
사태란, 요소명제의 총 집합이고, 사태의 요소입니다.
즉 사태는 세상의 요소입니다.
저(인간)는 세상의 사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과 후기철학은 합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논리학적인 시선이 아닌 ’탐구‘에서 말 하듯, 어떠한 것의 가치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변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논리학’은 상황입니다.
이는 즉, 논리적으로 어떠한 것에 대한 논의는 가치가 변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어떠한 논의에 대한 가치는, 예시로서 무신론자 앞에서 신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그 논의에 대한 가치 부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사태‘이자, ‘요소‘입니다.
즉, 사태와 요소는는 상황과 맥락에 맞춰 세상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즉, 주관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가치의 부재는 무의미를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죽음이, 세상으로부터의 부재라고 해서 그 죽음이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의미한 죽음은, 누군가에겐 가치의 상실로 인한 부재의 상실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주관입니다.
즉, 가치의 부재는 세상의 요소의 상실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으로부터의 가치의 부재는 논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나의 존재는 세상의 사태, 즉 의미를 갖습니다.
나의 죽음은, 세상으로부터의 부재, 사태와 요소의 부재입니다.
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도전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부재는 인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죽음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들어가는 사태입니다.
세상은 주관, 즉 사태는 즉, 저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죽음에 대한 요청은 세상의 사태가 세상의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식론적 변화의 ‘특성’입니다.
그렇기에, 저의 삶은 죽음으로서 세상의 완성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으로부터의 부재는 생명체의 한하여 피할 수 없는 사태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죽음은 사태의 부재이자, 세상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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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들이 생경하지 비트겐슈타인을 번역한 단어들이니까 당신의 단어로 번역하여야 안 생경하지
어떤 부분애서 그렇게 생각이 들으셨을까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