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개인을 비난하는 것’과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전 재산을 털어 스포츠카를 사고 카푸어로 산다고 하자.
나는 그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
그건 그의 삶이고, 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의 문제다.
그 현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넘어, 사회 전체의 방향성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은 다른 예시에서도 드러난다.
누군가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이다.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면,
그건 개인을 탓할 일이 아니라 사회 구조나 제도, 문화적 압박의 결과로 분석해야 한다.
또 어떤 이는 일을 그만두고 ‘나답게 살겠다’며 지방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거나 프리랜서로 전향한다.
그 선택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와 조직을 떠나 탕핑족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라면,
그건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을 소진시키는 방식의 문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종 이 차이를 모른다.
내가 “요즘 한국 사회는 물질적 과시에 과도하게 집착한다”거나
“한국의 노동문화는 사람을 번아웃시키는 구조다”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반응한다.
“남 잘 먹고 잘사는 게 왜 불만이냐?”,
“그건 개인의 선택이잖아. 네가 뭔데 간섭하냐?”
그러나 나는 특정 개인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의 분위기와 구조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세살된 자식에게 주장하며 노동력에 비례하여 식사량을 분배하는 한국인이 있고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며 노동력이 낮은 다섯살 자식에게 성장에 필요한 적절한 식사량을 제공 하지 않는 한국인도 있고
능력주의 성과금을 세살된 자식에게 주장하며 기회의 평등으로 식사량을 분배하는 한국인이 있고 기회의 평등은 거짓 이라며 결과의 평등을 강조 하며 다섯살 자식에게 성장에 필요한 적절한 식사량을 제공 하지 않는 한국인도 있고
이런 저런 개념들 보다 일단 세살 다섯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을 위한 안정된 보살핌 아닐까 ?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사회적 개념을 주장 하는건 어딘가 비이성적 행태로 보이는게 정상이 맞잖아 ? 아닌가 요즘 한국인들 보면 나도 정신체계가 무너지는듯 하여 긴가민가 하다.
국가가 세계 질서의 야생적 환경을 견디고 성장 하는 이유는 국내의 국민들이 안정된 성장을 위한 투쟁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한국인들은 아니라고 하니까...과연...세살 다섯살 아이에게 사회적 개념을 주장 하는게 맞는 일들 같기도 하고 국가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게만 가는 것도 지금보면 한국인 이니까 맞는 정의 같기도 하다.
뭐 한국인 이니까 괜찮아...1인 세대의 증가 원인 같은건 착각이면 그만 아닌가 싶어 뭐 한국인 이니까 관찮아.